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남 Mar 31. 2017

[소설] 내려놓음 외전 02 우화(羽化)를 기다리며

20대 한의사, 암에 걸리다.



외전 02 우화(羽化)를 기다리며






 집에서 몇 달 쉬면서 느꼈다. 그동안 쓸데없이 바쁘게 살았음을, 여유가 없었음을. 문제는 정말 쓸데없이 바빴다는 거였다. 축구도 대강 드리블을 할 줄 알고 패스나 슈팅이 되고 나서야, 포지션이 생기고 전술이 나오지 않겠는가? 그 단계에서 해결할 문제나 겪어야 할 경험이 있어야 더 나아갈 수 있음에도, 나는 그 뒤의 상황만 신경써버렸다.

아무리 백날 미리 대비해보아야 그때 열심히 하는 것 못하다.

그 상황이 되지 않고서는 알 수 있는 부분이 적다.
지금 단계에서 할 수 있는 것에 신경을 써야 한다.


 조급해 하는 나를 보며 많은 조언이 있었지만, 알아먹지 못한 채 시간을 보냈다.



 내 삶의 주인공을 종양에게 강탈당해 관찰자가 된 지금에서야 내 조급함의 무의미함과 조언들에 담긴 마음을 느끼고 있지만, 제 버릇 남 못 준다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쉽사리 떠나가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을 재충전의 기회로 삼으라는 충고가 그야말로 빗발치지만 나의 무의식은 자꾸만 거부했다.



 거짓말 하나 보태지 않고, 부모님께서는 중 고등학교 생활 6년 통틀어 잠 일찍 자라는 이야기는 숱하게 했었어도 공부 좀 하라는 소리는 10번도 안 하셨다. 그렇다고 해서 부모님이 딱히 자식 공부에 대해 관대한 기준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시험 망치고 집에 돌아와 우는 동생을 보며 부모님은, “공부나 하고 울면 모를까 시험 전날까지 범위 한번 다 안 본 애가 머가 억울하다고 저리 울꼬.” 한숨을 내셨고, 그런 이야기를 들은 동생은 공부 열심히 했는데 그걸 몰라준다며 집을 한바탕 뒤엎곤 했었다. 나는 그냥 내가 공부했다.



 맨손으로 시작한 부모님의 신혼생활. 1년 뒤에 태어난 나. 어머니께서 나를 가졌을 때 지나가다 족발이 그렇게 먹고 싶었더랬다. 그래서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말했다.


이 족발 먹을까?
그러던지.
2개 살까?
아니 난 됐어.
그러면 하나만 산다?
응.
진짜 안 먹을 거지?
그래.


 그렇게 조그마한 족발 하나만 사서 집에 들어와 아귀아귀 먹기 시작한 어머니. 그런 어머니를 지켜보고만 보고 있는 아버지가 안 되어 보여서, 어머니는 일부를 뚝떼어주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살은 거기 가 있었고, 어머니에게 주어진 것은 뼈에 붙은 몇 점의 살코기 뿐. 어머니는 족발을 몇 번이고 갉아먹다가 결국 던지고 우셨다고 한다. “그러니까 두 개 사자고 했잖아!” 하고 소리치며.


 배달음식 시킬 때 가끔 어머니와 아버지 간에 실랑이가 벌어질 때면 으레 흘러나오는 이야기이다.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쯤은 들은 이야기 같으니 분명 백 번은 채우고도 남았다. 그렇게 부족한 형편 속에서 난 태어났다. 하지만 어머니는 어린 시절 공부하고 싶어도 여자가 어딜 공부하느냐며 가로막았던 외할머니를 떠올리며 없는 살림을 탈탈 털어 내 교육에 투자했다. 9개나 되는 책장, 그 당시에 유행했던 은물 교육, 신기한 한글 나라 등등.



 ‘내가 이렇게 널 키웠으니 실패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말 한 마디 한 적 없었던 부모님이었고, 부모님이 그 당시 어렵던 시절에 날 키우던 에피소드를 이야기할 때도 그저 그 시절의 어려움 속에서도 나를 잘 키운 것이 만족스럽다는 수준의 뉘앙스였지 과도한 기대 따위는 없었다. 그러나 그 속에서 나는 셀프로 압박받았고 계속 달렸다.


 대학교에 합격하고 나서 한숨을 돌려도 되련만 그러지 못했다. 우연일지는 몰라도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더 대단했다. 과외해서 스스로 등록금을 마련하고 집에 생활비까지 대는 영원이 형, 마찬가지로 등록금과 자신의 차 할부금까지 스스로 버는 상화 형, 고3 연년생 동생에게 용돈도 주고 아침저녁으로 차로 등하교도 시켜주는 민현이. 대학교 부총장의 따님임에도 그런 티 하나 없이 주변 사람들을 알뜰살뜰 챙기는 회린이 누나. 그 뿐일까? 다니던 직장을 때려 치고 다시 공부를 시작해서 한의대에 입학하고 가족의 생계도 책임지면서 학업을 이어나가는 수많은 형님과 누님들. 그 분들에게 비해 난 너무나 모자랐고 스스로에게 채찍질 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깜냥은 안 되면서 욕심은 이렇게 많았으니 실수가 많았던 것은 당연한 결과. 그리고 지금도 계속 실수하고 있다. 아마 이런 것들을 받아주면서 미워하지 않고 충고해준 주변 사람들이 없었다면, 스스로도 많이 걱정했던 수전노(守錢奴)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돌이켜보면 후회되는 일들이 참 많다. 쓸데없이 바쁘게 보낸 시간이 아깝고 또 아깝다. 그래서 나는 원한다. 내 자식만큼은 나의 삶을 살지 않기를.



 하지만 누군가 ‘이런 삶을 살도록 한 부모님을 원망하느냐?’고 묻는다면 ‘아니다.’라고 당당히 말할 것이다. ‘내 삶을 만족하냐? 불만족하냐?’ 하고 딱 잘라 묻는다면 ‘만족한다.’고 대답할 것이다. 부모님께서 내게 주신 시험지는 쉽게 100점을 맞을 수 있는 난이도였다. 틀렸다면 그 잘못은 내 자신에게 있었지 외부환경이 절대 아니었다. 내가 그 위치에 있었다면 그만큼 잘 할 자신이 없을 정도로 훈육에 있어 부모님의 선택은 옳았다.


 그럼에도 자식이 내 삶을 반복하지 않기를 바라는 이유는 단 하나다. 지금 내 상황이 그 당시의 부모님보다 한결 낫기 때문이다. 가난했던 집안에서 홀로 공부하여 온전히 스스로의 힘으로 모든 역경을 헤쳐 나가고 결혼도 했던 부모님과는 다르게, 나는 가정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부족함 없이 컸다. 가정을 꾸릴 때의 경제적 여유도 아마 더 있으리라.


 그렇기에 나는 자식에게 주고 싶다. 실패해도 된다는 여유를, 적어도 한 번쯤은 실패해도 너를 지켜줄 수 있다는 안정감을 주고 싶다. 그리고 나는 믿는다, 내 자식이 그 안정감만 믿고 개망나니처럼 살지 않을 것임을.


 어쩌면 지금의 나를 만들어낸 부모님의 희생은, 앞으로의 나의 삶과 나의 자녀들을 위해 마련된 거대한 포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지금의 넘어짐도,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던 소중한 것들을 기억하고 간직하라는 운명의 배려가 아니었는지 생각해본다.



 ‘삶과 진정한 혁명에 대한, 그러나 무엇보다도 희망에 대한 이야기, 어른과 그 밖의 모든 이들을 위한 이야기’인 『꽃들에게 희망을』을 볼 때마다 두 번은 꼭 읽는 구절이 있다.


나를 보렴. 나는 지금 고치를 만들고 있단다.
내가 마치 숨어 버리는 듯이 보이지만,
고치는 결코 도피처가 아니야.

고치는 변화가 일어나는 동안
잠시 들어가 머무는 집이란다.

고치는 중요한 단계란다. 일단 고치 속에 들어가면
다시는 애벌레 생활로 돌아갈 수 없으니까.

변화가 일어나는 동안, 고치 밖에서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나비는 이미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란다.

다만 시간이 걸릴 뿐이야!



 그렇다.

 난 지금 번데기의 시간을 갖고 있는 중이다.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비는 만들어지고 있다.

 시간이 좀 걸린다고 하니 예의 그 조급함을 버리고 기다려본다.

 우화(羽化)의 그 때를.

매거진의 이전글 [소설]내려놓음 외전 01 책과 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