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봄에의 열망》
긴긴 겨울밤 올해도 얼마 안 남았구나 싶으니 이런 일 저런 일을 돌이켜보게 되고 후회도 하게 된다. 이런저런 시시한 후회 끝에 마지막 남은 후회는 왜 이 어려운 세상에 아이들을 낳아 주었을까 하는 근원적인 후회가 된다. 그리고 황급히 내 마지막 후회를 뉘우친다. 후회를 후회한다고나 할까.
아아, 어서 봄이나 왔으면. 채 겨울이 깊기도 전에 봄에의 열망으로 불안의 밤을 보낸다.
(박완서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 177p)
나는 겨울을 기다린 적이 없다. 선물이 잔뜩 들어오는 나의 생일과 크리스마스, 세뱃돈으로 지갑이 두둑해지던 설날, 길고 긴 방학이 있었지만 나에게 겨울은 너무 추운 계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어릴 적 나는 호흡기가 무척 약했다. 부비동염과 삼출성 중이염으로 수술도 해야 했고 만성기관지염, 폐렴, 천식까지 앓아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는 일주일에 한 번 대학병원에 방문했다. 그 탓에 찬바람만 불면 어머니는 나를 꽁꽁 싸매려 들었다.
옷이 주는 갑갑함과 빠져나가지 못한 열기(熱氣).
마스크로 막지 못한 눈과 귀로 들이닥치는 한기(寒氣).
조화되지 못한 음양의 불균형은 늘 나를 고통에 빠뜨렸다. 추위에 벌벌 떨다 집에 돌아와 겹겹이 쌓아올린 옷을 걷어내면 땀에 절은 속옷을 맞이하기 일쑤. 그래서 머리가 좀 굵어진 이후부터는 겨울만 되면 옷 문제로 늘 다투었다. 지금도 그 영향으로 목을 다 덮는 폴라티는 입지 못한다. 이렇게 고통을 잔뜩 안겨주는 겨울이기에, 어서 지나가기만을 늘 바랄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 난 어느 때보다도, 아마도 평생 중에 가장 크게 겨울을 기다리고 있다.
자연을 거스르는 겨울의 우화(羽化)를 열렬히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