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남 Mar 31. 2017

[소설]내려놓음 120 3cycleⅡ

20대 한의사. 암에 걸리다.



120 3cycleⅡ






 여행에서 돌아오고 이틀 뒤 월요일, 신경외과 교수님과의 면담이 있었다. 교수님은 이제 막 움트기 시작한 왼 머리에 반가움을 표시하며 이번 3cycle이 끝나면 경과 관찰을 위한 MRI 촬영과 판독이 있을 예정이라 말씀했고 그 이외에 별다른 이야기는 없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기에 별다른 특이할 만한 사항이 없는 듯 했다.


 같은 주 금요일, 3cycle이 시작되었다. 방학이어서 마음이 편했다. 내가 며칠 난리쳐도 특별히 큰 타격이 있을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좋았다. 보통 때는 그냥저냥 막 살아도 첫 날이 되면 언제 그랬냐 싶게 경건해진다. 모든 의식(儀式)을 차례로 거행하고 약을 먹은 뒤 자리에 누웠다. 이번에도 그때 적어내린 글로 상황을 갈음한다.




 생각을 하는 것인지 생생한 꿈을 꾸는 것인지 애매한 경계에서 참을 수 없는 뇨의를 느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원하게 누고 나니 그때서야 밀려오는 구역감. 시계를 보니 1시 25분이다. 11시 15분에 약을 먹었으니 벌써 2시간 10분이 흐른 것이다.


 ‘이제 50분만 버티면 되는구나!’ 하며 멈춰진 선풍기를 켜고 침대에 다시 누웠다. 그러나 비탈길에 한 번 굴러버린 돌멩이처럼 구역감의 기세가 점점 커져간다. 멈출 수가 없다. 결국 참지 못하고 일어났다. 시계를 봤다. 1시 35분. 고작 10분이 지났다.


 거실에 미리 준비해둔 노트에 지금의 일들을 기록해본다. 그리고 1cycle과 2cycle 때는 어땠는지 한 번 읽어보았다.


복용 후 2시간 즈음이 흐른 뒤에 일어나고,
치밀어 오르는 구역감에 체념한 몸은 이내 침을 쏟아낸다.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는 구역감을
EFT를 통해 잠시 잠재우며 글을 쓴다.
야속한 몸은 대변 신호를 보내며 가스를 내뿜는다.


 똑같다. 이렇게 똑같을 수가 없다. 너무 똑같아서 딱히 더 적을 게 없다. 차례차례 진행되는 단계에 소름이 돋는다. 예언서에 적힌 결말이 결코 좋은 상황이 아니기에 더욱 무섭다. 피하고 싶다.


 결국 토했다.

 2시다. 2시간 45분 만이다.

 이 정도 버텼으면 괜찮다.

 이제 마음 놓자.



 기록으로 갈음하는 것은 이것이 마지막이다. 3cycle 이후 화학요법에 대한 몸의 반응이 전혀 다르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약을 먹고 3시간 이내에 잠이 깨는 경우가 없어졌고, 대신 5일 내내 가라앉지 않는 구역감 속에서 밤을 지새워야 했다. 11시에 약을 먹으면 2~3시쯤 일어나 7~8시까지 구토하는 양상으로 바뀌었다. 그 덕에 토하지 않으려고 애쓴다며 이리저리 난리치고 《난중일기》 마냥 기록으로 남기는 일도 사라졌다. 울렁이는 속을 부여잡고 일어나서 시간을 확인하면 시간이 꽤 지나있었고, 그러면 마음 놓고 토해버렸다.



 3cycle이 끝나고 얼마 뒤 MRI 촬영이 있었다. 기도를 드렸다. 교리반에서 배운 몇몇 기도와 함께 나의 지향을 넣어서 정성껏 빌었다. 촬영을 앞두고도, 촬영 중에도, 촬영 후에도 내용은 모두 동일했다. 그저 결과가 정확하게 나오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안 좋게 나온다 하여 당신을 원망하지 않을 터이니, 괜히 습자지 같은 저의 멘탈을 위한답시고 진실을 숨기시지 마시고, 더도 말고 딱 그대로 어느 누가 봐도 헷갈리지 않게 오차 없이 찍히게 해달라고 빌었다. 그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차마 결과를 좋게 나오게 해달라고 기도드릴 수가 없었다. 너무 무리한 부탁을 하면 한큐에 거절하실 것만 같아 욕심을 꼬깃꼬깃 접어 슬쩍 감추고는, 이면에 숨겨진 욕심까지 알아듣고 들어주시길 바라며 빌고 또 빌었다.


 MRI를 촬영할 때는 정확한 결과를 위하여 머리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테이프로 강하게 머리를 고정시킨다. 그런 다음 시끄럽고 좁은 통 안으로 들어가 3~40분 간 누워있는 것인데, 생각보다 이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대기실에서 촬영을 기다리고 있으면 종종 돌발 상황을 목격하곤 한다. 갑갑해서 숨을 못 쉬겠다며 기기 안에서 소리를 지르는 분도 보았고, 기침이 멈추지 않아 촬영을 시도했다가 다시 나오시는 분도 있었다. 나는 대개 그 시간을 걱정이나 계획으로 채웠고, EFT를 시작한 이후로는 상상 두드림을 실시하며 시간을 보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얼마 전에 배운 묵주 기도를 드리고 싶었다.


상상 두드림 (imaginary tapping)

두드림을 실제로 하지 않고, 두드리는 상상을 하는 것으로 갈음하는 것.
몸이 너무 피곤한 밤이나 MRI 도중과 같이 물리적으로 두드림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효과적


저기요. 선생님, 이거 들고 들어가도 되나요?
묵주요? 괜찮아요. 신자이신가 봐요?
아뇨. 교리반에 다니고 있어요. 세례는 아직 못 받았어요.
미리 축하드립니다.
기도 하시는 건 좋은데 머리가 움직이면 안 되니까 조심해주세요.
네.
이제 귀마개 꽂을 거예요.
3~40분 걸립니다.
중간에 조영제 넣는다고 잠시 나올 겁니다.
시작합니다.
조금만 참으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소설]내려놓음 119 3cycle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