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내려놓음 10 떠날 준비 Ⅲ

20대 한의사, 암에 걸리다.

by 한남



10 떠날 준비 Ⅲ




몇 번을 자다 깼을까? 아침이 되었다. 바이탈 체크하러 온 간호사의 인기척에 잠이 깨자 머릿속을 채우던 여러 생각들이 제풀에 놀라 사라졌다. 판도라의 상자를 빠져나간 재앙처럼 흔적도 없이. 판도라는 희망이라도 건졌건만 내 상자에는 오직 목마름만 남아있었다.


엄마, 물 좀
금식이라는데 물도 안 되는 거 아니야?
될 것 같은데?
아니지 싶은데? 이럴 줄 알고 미리 물 먹어두랬잖아.
저녁에 물 먹으면 또 밤에 화장실 가야 되고, 그럼 또 엄마 깨워야 하자나.
엄마 일어나는 게 머 어때서. 엄마 괜찮다.
엄마는 몰라서 칸다. 안 그래도 깊게 못자서 자주 화장실 가는 것도 싫은데, 화장실 갈 때마다 안 그래도 불편하게 밑에서 자는 엄마 깨워야 하고 진짜 좀 그래. 오줌 마려워서 더 못 자는 기분도 들고. 그래서 어제 물도 안 먹었는데도 계속 화장실은 가고 싶고. 내 몸이 완전 내 몸이 아니야. 머가 먼지 도대체. 그냥 다 짜증나. 그냥 물 좀 줘
금식인데 물 먹어도 되려나. 간호사한테 물어보고 올게.


간호사실에 갔다 온 어머니는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전했다. 물을 마실 수 없다고 했다. 금식(禁食)이라 했으니 식(食)은 못 해도 음(飮)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물 마시기 싫다고 고집 피웠던 것이 후회되었다.

‘어차피 한동안 중환자실에 있느라 밤에 부모님 깨울 일도 없을 텐데... 잘못 생각했네.’


물 마시면 안 되는 이유도 궁금했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단체 카톡방에 물어보았다.



동완 : 형, 금식하면 물도 못 마시는 거 맞아요?

덕경 : 당연하지. 수술하는데 물은 무슨. 완전 금식이지.마취 깨우다 토하면 바로 aspiration이야.



aspiration. 검색해보니 사례, 흡인이라 나왔다. 마취 깨는 도중에 위(胃) 내용물이 역류할 경우 그것이 폐로 들어갈 위험이 있어 금식하는 모양인 듯했다. 이 와중에 옆 침대 투덜이 아저씨가 아침 식사 하는데 소리가 예술이다. 음식과 침, 혀만을 가지고 어쩜 저런 큰 소리를 낼 수 있는지 궁금하다. 며느리가 미우면 발뒤축이 달걀 같다고 나무란다던데 미운 사람이 미운 짓 하니 더 신경질 난다.

‘되게 쩝쩝거리면서 먹네. 아, 나도 물 먹고 싶다.’


수술은 12시였고 경과 관찰을 위한 MRI 촬영은 9시, 수술을 위한 이발은 11시로 예정되어 있었다. 어쩌면 멀쩡한 아들과의 마지막이 될 수 있는 시간, 그 시간을 1분 1초라도 더 함께 보내고 싶은 부모님의 마음과는 달리 나는 MRI 검사가 반가웠다. 그냥 이렇게 정신없이 움직이다가 수술실에 들어가고 싶었다. 『모모』의 회색 신사를 만날 수만 있다면 남은 모든 시간을 다 팔아버리리라. 그동안 할 번민, 스트레스 모두 귀찮다. 그냥 잠이라도 자서 빨리 시간을 보내고 싶다.


동완아, 동완아. 좀 일어나 봐봐.

하지만 자꾸 말을 거는 어머니와 아버지. 그 의도를 모르는 바 아니었지만 못난 자식은 외면했다. 외면하는 아들의 마음을 아는 부모님과 그걸 알아도 한 번 더 외면하는 아들. 서로 알면서도 모르는 척. 그렇게 우리 가족은 긴장의 비눗방울 속에서 다가올 운명을 숨죽여 기다리고 있었다.


9시가 되지도 않았는데 간호사와 인턴이 들어왔다.

‘폴리구나...’


형들이 놀리던 것과는 다르게 여자인턴만 오지 않았다. 여자랑 남자 둘 다 왔다. 부끄러운 건 똑같다. 하지만 이제 나는 사람이 아닌 ‘수술 대상’이다. 수치심은 사람의 것이지 수술 대상이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두 팔을 들어 팔뚝으로 눈을 가렸다. 무방비가 된 하체에 느껴지는 서늘한 공기와 부산스런 손놀림. 아래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통증에 눈이 절로 질끈 감아지고 머금고 있던 눈물은 뺨을 타고 아래로 흐른다. 떨어진 내 눈물처럼, 세속에서의 유리(遊離)를 느낀다.

2번이나 실패한 까닭일까? 아래가 굉장히 아프다. 사실 이제 막 임용된 인턴이 잘하는 것이 이상한 거다. 애초에 예상한 일이었다. 인턴 시절 할아버지에게 폴리를 꽂다가 실수해서 아프게 했다며 한탄하던 명아 누나가 생각난다.

‘그래 아무렴 일부러 그랬을까? 자기도 잘 하고 싶었겠지. 안 되는 걸 어쩌누. 머 좋다고 외간 남자 존슨을 주물럭거리고 싶겠어?’


얼마 뒤 다시 간호사들이 왔고 이동용 침대로 나를 옮겨 MRI 검사실로 이동했다. 바닥의 요철에 침대가 튕길 때마다 아래쪽을 강타하는 찌르는 통증은 욕지기가 되어 튀어나온다.

‘그 놈의 인턴은 센스 더럽게 없네. MRI 검사 전에 폴리를 꽂고 지랄이야. 지가 안 아파봐서 그래. 아파본 사람이면 이 타이밍에 폴리를 할 리가 없지.’


도착하자마자 링거와 폴리가 빠지지 않도록 주의하며 누웠다. 이동할 때 생긴 어지러움과 아래를 강타하는 통증이 맞물려 정신이 하나도 없다. 지금 내 앞의 MRI기기가 나를 먹어치울 것만 같다.


‘사실 겉만 MRI고 실은 냉동 장치인거지. 나는 지금 냉동인간이 되고 있는 거야.’

‘검사 끝나고 나오면 미래나 과거인거 아냐? 지금은 시공간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중이고’

‘이 모든 게 꿈인 거야. 캡슐 안에서 눈을 딱 뜨면, 이번 게임은 별로 였어 이야기하며 일어나는 거지.’


거대한 장비가 주는 위압감에 나의 상상력이 더해져 온갖 망상들이 생겨난다. 그 안에 오직 현재만 없다. 먼 미래와 과거만 존재할 뿐. 그러나 검사 끝나고 돌아온 터널 밖 세상은 현실이다.


덜컹 거릴 때마다 찾아오는 통증을 견디며 돌아온 병실. 통증이 좀 진정되자 잘 다녀오겠노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수술 전 마지막 인사를 돌렸다. 한 번 쓰기 시작하면 먼 길 떠나는 사람처럼 메시지가 길어져 쓰다 지우기를 반복하다 결국 짧게 남겼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대사가 그냥 나온 것이 아님을 느낀다. 마지막에 하고 싶은 말은 다 똑같다.

‘다 이야기 안 할래. 조금은 남겨둘 거야. 죽은 인물들은 할 말 다했으니까 죽은 거였어. 반대로 그 말 못한 사람들은 다 살았어.’


쏟아지는 공포를 대항하기 위해 수많은 미신들이 만들어내고 모조리 지킨다. 사망을 암시할 수 있다 여겨지는 행동들은 모조리 피하고 부모님 몰래 노트에 적어 두었던 통장 계좌번호와 비밀번호도 지워버렸다.

‘괜히 했다가 살아서 돌아오면 얼마나 웃기겠어. 안 해. 안 해’


다가오는 위협 앞에 갈피를 잡지 못하는 아들과 벙어리 냉가슴 앓듯 말없이 지켜보고만 있는 부모님. 팽팽한 긴장감을 깬 사람은 수술실 의사처럼 파란 가운에 마스크까지 끼고 나타난 이발사였다. 감염 예방에 특히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뇌수술에서 삭발은 필수. 능숙한 솜씨로 머리카락을 잘라 나갔다. 한 뭉텅이씩 떨어지는 머리카락을 보니 어릴 적 타자 연습을 하느라 지겹도록 읽었던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이 떠오른다. 머리카락 한 뭉치마다 추억과 사랑과 쓸쓸함과 동경, 그리고 어머니, 아버지. 그 안에 담긴 시간들을 흘린다.

가위질을 하던 이발사는 바리깡을 들고 남은 머리카락을 밀기 시작했다. 이제는 2년 전 훈련소 가기 전날 미용실에서 머리 밀던 그 날이 떠오른다. 그때도 이만큼 참담한 마음이었을까? 바리깡 소리가 이내 멈추고 가는 듯싶던 이발사는 도루코 면도칼을 꺼내 뒷마무리 작업까지 하고 떠나갔다. 5중날을 자랑하는 면도기로 아무리 턱수염을 깎아도 검은 자욱이 남아있던 나였는데, 괜히 이발사가 아닌 듯 눈썹 위로는 검은 점하나 찾을 수 없다.

주사위는 던져졌다며 루비콘 강을 건너라며 외치는 카이사르에 명령에 등 떠밀려 뛰쳐나가는 병사의 처지가 이런 것일까? 대세에 거스를 용기가 없는 겁쟁이는 그저 순응할 밖에 도리가 없다.


자식의 마지막일지도 모를 멀쩡한 모습을 남기고 싶었던 것인지 어머니는 사진을 찍자고 했다. 싫었다.

무슨 영정 사진 찍어? 사진은 또 왜.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마음속으로 삼켰을 말. 이 한 마디가 부모님 가슴에 박힐 가시라는 것을 알면서도 내뿜었다. 들고만 있기에는 내가 너무 아파서. 김영랑 시인처럼 ‘독을 차고 선선히 가리라’ 마음먹었건만 가슴은 그만 머리를 배신하고 말았다.


간호사가 왔다. 침대에 바꿔 탔다.

‘이제 가는구나.’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가는 층층마다, 천상병 시인의 「귀천」을 떠올리며 스쳐지나가는 형광등 하나하나에 소중한 기억들을 담았다. 수술로도 없애지 못하도록... 그랬다. 그 암울한 시간을 견디게 해준 건 어쩌면 시(詩)였을지도 모른다. 나에게 시는 어두운 현실을 잠시 아름답게 보이도록 해주는 옷가게 조명이었던 것이다.

움직이던 침대가 멈추고 수술실에 도착한 듯 침대를 끌던 사람들이 모두 사라졌다. 혼자 남겨져 있는 그 잠깐 동안, 병신이 되어 주변 사람들을 고생시킬 바에 그냥 수술실에서 죽여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그런 나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가 들려왔다.


다 잘 될 거에요.


그때부터 마음이 편안해졌다. 요동치는 심장도 순식간에 진정되었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All is well’을 수없이 되뇌며 의사의 지시에 따라 호흡기에 대고 10번 숨을 쉬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어? 이쯤이면 마취된다고 하던데?’


여섯 번, 일곱 번, 여덟 번
...




(11 I see me in ICU Ⅰ 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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