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만든다는 것

박완서 『노란집』-《삶을 사랑하기 때문에 쓴다》

by 한남


《삶을 사랑하기 때문에 쓴다》


내가 죽도록 현역작가이고 싶은 것은 삶을 사랑하기 때문이고 노년기 또한 삶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삶의 가장 긴 동안일 수도 있는 노년기. 다만 늙었다는 이유로 아무 일도 일어날 수 없다고 여긴다면 그건 삶에 대한 모독이다. 아무것도 안 일어나는 삶에서 소설이 나올 수는 없다.


(박완서 『노란집』- 212~213p)






초등학생 때부터 한의사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딱 한 번 나를 유혹에 빠지게 한 직업이 있었으니 ‘문학가’였다.

그 당시의 유행이었는지, 우리 동네만의 유행이었는지, 아니라면 지금도 성행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여튼 O원, O높이, 빨간O 등등 학습지를 하는 사람이 무척 많았고 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 중에는 동네 친구들 3명과 같이 모여서 했었던 글짓기 수업도 있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 있었던 에피소드인데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걸 보면 나에게 꽤 크게 다가온 모양이다. 소재를 던져주면 자유롭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이 문제로 나왔는데, 그날의 문제는 ‘신데렐라의 유리 구두를 계모와 새 언니가 신었더니 모두 딱 맞았다. 신데렐라에게는 기회가 가지 않았다. 왕자는 어떻게 했을까?’ 였다.

‘별 수 있나, 결혼해야지.’ 라는 뉘앙스의 답을 한 나와는 달리 친구들은 참신한 생각을 꺼내들었고, 글짓기 선생님은 나에게 고정관념을 좀 깨고 많은 상상을 할 것을 주문했다.


난 그 선생님을 좋아했다. 같이 시작한 친구들이 흥미를 잃어 학습지에서 하나 둘 빠져나갈 때도, 나는 홀로 남았고 심지어 중3 초까지 했다. 매주 책 한 권을 읽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너무나 재미있어, 몇 주 밀린 학습지가 창피하여 O원 한자 선생님이 초인종을 눌러도 안 열어주고 버티기 일쑤였지만 그 수업만큼은 절대로 그런 일 없었다.


2001년, 친구들이 《여인천하》와 《겨울연가》에 열광하는 동안 난 《상도》를 열심히 보았다. 나의 그 모습을 본 부모님은 원작 소설도 사주셨다. 아마 부모님은 그 소설을 안 읽어보신 게 분명했다. 소설의 후반부는 사춘기를 맞이한 중학생의 엉큼한 상상력을 자극할 정도로 야했고 그래서 더 빨리 더 자주 읽었다.

책을 보며 비록 상인이었지만 노년에는 채마밭을 가꾸면서 자신이 지은 시를 엮은 『가포집』을 비롯 여러 저서를 남긴 임상옥을 보며 참 신기해했었다. 그러다 그 당시 유행하던 한비야의 『중국견문록』도 읽었는데, 그 책을 읽고 나는 생각했다.


‘유명하면 이런 일기도 책으로 낼 수 있구나.’


중학생의 치기(稚氣)어린 생각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지만 그때는 굉장히 진지했다. ‘수필’이라는 장르에 대한 개념이 부족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그 당시 고위층도 아니고 사농공상(士農工商) 네 가지 신분의 최하층인 상인(商人)이었던 임상옥도 자신의 이름으로 글을 남기는데 나라고 못할 바 없지 않은가 생각했다.

그때부터 난 내 이름으로 된 책을 꼭 남기리라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 꿈은 한의사와 함께 주욱 내 가슴에 자리했다.


고등학생 때는 공부하느라 바빴고, 대학생 때는 그냥 바빴다. 그래서 그냥 그 꿈은 미래의 어느 순간에 이루어지겠지 하며 의식 한 켠에 방치해두었다. 그렇게 10년이 지나 공중보건의가 되었고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 먼지가 한가득 쌓인 꿈을 꺼냈다. 환자가 없는 오후가 되면 진료실에 앉아 여러 이야기들을 상상했다. 그러나 좀처럼 쉽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나에게 일어난 일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평온했던 일상이었다. 나의 삶에 굴곡을 주었다고 말할만한 요소라 해보았자 부족한 집안 형편과 어린 시절의 투병 생활, 살찐 몸뚱이가 전부였다.


집안 형편도 똥구멍 찢어지게 가난하거나 집안이 폭삭 망했다 수준이 아닌 사고 싶은 거 몇 개 참는 정도에 불과했고, 어린 시절의 투병 생활은 내 기억 속에 없었다. 전신 마취 수술만 두 번에 천식 발작으로 병원 입원도 잦고 이래저래 병원 생활을 오래한 모양인데 그건 부모님의 기억 속에만 존재할 뿐이었다. 살찐 몸뚱이로 인한 에피소드도 매일 반복되는 놀림의 연속에 불과해 복사 붙여넣기 수준 밖에 되지 않았고 해봄직한 이야기는 오직 다이어트 정도였고 그건 애초에 대학생 때 블로그에다가 다 털어먹은 뒤였다.


이야기를 만든다는 것, 어려웠다. 만들어 내는 주체는 바로 ‘나’인데,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을 어떻게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말인가? 그래서 다시 그 꿈을 미래의 나에게로 넘겼다. 그냥 미래를 위한 준비도 하며, 고향 같은 곳에서 즐거운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런 나에게 나의 옷깃을 스치는 공기 하나, 나의 눈길이 닿는 물건 하나가 모두 글이 되는 순간이 찾아왔다.


누군가에게 설레었을 때.

누군가를 잃었을 때.

고난이 찾아왔을 때.

그리고 고난을 극복할 때.


느낀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삶에서는 이야기가 나올 수 없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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