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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남 Dec 24. 2016

[소설] 내려놓음 99 뒤늦은 봄Ⅱ (1부 完)

20대 한의사, 암에 걸리다.



99 뒤늦은 봄Ⅱ




 지난 2년간 공보의 생활을 하면서 많은 운동을 접했다. 배드민턴, 탁구, 볼링, 풋살, 축구, 스키, 골프 등등.

 스키장에 한 번 간 이후로 다시는 가지 않았다. 해도 해도 너무 못 탔으니까. 풋살은 그나마 사람 구실을 했기에 좋아했지만, 축구는 거의 의무감으로 참가했다. 대회가 끝난 이후 일주일에 한 번 모이던 축구 모임이 흐지부지 되었는데 전혀 아쉽지가 않았다. 팀의 구멍이 되어 패배의 단초를 늘 제공했기에 오히려 해방감을 느끼기 까지 했다.


 배드민턴 실력도 극악무도하기 그지없어 단식은 웬만하면 피했지만, 민성이 형과 호흡이 꽤 잘 맞아 복식경기를 하면 박빙승부를 펼칠 수 있어 정말 열심히 했다. 고령군 보건소가 지금의 위치로 이전하기 전에는 근처에 체육관이 있어 점심시간마다 땀범벅이 되도록 쳤는데 어찌나 재미있던지 그 당시 보건소 출근의 목적은 오로지 배드민턴이었다.


 탁구는 혼자서도 남들과 대등한 경기를 꾀할 수 있는 유일한 종목이었다. 보건소가 이전되면서 점심시간에 배드민턴 대신 탁구를 치게 되었는데, 배드민턴에 비해 재미가 떨어져 다들 열기가 시들해졌지만 나는 더 불타올랐다. 별 이유는 없었다. 이길 수 있었으니까.


 이런 나에게 골프는 정말 특별했다. 잘하지 못하면서도 이렇게 길게 노력이라는 걸 해본 것은 비단 운동을 넘어 전 영역에 걸쳐서 골프가 유일했다. 골프를 시작한 계기도 골프가 재미있어서가 아니라 친한 형들과 계속 잘 지내고 싶어서였다. 친하게 지내는 공보의 형들이 거의 비슷한 시기에 골프를 시작해서 모이기만하면 골프이야기로 꽂을 피웠고, 단체카톡방의 대화의 대부분도 골프 이야기였다. 그 대화에 끼기 위해서, 모임에 소외되지 않기 위해서 골프를 시작했다.


 한 때 좀 친다고 평가받던 시절도 있었지만 그때도 꼴찌인 건 변함없었고 팀을 짜서 내기를 하면 항상 1등에게 붙어 밸런스 조정용도로 사용되었다. 왼손잡이이지만 여건상 오른손으로 쳐야했고 그렇지 않아도 꽝인 운동신경과 미약하기 그지없는 근력의 환상적인 조합으로 동네 아줌마보다 못한 비거리를 가지고 경기를 임했다.

 골프에서 얻은 것이라고는 동생을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정도. 집에서 오만 느시렁은 다 피우고 몇 번 책상에 앉아있다 다시 누워놓고 공부 열심히 했다고 주장하는 동생을 볼 때면 나는 혀를 끌끌 차곤 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덕경이 형이 나에게 이야기 했다.


골프 좀 열심히 연습해. 어느 정도 실력이 되어야 재미가 붙는 법이야. 원래 이 시기에는 재미없어.
에이, 저 열심히 해요. 근데 해도 잘 안 되는 건데.
야, 연습장 와서 몇 번 치다가 폰 만지고, 몇 번 치다가 폰 만지고. 집에 가서 빈 스윙 좀 해보라니까 안 하고. 유투브 동영상 링크 걸어줘도 안 보고. 머가 열심히 한 거야. 나는 연습장 오면 적어도 2~300개는 치는데, 넌 100개는 치냐?


 그랬다. 몇 번 뒤땅치고 탑볼치고 쌩크내면 멘탈에 금이 가서 회복하는데 시간이 걸렸고, 너무 못해서 재미가 없다보니 연습장에서 나오는 순간 머릿속에서 골프를 싹 다 지워버렸다. 오직 ‘매일 연습장에 나와 연습하기’ 그것만 했고, 그걸 나는 열심히 한다고 생각했다. 하기 싫은 것을 하러 나왔다는 자체가 큰 노력이니까. 그때 비로소 동생의 말이 와 닿았다.



 옆길로 이야기가 많이 샜는데,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지는 게 너무 싫어서 못하는 건 절대로 안 하는 내가 오로지 형들과 어울리기 위해 꼴찌를 도맡아 가며 했던 운동이 골프였음을 설명하고자 함이다. 이처럼 스트레스를 팍팍 주던 골프였건만 나는 점점 골프가 치고 싶어졌다. 그것도 스스로의 의지로 치고 싶어졌다. 심지어 필드에서 투명인간이 되어 남들 치는 것만 실컷 구경해야 했던 꿈도 꾸었다. 남는 게 시간인 백수가 된 만큼 열심히 연습해서 형들 앞에 환골탈태한 모습으로 등장하고 싶었다.


 나의 이런 이야기를 들은 나기 형은, 가장 행복했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골프로 나타난 것 같다고 했지만 이유는 아무래도 좋았다. 그래서 주변 골프연습장을 돌아다니며 다닐 곳을 물색했고, 집근처에 연습장을 잡았고 바로 등록하였다. 그리고 예전에 활동했었던 영화 동호회와 보드게임 동호회에도 다시 가입하고, 하루에 적어도 자기계발과 공부, 글쓰기에 얼마씩 투자하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그렇게 이틀을 보내고 맞이한 5월 12일. 마지막 방사선 치료가 종료되었고 방사선사는 축하의 인사를 건네며 이야기했다.


축하해요. 그동안 항상 웃으면서 들어와서 고마워요. 굉장히 기분 좋았어요. 아프고 힘들어하는 환자들만 보다가 동완 씨 보면 참 좋더라구요. 같은 동네 주민이잖아요. 오다가다 마주쳤을 때 모른 척 하지 말고 인사하고 지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저야 영광이죠. 제가 힘들 때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해주신 분인데요. 항상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집 앞 공원에서 예쁜 아내와 딸과 함께 산책하러 나온 그를 지나가다 볼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어? 잘 지내시죠? 몸은 어때요?
저 완전 좋아요.


 그렇게 2016년의 봄은 뒤늦게 찾아왔다.






1부가 끝이 났습니다. 2부는 단편소설집 형식으로 연재됩니다. 미숙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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