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노란집』-《우리의 저력》
기온이 같은 영상 십 도라 해도 가을의 십 도와 봄의 십 도가 그렇게 다를 수가 없다. 가을에 살갗에 와 닿는 바람은 소슬하고 봄바람은 훈훈하다. 창밖으로 햇볕을 바라보고 있어도 가을에는 그 엷어짐이 보이는 듯하여 옷이라도 한 겹 더 껴입고 싶지만, 봄에는 도타워지는 게 보이는 듯하여 문득 내복을 벗고 싶어진다. 가을에는 마음이 움츠러들다가도 봄에는 활달해진다. 가을에는 추억 속으로 침잠하게 되고, 봄에는 희망을 위해, 미지를 향해 부풀어 오르기 때문이다. 달력이 그렇게 시키는 게 아니라 바람이 햇볕에 그렇게 하라 부추긴다.
(박완서 -『노란집』194p)
우리집은 겨울에 따뜻하게 지낸다. 보일러를 빵빵하게 틀어 실내온도가 28℃는 되어야 직성이 풀린다. 어떨 때는 너무 심하게 틀어 30℃에 육박할 때가 있다. 이상한 노릇이다. 여름에는 28℃도 더워 에어컨을 더 틀었다가 누진제가 걱정되어 냉방을 껐다 켜기 일쑤였는데, 겨울에는 난방이 모자란 느낌이 들게 하는 온도로 변해있다. 습도의 차이도 물론 있겠지만 그걸로 설명하기는 부족하다.
그 이유는 집이기 때문이 아닐까?
집이, 험난한 바깥과는 다르기를 바라는 그 마음.
바깥세상이 더워서 힘드니까 집은 시원했으면 좋겠고
바깥세상이 추워서 힘드니까 집은 따듯했으면 좋겠고
옷 얇게 입고 더운 바깥에서 힘들게 일했으니까
집에서는 머 하나라도 걸치고 싶고
옷 두껍께 껴입고 추운 바깥에서 힘들게 일했으니까
집에서는 머 하나라도 덜 입고 싶고
긴장된 바깥과는 구별되는 집을 원했던 것이 아닐까?
상상해본다.
만약 계절의 변화가 덥고 추움이 아닌 밝고 어두움으로 나타나 세상이 밤낮없이 여름에는 밝고 겨울에는 어둡다면 우리집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여름에는 한없이 깜깜하기를 원하고
겨울에는 한없이 밝기를 원하고 있을
그 모습을 잠시 떠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