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내려놓음 34 D-2 Ⅳ

20대 한의사, 암에 걸리다.

by 한남



34 D-2 Ⅳ




[3/15 화]

오후 3:00

또 할 일이 없다. 아까 들은 이야기도 있고 하니 다시 과거를 곱씹어본다. 결론! ‘나는 운이 많다.’


사실 사소한 일에는 운이 별로 없었다. 담벼락을 다 같이 타넘고 놀아도 나만 인대가 늘어나 깁스했고, 달리기도 느려서 술래는 항상 나였다. 초등학교 때 전학 가서 적응 못하고 왕따가 되었고 중고등학교 시절 대부분도 뚱뚱한 외모로 오는 놀림과 자격지심 때문에 늘 겉돌았다. 그때 나를 받쳐준 것은 ‘꿈’이라는 기둥이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한의사가 되고 싶었다. 왜 그런 꿈을 가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정확한 기억은 없다. 알게 모르게 잉태된 꿈은 시간이 지날수록 추가되는 현실적인 이유들을 먹고 자라났다. 현역으로 군대 가지 않아도 되고, 큰 돈 들이지 않더라도 개원해서 자수성가할 수 있고, 싫어하는 영어 공부 덜 해도 되고. 무엇하나 흠 잡을 곳 없던 ‘한의사’ 라는 꿈이었다. 그리고 이루었다. 서울대 합격증조차 버리게 만든 이 길을 나는 사랑했다.


그런 한의대에 입학하기 까지 운이 많이 작용했다. 그 해부터 우리 대학에는 입시전형 하나가 새로 생겼는데, 내 생활기록부 보고 만들었나 싶을 정도로 딱 적합했다. 수능도 고3 시절 쳤던 모의고사들 중에서 가장 잘 봤다. 덕분에 별 마음고생 없이 입학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학생에서 사회인으로 신분이 바뀌는 중요한 분기점이었던 2년 전, 한동안 힘을 아끼고 있던 행운의 여신이 또다시 내 손을 들어주었다. 공중보건의 지역 배정은 향후 삶에 많은 영향을 줄 수 있는 큰 행사이다. 적당한 지역에 배치 받아 근무하다가 기반을 닦아서 그 곳에 개원하는 선배들이 여럿 있으며, 때마침 결혼적령기이기에 공보의 때 결혼하는 사람들도 꽤 많다. 짧게는 3년, 길게는 평생을 좌우할 수 있는 무게가 고작 제비 하나에 달린 것이다.

사실 나는 광역단체 배정 때, 지원자가 적어 미달 사태가 난 경북에 지원하지 않았더라면, 섬이나 오지가 많아 TO는 많은데도 지원자가 5명이 될까 말까한 전남으로 튕겼을 정도로 추첨 순위가 굉장히 낮았다. 그랬던 탓에 경북 내에서 지역을 선정하는 제비 뽑는 순서도 마지막 즈음이었고 좋은 순위들은 이미 다 뽑아가서 남아있지 않았다. 최고로 잘 뽑아야 50명 중 20등. 그러나 나는 그 와중에 20등을 뽑았고, 모두가 경산, 경주, 영천 등 대구 동쪽을 바라보는 틈을 타서 고령에 내 이름 석 자를 썼다. 내가 1등 뽑으면 가려고 했던 곳에 20등 뽑고 들어갔다. 고령에서의 시간은 행복 그 자체였다. 다른 설명이 필요 없다. 정말 운이 좋았다.


마지막으로 삶과 죽음의 분기점이었던 뇌수술도 대성공을 거두었다. 부작용들도 대부분 비껴나가고 멀쩡하다. 종양도 없던 것이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것도 아니고, 서서히 커져가고 있었을 것인데 이렇게 빨리 발견하고 제거도 많이 했으니 이 얼마나 운 좋은가?

어느 누가 나를 소재로 드라마를 썼다면 위기마다 터지는 운빨에 주인공 보정이 너무 심한 비현실적인 스토리라 손가락질 받았으리라.



오후 4:00

소꿉친구 일리가 바쁜 일상을 쪼개서 병문안 다녀갔다. 경찰이 된 그녀의 얼굴에는 1g의 연민도 걱정도 없었다. 별 일 아니라며 그저 길가다 똥 한 번 밟은 것에 불과하다는 그녀. 내가 그토록 바라고 바라던 방식의 위로였다. 아까 했던 ‘운’에 대한 생각을 바탕으로 긍정적인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찾아와줘서 고맙다. 일리 생일은 4월 7일이다. 그 이전에 퇴원하고 싶다.



오후 6:30

일부러 병동을 돌아다니면서 PA 간호사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엿보았다. 눈치 챘는지 자리에서 슬며시 나오셨다. 아직도 검사 결과가 안 나왔으며 검사 결과가 나와야 향후 어떤 치료를 할지 결정된다고 했다.

방사선 치료를 하게 되면 수술 부위가 아물 때까지 3~4주 정도 집에서 쉴 수도 있고, 만약에 방사선 치료와 약물 치료를 겸하게 되면 또 다르고... 소상하게 이야기 해주었다. 많아서 다 기억도 안 난다. 경우의 수가 너무 많다. 주사위는 한참 전에 던졌는데 왜 아직도 구르고 있는가? 멈추지 않는 운명의 저울질에 멀미가 난다.



오후 7:00

퇴근한 어머니와, 중간에 아버지와 교대하고 학교 강의를 듣고 온 동생이 왔다. 또다시 소란스럽다. 결국 감기가 낫지 않은 아버지가 오늘도 집에 가기로 결정되었다.

하지만 신사 아저씨가 제대로 대장 세척이 되지 않아 내시경을 실패하는 바람에 내일 아침에 다시하기로 예정된 상태이다. 아마 밤새 화장실 왔다갔다 시끄러울 것이다. 내일 어머니가 출근할 때 문제가 생길까 걱정된다. 아무쪼록 어머니가 잠을 깊이 잘 수 있으면 좋겠다. 이제 밤에 화장실 가고 싶을 일이 거의 없다는 게 다행이다.



오후 9:30

아침 출근길을 걱정하는 나에게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동완아, 엄마 괜찮아. 원래 같이 카풀하는 선생님 있잖아. 그분이 요즘 많이 운전해주셔. 그리고 교감 선생님도 수업 없을 때는 여교사 휴게실 가서 쉬라고 이야기도 하고.
그래도 새벽에 출근 준비하러 간다고 5시나 5시 반쯤에 집으로 가잖아. 그때는 운전해야 하고. 그리고 휴게실에서 쉬는 거랑 집에서 잠자는 거랑 같나.
엄마 오히려 병원에서 더 잘 자. 집에 다시 가면 밀린 집안일 하느라 정신없이 움직이고, 자다가도 깜짝깜짝 놀라 깬다니까? 무슨 일 있나 싶어서.
이제 머 큰 일 터질 거 남았다고, 나 멀쩡하다니까?
그래도 엄마는 병원에 있는 게 마음 편해서 덜 깨고 더 깊게 자. 걱정하지 마.
그리고 엄마 교대 시간 맞춰서 아빠가 오려면 거의 4시 반에는 일어나야 하는데 너무 고생이고 비효율적이야. 하루쯤은, 적어도 몇 시간 정도는 혼자 있어도 돼. 그니까 다음부터는 그러지 좀 마.


이미 어머니가 남은 이상 쓸데없는 이야기. 아버지의 감기가 빨리 낫기를 바랄 수밖에. 어머니가 주변에서 받는 배려가 감사하다. 그 배려도 어머니가 보여준 모습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겠지만, 그래도 퇴원하게 되면 어떻게든 보답하고 싶다.




(35 D-1 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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