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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 Oct 08. 2024

감초사탕

찰나의 표리부동

  웩. 다시 생각해도 그건 내가 먹어본 음식 중 단연코 괴팍한 맛이었다. 찜질방을 통째로 녹여 맛으로 구현하면 이런 느낌일까.   

  난생 처음 맡아보는 이상한 향. 편백 향이라기엔 그다지 편안하거나 향긋하지도 않은 것이, 한방 약재라고 단정하기엔 건강이 증진될 것 같은 믿음직한 향도 아니었다. 그 향은 내가 경험한 세상이 띄는 어떤 것으로 비유할 수 없는 낯설음이었다. 이리저리 입에서 맛보려는 순간 느껴지는 식감은 또 얼마나 특이한지. 알사탕처럼 굴려 먹기에는 어딘가 말랑했고, 캬라멜처럼 씹어 먹기에는 쉽게 뭉그러지지 않지 않고 제법 단단했다. 아, 이거 도대체가 어떻게 먹어야 할지 모르겠다- 싶어 그저 입속에 그대로 머금을 수밖에 없었다. 사탕을 먹을 때 음미하기를 포기한 건 처음인데. 정말 황당하기 그지없는 당혹스러운 덩어리였다. 그렇게 혀에서 최소한으로 내어준 한켠의 자리에 조그마한 덩어리를 올린 채 대화를 이어가려는데, 서서히 은은하게 녹아드는 감초 사탕의 맛은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이쯤 되면 맛이라도 좋아야 하는 거 아닌지, 그 맛은 더욱이 최악이었다. 흔히 사람들이 환장하는 단짠단짠에서 짠맛은 단맛을 극대화하려고 있는 것이 아니던가? 이건 짜도 너무 짰다. 짠맛이 단맛을 완전히 잡아 먹어버린 조화였다. 달면서 짠 것도 심란한데 와중에 쓴맛이 치고 들어와 미각을 불쾌하게 자극했다. 그 맛을 표현하자면, 달달한 식혜에 사람들의 땀이 골고루 섞인 데다가, 미역국과 숯불 편백 계란 등을 모조리 정성스레 모아 달여 놓은 청소 안 한 찜질방 같은 맛이었다. 그야말로 향과 식감 그리고 맛의 불협화음을 사탕으로 표현하시오!의 정석 같은 예시였다.



  이런 최악의 경험을 어떻게 하게 됐느냐- 하면 불과 얼마 전의 일이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가진 모임의 첫 만남 이후 함께 귀가하던 길이었다. 열댓 명이 한 번에 건물에서 우르르 나와 지하철역을 향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둘 셋, 짝을 지어 거리를 걸었다. 처음 만나 서로에 대한 어떤 정보도 없어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애써 감추었지만 드러나는 경직된 얼굴 근육을 깨우기 위해 시시콜콜한 대화 주제를 꺼낸다. 직장이 어느 지역에 위치하는지, 앞으로 집까지 가려면 얼마나 소요되는지, 요즘 즐겨하는 운동 종목은 무엇인지와 같은 이야기. 요즈음은 스쿼시라는 운동을 하고 있다는 이의 말엔 “아- 스쿼시 저도 해보고 싶었는데요!!” 아마추어 풋살팀에 속해서 즐겨한다는 이에게는 “오호라- 성인 풋살도 해보고 싶은데요!!” 하고 전매특허 초롱초롱한 눈빛을 건넸다. 그리곤 이제 내 차례, “저는 요가를 오래 했어요.” 그리곤 “오, 요가랑 정말 잘 어울려요”라고 돌아오는 답을 듣는다. 그럼 역시 상대의 이야기를 실컷 듣고 내 이야기를 스을쩍 얹는 쪽이 편하다고 잠시 생각했다.     



  모두 바삐 움직이는 입술만큼이나 발걸음을 옮겨 금새 지하철역에 도착했다. 입구에서는 그럼 다음에 보자며 가벼운 인사를 나누곤 각자 흩어졌다. 이후 우연히 가는 방향이 같았던 분과는 조금 더 대화다운 대화를 나누게 되었는데, 이를테면 좋아하는 책이라던가 취향과 같은 것이었다. 애니메이션 모아나와 같은 보글보글한 머리칼의 그녀 이야기에 경청하던 중, 줄곧 성실하게 초롱초롱 눈빛과 답하던 탓에 점차 입이 말라왔다. 문득 오는 길에 가방 속에 넣어두었던 라임 맛 목캔디가 생각나 꺼내 들었다. “이거 드실래요? 상큼하고 맛있어요.” 그녀는 이에 고맙다며, 자신도 줄 것이 있다고 나에게 조그마한 사탕 한 알을 건넸는데 그게 바로 문제의 감초 사탕이었다.     



  신기한 것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나는 사탕 껍질을 금새 뜯어 입에 털어 넣었는데, 그 감상이 앞서 한가득 서술한 것과 같다. 해외 어디를 가도 낯선 현지 음식도 곧잘 먹는 나의 먹부심을 단번에 깨버리는 불쾌하고 낯선 맛과 식감. 그녀에게 받은 감상에 대한 물음에, 마음에 있지도 않은 말을 건넸더랬다.     



“오- 매력있는데요!!”     



  그녀는 그제야 안심한 듯 들뜬 기색으로 감초 사탕의 유래와 역사 등 여러 나라에 얽힌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이탈리아식은 이렇고. 그리스식은 저랬고. 심지어는 나중에 주변 사람을 만나면 나누어주라며, 감초 사탕을 한 아름 손에 쥐어주기까지 했다. 애써 괜찮다고 거절했지만, 아이스브레이킹 용도로 들고 다니면 첫 만남에 좋다는 그녀에게 설득당해 바스락거리는 사탕들을 가방 안에 무식하게 집어넣었다. 나는 그녀와 헤어지기 직전까지 감초 사탕을 주제로 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미 사탕에 대한 호를 내비친 이상, 와중에 우웩- 뱉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차라리 울며 겨자를 먹는 것이 낫겠다’는 말이 왜 생겼는지 너무 알겠네. 그녀가 지하철 칸에서 먼저 내릴 때까지 나는 사탕을 머금고 있다가, 인사를 나누고 돌아서는 뒷모습을 보고 성급히 사탕 봉지를 찾아 퉤- 뱉었다.     



  ‘나 원 참…’ 집에 와서 저녁을 먹는 내내 입에서 은은한 감초 사탕 향이 맴돌았다. 기분은 불쾌한데 마음은 찝찝했다. 내가 왜 그 사탕이 취향에 맞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았는지 알 수 없었다. 왜 솔직하지 못했던 거지. 아무리 돌아봐도 그것은 선의의 거짓말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했다. 단순히 어색한 사이에서 나의 불호를 내비치는 것에 부담을 느낀 건지, 상대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었던 마음인지. 양쪽 모두인지. 아니면 내가 포착하지 못한 다른 이유가 있을까. 문득 알 수 없는 마음으로 수도 없이 거짓들을 말했던 순간들이 스쳐 갔다. 세상에서 온전한 내 선택은 무엇인지 혼란스러웠다. 솔직하지 못한 알 수 없는 수많은 순간이 나로 응축된 것 같다. 문득 지금의 나는 이런 이유 모를 선택과 순간들로 모인 거겠네. 두서없이 이런저런 생각을 골똘히 해보면서 아무리 물을 마시고, 반찬을 씹어도 은은히 맴도는 감초 향은 여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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