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한의사, 암에 걸리다.
2016년 3월 17일 오후 5시 24분. ‘조직검사 결과 - 악성’을 통보받은 시간. 가장 먼저 비집고 들어온 생각은 거짓말 같게도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박사의 죽음의 5단계 모형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이었다. 암이라는 거대한 병마 앞에서도 환자가 아닌 의사이고 싶었던 마지막 자존심이었을까? ‘암 선고를 받은 동완’이 앞으로 어떤 식으로 심리 변화를 일으킬지 궁금했다.
사실, 결과를 듣는 그 순간부터 이미 1단계 ‘부정(denial)’이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다만 진단이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하며 병원을 불신하기에는, 알고 있는 것도 많고 의료시스템에 대한 신뢰도가 너무 높았다. 그래서 ‘암 진단’ 대신 ‘암에 걸린 나 자신’을 ‘부정’하기를 선택한 것일 수도 있다. ‘아픈 동완은 동완이 아니다. 이제 나는 ‘아픈 동완’을 떠안아야 할 운명에 처해졌다.’ 라고.
박완서의 소설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는 1.4후퇴 당시 피난 가려하지만 총기 오발사고로 다리를 관통 당한 오빠 때문에 결국 서울에 남게 되어버린 후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국군이 대부분의 시민들을 피난시키고 남하하여 텅 비어버린 서울. 그러나 어째서인지 한동안 인민군도 내려오지 않는다. 국군도 인민군도 아무도 없는 이데올로기의 진공 상태 속에서 오빠는 겁에 질리고 만다.
나도 그랬다. 수술상륙작전 성공에 힘입은 희망은 좋은 경과의 지원을 받아 절망을 괴멸직전까지 몰아붙였다. 하지만 ‘악성’이라는 외부세력의 개입에 희망은 작전상 후퇴를 감행한다. 그렇게 희망은 잠시 내 몸을 버렸다. 그러나 절망 또한 쉬이 오지 않는다. 희망도 절망도 찾아오지 않는 그곳에서 그날 밤 불이 꺼질 때까지 나는 서 있었다.
일반 병실로 돌아온 뒤부터 늘 그랬듯이 그날 아침도 희망과 기대로 시작했다.
아침이다. 오늘은 결과가 무조건 나온다. 승현이 형 말로는 검사 결과가 양성이면 그대로 치료 종료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했다. 기대된다. 게다가 어제 PA간호사도 수술로 손상된 뇌가 회복되기를 기다린 후에 치료에 들어가기 때문에 바로 연달아 치료하는 일은 거의 없다고 했다. 잠시라도 퇴원해서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고 싶다. 내일은 신사 아저씨가 퇴원하기 때문에 지금 같은 편안한 입원 생활은 앞으로 누리기 힘들 것이다. 검사 결과가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 초조하다.
문득 훈련소에서 한 달을 같이 고생했던 만규 형이 생각난다. 신경외과 전문의라서 누구보다도 더 자세히 설명해줄 수 있다. 그렇지만 나에 대한 정보가 전무한 상태에서 해줄 수 있는 조언은 한정적일 게 분명하다. 아무래도 궁금한 점을 정리해서 묻고 그에 대한 대답을 듣는 방식이 제일 적절해 보인다.
어떤 질문이 적당할까? 아는 것이 너무 없다. 다 알고 싶은데 무슨 질문을 해야 필요한 답을 얻어낼 수 있을지 감도 안 잡힌다. 향후 치료가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하지만 이는 전적으로 조직 검사 결과에 달려있는 문제다. 검사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형이 해줄 수 있는 말은 없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물어볼 이유가 없어진다. 왜 만규 형을 지금에서야 기억해냈는지 원망스럽다. 좀 더 일찍부터 도움을 요청했었다면 지금쯤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하고 있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몰아친다.
생각의 나무가 바람에 흔들려 뽑힐 것 같을 때는 땅을 다져줘야 한다. 늘 하던 ‘과거 들여다보기’를 해본다. 많이 흔들린 탓에 이번 생각 다지기는 꽤 오래 걸렸다.
37 던져진 주사위(상)Ⅱ 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