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한의사, 암에 걸리다.
알딸딸하다. 이제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아까 들었던 내용들을 바탕으로 앞으로 어떻게 살면 좋을지 계획을 짜고 부모님께 보여드렸다. 찬찬히 읽어보시던 부모님은 나에게 충격적인 이야기를 전했다. 치료 기간은 8주가 아니었다. 8개월 정도. 제대로 다 이야기했는데 너무 대충 들은 나머지 실수한 것이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누가 내 심장을 뭉툭한 망치로 세게 때린 기분이다. 당황스럽다. 결국 혼자서 견디기가 힘들어 덕경이 형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동완 : 치료 기간이 두 달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요. 8개월 잡네요. 그리고 grade도 subtype도 안 가르쳐줘요. 좀 불안하네요. 안 가르쳐주면 그냥 모르는 게 속편하고 나을까요? 주치의 한 번 쪼아서 물어볼까 싶다가도 괜히 판도라의 상자 여는 거 아닐까봐 두려워서 못 했어요.
덕경 : 알아서 뭐하게. 그냥 모르는 게 멘탈에 나아. 시키면 시키는 대로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치료 받아.
동완 : 고마워요 형. 다 괜찮다고 엄마한테 위로해놓고 막상 가만히 있으니까 좀 흔들리네요.
그래 지나간 일은 어떻게 할 수 없다. 법륜스님이 이야기했다. ‘이미 일어나 버린 일은 잘 된 일이다.’ 라고. 눈앞에 있던 시험지가 예상보다 좀 길어졌고 어려워졌을 뿐이다. 이제 풀기만 하면 된다. 내일 간호사보면 이 병동에 나 말고 뇌종양 환자는 없는지, 그 사람들의 삶의 질은 어떤지 물어보아야겠다. 이제 한동안 주치의 볼 일 많을 것이다. 전공의 1년차면 임상 2년차이다. 난 3년차이니까 나이도 비슷할 것이다. 친구 먹든 못 하든 라포* 형성에 신경 좀 써야겠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대충 다 확정되었으니 전보다 차라리 지금이 더 나은 것 같다.
라포(rapport) : 의료 스태프와 환자나 가족 간에 상호 양호한 의지의 소통이 되어 신뢰관계가 맺어지는 것
한참 우시느라 몸이 많이 힘드셨는지, 아니면 혼자서 남모르게 남은 눈물을 쏟아낼 요량인지 어머니는 평소보다 일찍 집으로 가셨다. 나를 위한 배려일까? 신사 아저씨도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드셨다. 아버지도 나도 각자 침대에 누웠다. 혼자 생각할 시간이 좀 필요했는데 워낙 일들이 바쁘게 돌아가서 그러지 못했다. 이제 차근차근 생각할 시간이 생겼다. 좋다.
41 던져진 주사위(하)Ⅰ 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