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내려놓음 27 D-3 Ⅰ

20대 한의사, 암에 걸리다.

by 한남



27 D-3 Ⅰ




[3/14 월]


사람이 몹시 못마땅하거나 언짢아서 나는 성을 화(火)라고 하며, 이런 화(火)를 잘 참지 못하는 사람을 보고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라고 흔히 이야기한다. 반대로 화(火)를 너무 참아서 배출시키지 못하여 신체적 증상까지 나타난 경우를 화병(火病)이라 한다. 이때 한의학에서는 쌓인 감정의 응어리를 풀어주는 심리요법과 더불어 몸을 태우고 있는 불을 꺼주는 찬 성질의 약을 사용하여 치료한다. 하지만 화병도 항상 참아서 오는 것은 아니다. 너무 화(火)를 많이 내는 사람에게도 올 수 있다.

수술 받기 전 ‘병실 룸메이트’ 이었던 투덜이 아저씨가 딱 그랬다. 치밀어 오르는 화(火)를 주체하지 못하고 간호사는 물론 고생하고 있을 딸 걱정에 찾아온 장인 장모에게도 쏟아냈다. 답답했을 것이다. 지옥 같던 중환자실에서 1주일 있다가 이제 막 빠져나온 참인데 다시 수술할 걸 생각하면 말이다. 그 당시에는 몰랐지만 그 곳에 다녀온 지금은 십분 공감한다. 그런 아저씨에게 예정된 수술은 ‘뇌동맥류 수술’이었다.


뇌동맥류는 뇌혈관벽의 일부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상태를 말한다. 풍선처럼 부푼 곳에 혈액들이 휘몰아쳐 흐르다보면 잘 터지게 되며, 터지면 뇌출혈이다. 특히 뇌동맥류는 대개 지주막하 공간에 있으므로 터져버리면 생존율이 낮은 SAH가 되어 위험하다. 이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하는 수술로서, 풍선 입구를 묶어버리거나 풍선 안에 코일을 채워 피가 흐르지 못하도록 한다.



지주막하 출혈 (SAH : Subarachnoid Hemorrhage)

지주막하 공간은 뇌의 혈액을 공급하는 큰 혈관이 지나다니는 통로인 동시에 뇌척수액이 교통하는 공간으로 상당히 넓다. 따라서 이 부위에 출혈이 발생할 경우, 다른 부위에 발생한 뇌출혈에 비해 출혈량이 많아 위험하다. 지주막하 출혈의 원인의 65%는 뇌동맥류의 파열이며, 뇌동맥류 파열 후 1/3은 그 자리에서 즉사, 1/3은 병원 이송 도중 및 병원에서 사망하며 나머지 환자만이 치료를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저씨는 뇌동맥류가 있으면 그게 100% 터지는 거냐며 수술하기 싫다고 의사를 제외한 모든 사람에게 신경질을 부렸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 아저씨는 100% 터질 것이다. 아저씨의 화(火)를 견디기에는 너무나 약한 게 사람 몸이니까. 헤라클래스도 그렇게 성질내면 터진다. 불같은 성격은 피도 뜨겁게 끓어오르게 하고 혈압을 오르게 하고 결국 펑. 확실하다. 그러니까 이렇게 수술 받기 싫다는 사람 억지로 붙잡고 입원시켜둔 거다.


그런 652호의 폭군의 지배 아래서 그 분의 보호자도, 나도, 부모님도 공포에 떨어야 했다. 그리고 몸까지. 속이 뜨거우면 겉도 뜨거워진다. 3월 초. 아직 겨울이 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그때에도 아저씨는 더워했다. 창문도 종종 열었고 밤에 난방 트는 것도 질색했다. 지은 지 오래된 건물이라 히터를 틀어 뜨거운 바람을 내는 구식 난방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는데 그 스위치는 폭군의 손아귀에 있었다. 본인이 조금만 답답하다 싶으면 히터는 여지없어 꺼졌다.

찬 공기는 아래로 흐르는 법. 환자 침대에서도 스며드는 한기의 기척에 놀라 설핏 든 잠이 달아나버리는데 바닥 보호자 침대에서 자야했을 부모님은 어땠을까? 다시 돌아온 병실에 폭군은 수술 받기 위해 권좌를 내려놓았지만, 이따금씩 나오는 아버지의 기침과 콧물에서 그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오전 6:00

밤잠을 설쳤다. 내가 뒤척일 때마다 아버지도 같이 뒤척였다.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아 보인다. 괜찮을까? 룸메이트가 바뀐 후로 난방은 빵빵해졌지만 시작해버린 감기를 되돌리기에는 너무 늦었다. 위태위태한 모래성을 바라보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아버지가 무너지면 모든 짐은 어머니의 몫. 한 사람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무거운 짐이다. 불안하다. 마음이 약해진다. 빨리 이곳에서 탈출하고 싶다. 억지로 눈을 감고 ‘괜찮아 잠 들 수 있다.’ 수없이 이야기하며 자기 암시를 걸었다. 밤의 병원시계는 오늘도 느리다.

그래도 어제에 비하면 많이 잤다. 화장실도 두 번 밖에 안 갔다. 내가 지금 이 시점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은 ‘마음의 안정’ 이다. 여기에만 신경 쓰자.




(28 D-3 Ⅱ 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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