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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남 Mar 31. 2017

[소설]내려놓음 116 2cycleⅠ

20대 한의사, 암에 걸리다.



116 2cycleⅠ





 시간은 또 빠르게 흘렀다. 공보의 때 진료 받으러 오시던 할머니들처럼, 어제와 오늘을 구분 짓는 건 달라진 TV프로그램 밖에 없는 하루들을 보냈다. 그래도 특이점이 있다면 그 사이 좔이 형이 결혼했다는 것. 참 아쉬움이 많던 결혼식이었다. 지난 2년을 함께 보냈던 우리의 결속이, 이제는 예전만큼 끈끈할 수 없다는 것을 확인시켜준 행사였다. 멤버 11명 중 3명만 참석했다. 다들 주5일제와는 상관없는 직종이고, 장소도 대구에서 먼 ‘토요일 낮의 부산’이었기에 어느 정도 예상된 일이었다. 그러나 예상되고, 어쩔 수 없었기에 더 아쉽고 슬펐다. 그 말은 노력으로도 바꾸기 힘든 현실이라는 걸 전제하기 때문이다.


 생활에 치여 매일 보던 사람들이 한 달에 한 번 보기가 힘들고, 이제는 두세 달에 한 번도 힘들다. 곧 1년에 한 번도 힘들어지리라. 생각했던 것보다 헤어지는 속도가 더 빠르다. 별 수 없다. 세상에서 떨어진 톱니바퀴는 나를 흘리고 간 세상의 멀어짐을 그저 지켜볼 도리 밖에 없으니까.



 우민이와 나기 형, 이렇게 셋이서 내려간 부산. 길이 많이 막혔다. 오줌이 너무 마려운 나머지 빈 생수병을 손에 들고 고뇌하기까지 한 끝에 도착한 결혼식장. 정말이지 생수통 용량이 500ml보다 더 컸더라면 과감한 결단을 내렸을지도 모른다. 뒤늦게 도착한 탓에 이미 결혼식은 진행 중이었고, 좔이 형은 순백의 신부에게 떨리는 마음을 축가로 표현하고 있었다. 친한 친구나 선후배 결혼식에서 축가를 부른 경험이 다수 있었건만 본인 결혼식은 꽤 떨리는 듯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 좔이 형도 보기 힘들어졌구나 싶다. 부산에서 한의원도 열고 집도 부산에다가 구하고, 이제 식도 올렸으니. 졸업할 때 흩어진 동기들보다도 더 아련하고 아쉽다.


 아프지 않았더라면 더 축하하고 더 기뻐했을 텐데 환자라는 의식이 행동을 가로막는다. 기쁜 일이 가득해야 할 곳에 찾아온 병자, 테티스와 펠레우스 결혼식에 초청받지 못한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된 기분. 행여나 황금 사과를 놓고 나오지 않을까 조심하며 조용히 사진만 찍고 빠져나왔다. 그 마음을 아는 듯 나기 형과 우민이도 같이 결혼식 뷔페로 이동했다.



 방사선 치료가 시작되기 전, 병원에서 준 식생활 가이드에는 회와 육회를 삼가야 한다고 적혀 있었다. 날로 먹는 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정말 슬픈 권고 조항이었기에 치료가 끝나기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그런데 문제는 검사 결과의 좋고 나쁨에 너무 가슴을 졸이다보니 회를 먹어도 되는지 물어본다는 것을 그만 깜빡해버린 것이다. 감염에 주의해야 할 필요성도 줄었고, Temodal 복용도 하지 않아 면역력이 떨어질 가능성이 적으므로 괜찮을 것이라는 나의 의견과는 달리 가족들은 좀 더 신중하기를 원했다. 2cycle을 시작하기 전에 있을 교수님과의 면담 때 물어보고 먹자는 것. 그래서 꾹꾹 참고 있었다. 그런 내 눈 앞에 펼쳐진 갖가지 종류의 회와 선홍빛의 육회. 유명 연예인의 이름을 내걸고 하는 뷔페답게 정말 맛있어 보였다. 갈등했다. 발길이 차마 떨어지지 않아 주위를 서성이는 나에게 나기 형이 다가왔다.


먹어도 된다. 마음 놓고 묵으라. 개안타.
역시 내 맘 잘 알아. 형 밖에 없네.


 그 말을 누군가 해주길 얼마나 기다렸던가. 평소 나의 성격을 알고 있었던 형이 눈치 챈 것이 분명했다. 형의 말을 듣자마자 주저 없이 회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씹을 때마다 흘러나오는 육즙, 쫄깃한 식감, 코를 살짝 찌르는 알싸한 고추냉이, 일탈이 가져오는 쾌락을 맛보았다. 식대가 엄청 비싼 곳이긴 해도, 뷔페는 뷔페일진대 고급 음식점의 그 것보다 더 맛있다.


접시 치워드릴게요.


 아르바이트생이 다 먹은 접시들을 포개어 가져갔다. 손끝에서 향기가 풍겨온다. 작은 얼굴, 화장한 듯 안 한 듯 흰 피부, 엷게 물들은 붉은 입술, 가느다란 목소리. 이쁘다. 설렌다. 눈은 마음을 쫒는다.


와~ 형! 방금 알바생 봤어요?
진짜 예쁘네. 귀엽다.


 격양된 우민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간만에 본 여자 사람에 눈 돌아가는 내 모습이 마치 갓 휴가 나온 군인 같아 보여 혼자 이게 뭐하는 짓인가 하며 자괴감이 들던 참이었는데, 다행이다 싶어 얼른 맞장구쳤다. 동의를 구하는 눈빛으로 나기 형을 보았다. 오래된 여자친구와 곧 결혼할 예정인 나기 형에서 언뜻 보였다고 생각한 희미한 미소는 착각이었을까. 형은 묵묵히 식사에 열중하고 있었다.


누구? 아, 방금? 난 제대로 안 봤는데? 어린 것들. 좋을 때다.


 결혼식을 마치고 다시 대구로 돌아오는 길. 뒷자리에 앉은 우민이가 멀미로 잠든 사이 나기 형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간만에 만나는 바깥사람이다 보니 해도 해도 할 말이 쏟아져 나와 시간이 도리어 모자랄 지경. 듣는 나기 형이 귀찮지는 않을까 걱정이 살짝 들지만, 그래도 떠들어 대었다. 지금 아니면 언제 또 말할 수 있을지 모르니까.


이 새끼, 많이 외로웠는 모양이네.
그래, 말 할 수 있을 때 다 해둬라.
이야기도 맞장구 쳐주는 사람 있어야 신나지.
혹시나 안 귀찮나 해서, 운전할 때 방해될 것 가기도 하고.
상관없다. 내 운전 경력이 몇 년인데. 잠도 깨고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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