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내려놓음 37 던져진 주사위(상)Ⅱ

20대 한의사, 암에 걸리다.

by 한남



37 던져진 주사위(상)Ⅱ




2/29 – 혹시나 싶은 마음에 찍어본 MRI와 충격적인 결과, 응급실에서의 방치

3/1 – 겨우 입원한 병실, 휴일에도 급하게 달려온 형들

3/2~6 – 생사(生死)의 갈림길 앞에서 끊임없이 굴을 팠던 시간

3/7~9 – 수술, 그리고 중환자실

3/10~ - 지금까지의 기다림



그 당시 했던 행동, 생각들을 떠올려본다. 이 정도면 잘 보낸 것 같다. 그래도 조금 아쉽다. 수술을 앞둔 그때 지금의 내가 그 자리에 누워있었다면 더 잘 보내지 않았을까? 혼자 굴 파지 않고 부모님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더 깊은 마음을 공유했을 텐데.

그 시간을 떠올리니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박사의 죽음의 5단계가 생각난다. 대개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심리 변화를 설명할 때 사용하는 모형으로 신경정신과 시간에 많이 배운다. 그러나 퀴블러 박사의 저서 『상실수업』에서는 ‘슬픔의 다섯 단계’라는 표현으로 등장하며, 인간이 상실을 경험하거나 예감했을 때 보이는 반응을 모아둔 틀이라는 설명을 곁들인다. 나에게 있어 뇌수술은 분명 상실의 예감을 불러 일으킬만한 사건이었다. 생명, 혹은 인격의 소실을 감내하고 들어갔던 수술이었으니까.



슬픔의 다섯 단계 모형은 다음과 같다.

① 부정(Denial)

② 분노(Anger)

③ 타협(Bargaining)

④ 우울(Depression)

⑤ 수용(Acceptance)


1단계 부정(Denial). 환자는 자신의 진단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현실을 부정한다. 다른 병원에서는 똑바로 진단을 내릴 것이라 믿으며 자신이 원하는 현실을 이야기해줄 누군가를 계속 찾는다. 나도 처음 MRI를 보았을 때 단순히 뇌부종에 불과할 것이라 생각하고, 응급실에서 원외탕전실에 전화하여 뇌의 붓기를 빼는 한약을 주문했다. 지금도 집구석 어딘가에 있으리라. 하지만 진단명 ‘뇌종양’이 나온 이후로는 그러지 않았다. 병원 시스템을 불신하기에는 내가 본 것도, 들은 것도, 아는 것도 너무 많았으니까.


2단계 분노(Anger). 부정의 단계가 지나고 사실을 직시하게 되면 ‘왜 하필 나인가?’ 라는 의문과 함께 분노가 찾아온다. 나에게는 오지 않았다. 외할머니의 뇌종양, 아버지와 이모의 암 투병. ‘왜 하필 나인가?’에 대한 답이 나온 나에게 분노가 자리할 곳은 없었다. 충분히 올만하다고 보았다. 물론 담배 한 번 피운 적 없고, 술도 자주 먹는 편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다른 암도 아니고 뇌종양은 이렇다 할 정확한 인과관계가 밝혀진 원인 물질이 없다. 결국 ‘유전’을 제일 먼저 떠올릴 수밖에 없고 가족력은 충분했다. 오히려 그 생각은 어머니 건강에 대한 걱정으로 이어졌기에 그냥 내 지난 삶들의 실수와 잘못, 모순들이 축적되어 하늘이 벌 준 것이겠거니 여기는 게 마음 편했다.


3단계 타협(Bargaining). 피할 수 없는 현실을 인정하고 대신 그 현실이 다가오는 것을 연기하려 한다. 대게는 신과의 타협으로 나타난다. 봉사도 하고 선행도 할 테니 대신 D-day를 늦춰달라는 식이다. 자식이 결혼할 때까지만, 또는 고등학교 졸업하는 것이라도 보게 해달라고. 그러나 1주일은 ‘타협’을 시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누워있는 내가 어떻게 선행을 베풀고 봉사를 할 수 있을까? 그저 절대자를 붙잡고 살고 싶다고 부탁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다만 무신론자였던 내가 절대자의 존재를 인정했다는 이것을 ‘타협’이라고 볼 여지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4단계 우울(Depression). 열심히 좋은 일하고 치료도 받았지만 현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더 쇠약해진 몸과 지친 마음.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우울감으로 발전한다. 체념하기도 하고 계속 울기도 한다. ‘타협’의 노력조차 할 수 없었던 탓인지 몸 상태가 나빠지기에는 1주일은 짧았던 탓인지, 나는 수술 당일까지도 살아있기를 강렬히 소망하며 미래에 대한 고민을 멈추지 않았다. 체념하지 않았다. 울고 싶었지만 그 건 우울해서가 아니었다. 그냥 단지 힘들어서였다.


마지막 5단계 수용(Acceptance). 자신의 운명에 대해 더 이상 부정, 분노, 우울해 하지 않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단계이다. 방법론은 각기 다를지 몰라도 모든 심리 치유 기법들이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경지이기도 하다. 수용도 나에게 없었다. 수술실로 들어가기 직전까지도 바보 되거나 똥수발 들게 만들 것 같으면 그냥 수술실에서 죽여 달라고 간절히 빌었던 사람이 나다.



퀴블러 박사는 이야기한다.

전형적인 상실의 모습이 정해져 있지 않듯 전형적인 반응도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의 삶이 다양하듯 슬픔 역시 그렇다.
이 다섯 단계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지만 그 상실과 함께 삶 속에서 배우게 될 것을 한데 모아 놓은 하나의 틀이다. 느끼게 될 감정들을 선명하게 해주며 구별지어주는 하나의 도구이다. 하지만 각 단계가 순서대로 지나게 될 슬픔의 정거장은 아니다. 모두가 이 다섯 단계를 전부 겪거나 정해진 순서대로 경험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보기에는, 나는 5단계 중에 맞는 것이 거의 없었다. 이유가 무엇일까? 모자란 지식을 가지고 두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보았다.


① 별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② 의식하지 못했을 뿐이다. 무의식이 모든 것을 처리했다.


왠지 2번 같다. 분명 나는 무척 힘들어했다. 그래서 끝도 없이 굴을 파내려가지 않았던가. 방어기제*를 발동시켜서 모든 생각들을 외면하는 억압(repression)*한 것이 아니었는지 생각해본다. 입원하기 며칠 전에 봤던 『상실수업』의 내용이 머릿속에 잔뜩 남아있었기에, ‘상실’이 너무 적나라하게 다가왔을지도 모른다. 한 단계 한 단계 그 과정을 밟아가는 내 모습을 ‘의식’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짐이 아니었을까? 비전문가이기에 답은 알 수 없다. 나중에 한방신경정신과 전문의인 은경이 누나에게 한 번 물어보아야겠다.





방어기제

인체 내외의 자극이나 위협에서 자신을 방어하며 상충(相衝)하는 충동 사이에서 타협을 찾고 긴장과 불안을 덜려는 심리 작용.

방어기제에 문제가 있거나 성숙하지 못한 방어기제가 작용될 때 정신증상이 발생할 수 있다.

잊고 싶은 생각이나 기억, 용납되지 않은 욕구를 회피하는 방어기제로 억압억제가 있다.


억압(repression)은 무의식(unconsciousness)에서 일어나는 신경증적 방어기제이며

억제(suppression)는 의식이나 반의식(semiconsciousness)에서 일어나는 성숙한 방어기제이다.




38 던져진 주사위(상)Ⅲ 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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