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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남 Mar 27. 2017

[소설] 내려놓음 100 후회와 시작

20대 한의사, 암에 걸리다.



100 후회와 시작




 감은 두 눈 위로 햇빛이 넘실대었다. 누가 햇빛으로 부채질이라도 하는 것처럼 눈꺼풀 위를 지나갔다 말았다 했다. 90년 대 지어진 아파트가 으레 그러하듯 집은 남향이었고, 내 방의 한 면은 남으로 난 베란다와 접하고 있었다. 그리고 출입문을 고려하여 가구를 배치하니 침대는 남북으로 놓을 수밖에 없었고, 머리를 북쪽에 두고 자면 안 된다는 풍속에 따라 항상 남쪽을 향해 눕고 잠들어야 했다. 문제는 웃풍과 아침의 햇살이었다. 베란다에서는 끊임없이 바람이 들어왔고 아침에 해가 조금만 뜨면 얼굴이 햇빛에 노출되었다. 궁여지책으로 침대 머리 뒤로는 옷장을, 그 옆에는 책상을 놔두었지만 그래도 햇빛을 가리는 데에 한계가 좀 있었다. 그래서 어머니는 암막 커튼을 다는 게 어떻겠냐고 하셨지만, 나는 거부했다. 아무리 옷장 뒤로, 벽으로 숨더라도 결국 한낮의 햇살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내 방은, 한 번 잠들었다 하면 일어날 줄을 모르는 나에겐 천연 자명종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천연 자명종이 나를 깨우고 있다는 사실은 곧 시간이 많이 흘렀음을 의미했다. 그 생각이 머리를 스치자 눈이 번쩍 떠졌다. 갑자기 나타난 고양이를 본 쥐 떼처럼 잠기운이 달아났다. 순식간이었다.


 ‘ 몇 시지?’


 늘 그렇듯 자기 전에 머리맡에 곱게 벗어 둔 안경부터 찾았다. 주위를 여기저기 더듬는 손에 안경테가 걸렸다. 얼른 안경을 집어 들고 썼다. 그러나 안경다리는 귓바퀴가 아닌 다른 곳을 향했고 그만 눈을 찔러버렸다. 아픈 눈을 급히 부여잡는 사이 손에서 안경이 떨어졌고, 침대에서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 쪽으로 팔을 뻗어 열심히 더듬어보았지만 별 소득이 없었다.


 ‘아, 또 이런다. 눈 아파 죽겠네. 확 라식 수술해버릴까.’


 결국 바닥으로 기어 내려와 한참을 장님처럼 안경이 있겠다 싶은 자리를 짚어보았다. 심한 난시인 나에게, 선으로 된 테와 투명한 렌즈로만 이루어진 안경만큼 보기 어려운 것도 없다. 오로지 손의 감각에 의존하여 찾는 수밖에 없다. 이래저래 부산스레 움직이니 머리에 살며시 껴있던 안개가 사라지며 의식이 점차 맑아져갔다. 그리고 동시에 마음은 조급해져갔다. 지금이 몇 시인지 너무 궁금했다.

 다리 쪽 침대 부근에 안경이 떨어져 있었다. 분명 머리맡에서 떨어뜨렸는데 어떻게 거기까지 갔는지 신기해하며 같이 찾던 휴대폰을 계속 찾았다. 시간을 보기 위함이었다. 시야가 깨끗해지니 몽롱했던 정신도, 주변의 소리도 들을 여유도 돌아왔다. 그러니 이제는 밝은 햇빛이 비치는 방과는 달리 정적만 가득한 집에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몇 시지? 그냥 거실에 나가서 볼까?’


 방에 있던 벽시계는 초침 소리가 시끄러워 거실로 빼놓은 지 오래였다. 예전에는 초침 소리에 잠 못 든다는 이야기는 가끔 보건소에 찾아오는 환자의 호소였지 나의 경험이 아니었다. 밤에 불 끄고 침대에 모로 누워 ‘내일 뭐하지?’의 공상이 채 시작하기도 전에 잠드는 나로서는 더더욱 그랬다. 하지만 Temodal을 먹은 이후로는 모든 것이 달라졌다. 심심한 악령이 내가 눈 감을 때마다 시계를 떼어다가 귓가에 매달아 놓은 것은 아닌지 싶게 시끄러웠고, 감은 내 눈에는 칸딘스키의 뜨거운 추상화 같은 이미지들이 끊임없이 춤추었다. 흡사 SF 영화에서 차원 이동 같은 것을 할 때 보이는 영상과 비슷한 것이, 이대로 계속 있다가는 다른 세계로 빨려들어갈 것 같은 예감이 들어 설렘을 안고 기다려보기도 하고 때로는 두려움에 일어나기도 했다. 그 덕에 잠을 자주 설쳤고, 방사선 치료를 받고 집으로 돌아오면 깊은 잠에 곯아떨어졌던 것도 이 점이 한몫했다.


 ‘내일부터 그냥 원래대로 해버릴까? 일단 거실에서 나가서 몇 시인지 봐야겠다.’


 아픈 이후로 혹시나 있을지 모를 전자파의 영향을 피하기 위해 그전에는 머리맡에 두던 휴대폰을 바닥에 두고 잤는데 영 보이지 않았다. 결국 방문을 열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이내 책장에 얹어져 있는 휴대폰을 발견했다. 어머니께서 밤사이에 다녀가신 모양이었다. 바닥도 머리에서 가깝다며 더 멀리 두라던 어머니의 말씀이 생각났다. 여러모로 걱정 끼쳐드리는 것 같아 죄송스럽다. 시간을 확인하니 10시가 넘어 있었다. 당황했다.


 ‘아빠가 왜 안 깨웠지? 아빠도 자나?’


 화들짝 놀라 아버지께서 주무시고 계실 안방으로 가다가 중요한 사실을 기억해냈다, 방사선 치료가 어제 끝났다는 것을. 평소였다면 지금쯤 자전거를 4~50분 돌리고 샤워한 뒤 병원 갈 준비를 하고 있었을 시간이지만 이제부터는 아니다. 어제로써 예정되었던 30차례의 방사선 치료가 모두 끝났으니까.


 ‘도로 잘까?’


 다시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가 잠의 여운을 즐겨본다. 좋다. 이불의 보드라우면서도 시원한 감촉이 나를 감싼다. 이대로 나를 녹여버릴 것만 같은 노곤함. 이대로 한숨 자면 몸이 가뿐할 것 같다.


 ‘아, 안 되겠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늘어져 있다가는 방구석 폐인이 될 것 같은 두려움이 스쳤다. 그렇지 않아도 치료가 진행될수록 누워 지내는 시간이 늘고 있었다. 견딜만하다 생각했지만 치료에 뒤따르는 체력적 부담이 마냥 무시할만한 수준은 아닌 듯했다. 그래서 그때마다 ‘치료가 끝나면 ~~ 하리라.’ 다짐하곤 했다. 그 순간의 내 마음이 거짓이 아니었음을 증명해야 한다. 양치기 소년이 되고 싶지 않다. 하루에 딱 하나 있던 일정 ‘병원 방문’마저 없어진 지금, 이렇게 풀어져버리면 영원히 게으름뱅이로 남게 될 것 같다.

 거실로 나가 오늘 하루 먹을 약을 챙겼다. 병원에 있을 때는 예쁜 간호사들이 직접 약을 챙겨주었지만 퇴원한 이상 바랄 수 없는 호강이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면 항상 하루치 약을 챙겼다. 혹시나 잊을까봐.

 ‘뉴로메드 시럽... 케프라정... 어, Temodal은 어디 있지?’


 평생 먹어야 할지도 모를 항경련제와 뇌대사 기능 촉진제 시럽을 챙기고, 마지막으로 자기 직전에 먹는 항암제를 찾는데 아무리 뒤져보아도 보이지 않았다.

 ‘아, 오늘부터 휴약기간이지. 다 까먹네. 습관이 무섭긴 무서워.’


 어제는 방사선 치료도 끝났지만 저용량 Temodal 병용투여도 종료되는 날이기도 했다. 남은 치료는 4주 휴약기를 거친 후 진행되는 6차례의 화학요법뿐이다. 5일 고용량의 Temodal을 먹고 23일을 쉬는 패턴이 6번 반복될 예정이다. 꽤 중요한 사실이었는데 그만 깜빡했다.

 ‘방사선 종양학과 선생님이 방사선 치료로 인한 해마 손상으로 기억력이 감퇴될 수 있다고 경고했는데 그 때문인가?’


 5ml 짜리 시럽 2포와 노란색, 파란색, 흰색 알약이 각각 2개씩 담긴 약주머니를 물끄러미 보았다. 어제만 해도 Temodal 100mg 캡슐 1개와 20mg 캡슐 3개가 더 들어있었던 약주머니였다. 비싸고 귀한 약이라서 그런지 포장도 꽤나 철저히 해놓아서 그것만 모아도 부피가 어마어마했었다. 그것들이 빠지니 확실히 헐빈하다. 만감이 교차한다. 예전에는 그저 뉘앙스만 받아들이다가 이제 그 속에 함축된 의미를 십분 공감하게 된 말이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절실하다.’ 이고 다른 하나는 ‘만감이 교차한다.’는 말이다. 수많은 생각들이 머리 안을 휘젓는다.

 Temodal을 당분간 먹지 않을 생각을 하니 이제는 깊게 잠들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감도 들고, 반대로 다 나아서가 아니라 몸에 부담을 덜 주기 위해 약을 잠시 쉬는 것인데, 그런 연유라면 차라리 쉬지 않고 치료를 계속 진행하여 빨리 낫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무엇보다도 아쉽다. 좀 더 정성스레 먹지 않은 것이 후회된다. 마음의 힘이 생각보다 강력함을, 마음가짐이 치료에 미치는 영향력이 지대함을 절실히 느껴놓고 왜 그렇게 별생각 없이 먹었는지 모르겠다.


 ‘성심성의껏 약을 복용했다면 난 지금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을까?’


 처음에는 항암제 먹는 일은 하나의 의식(儀式)이었다.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이 약이 나에게 닥쳐온 불행을 물리쳐 줄 수 있는 힘을 지닌 존재라 여기며 감사한 마음으로 먹었다. 그 날 하루는 ‘잠들기 직전의 이 순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그렇게 약을 먹었다. 방금 먹은 약의 신령스러운 힘이 혈관을 타고 나의 뇌 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수없이 상상하며 잠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항암제를 먹는 일은 그냥 하나의 일상이 되었다. 약이 가져다줄 부작용을 낮추고 효능을 높일 것을 기대하며 마음을 정갈히 하고 정성스레 놓던 침도 어느 순간 TV 보면서 몸에 찔러놓고 있었고, 약도 하기 싫은 과제를 억지로 하듯 입 안에 털어 넣었다. 후회된다. 갑자기 느껴지는 적막을 통해 방금 전까지 집 안을 가득 채우던 냉장고의 소음을 인지하듯이, 이제야 느껴지는 항암제의 빈자리. 너무 크다.


 ‘좀 더 그 시간을 특별하게 생각하고 그 약을 특별하게 먹었다면 지금 몸 상태는 더 좋지 않았을까?’


 우리는 후회를 통해 과거를 생각하고, 그 당시에 더 나은 선택과 행동이 있었음을 깨달음으로써 그때보다 한 발짝 성장하게 된다고 많이들 이야기한다. 그래서 후회는 절망이 아닌, 성장의 계기라고. 하지만 나에게 남은 기회가 별로 없다. 성장하기엔 너무 늦게 찾아온 후회가 아니었을까. 그래도 별 수 없다. 다음 번 복용 때는 꼭, 처음처럼 그 시간을 특별함으로 채우리라.



 예쁜 아내와 딸을 데리고 동네에 산책 나온 방사선사를 마주치기 이틀 전, 뒤늦게 찾아온 봄은 이렇게 지난날에 대한 반성으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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