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한의사, 암에 걸리다.
엄마. 울 필요 없다. 다 예상했던 일이다. 뇌는 악성이냐 양성이냐 별로 안 중요하다. 중환자실에서도 교수가 그랬다 아이가. 뇌에 자라나는 놈에 나쁜 놈 좋은 놈 따로 있냐고. 나 다 알고 있었다.
두개골 안이 비좁다보니까 크기가 중요하고, 아무래도 뇌이니까 자리가 중요하고 그런 거지 악성이랑 양성이랑은 크게 상관없다.
양성이어도 다 제거 못하고 찜찜하고 그러면 방사선 치료도 하고 그럴 텐데 그런 거 생각하면 약물 치료 하나 더 추가되는 거 말고 없다. 까짓 거 항암제 먹으면 머 어때. 침놓으면서 증상 조절하고 그러면 임상 경험도 되고 좋지.
그리고 왜 악성인 게 엄마 잘못이야. 암이 머 누구 잘못으로 생기는 건가? 그냥 운이야 운. 누가 잘못해서 암 생겼으면 내가 제일 잘못한 거네 그럼. 근데 아니잖아. 그니까 엄마 잘못 아니야. 그만 울어. 나 괜찮다니까?
참 성상세포종이다 핍지교종이다 그런 이야기는 머래? 양성 악성 보다 그런 것들이 더 중요한데 교수님이 머라고 말했어?
마지막 물음에 두 분 모두 대답하지 못했다. 그 말 듣고 놀란 어머니는 눈물도 잠시 멈추었다. 악성이라는 말을 듣고, 그 다음부터 나온 이야기는 귀에 들리지 않으신 게 분명하다. 워낙 충격적이었으니. 자꾸 중요한 면담에서 나를 제외해버리는 병원의 처사가 못마땅하다. 양성/악성의 차이보다도 예후에 더 큰 영향을 주는 것이 성상세포종, 교모세포종 이런 차이인데 그것을 부모님이 어찌 알고, 또 처음 듣는 용어를 어떻게 기억하겠는가? 그러니까 내가 갔어야 했다. 답답한 마음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마침 교수님이 들어왔다.
이야기 들었어요. 악성이라면서요? 아쉽네요. 하긴 악성이냐 양성이냐가 크게 중요하겠어요? 그나저나 저 subtype은 무엇인가요? 성상세포종이죠?
잠시 뜸을 들이던 교수님은 맞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갑자기 다시 부모님을 모시고 나갔다. 왜 자꾸 나를 배제하는 것일까? 화가 난다.
방금 전 상황이 꿈만 같다. 악성 판정은 내가 받았는데 도리어 어머니를 위로했다. 걱정할 필요 없다고, 별 거 아니라고, 예상한 것이라고. 심지어 교수님 앞에서도 웃으며 이야기했다. 스스로 생각해도 내가 좀 이상한 놈 같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면담은 의외로 길었다. 한참 있다 돌아온 부모님은 향후 치료계획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상황 변화가 너무 컸던 탓일까? 실감이 나지 않았던 것일까? 그저 남의 이야기 같다. 별로 집중이 안 된다. 그냥 ‘그렇구나~’하며, 소식을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형들에게 결과를 알렸다. 마치 친한 누군가의 웃긴 소문을 주워듣고 퍼다 나르는 것처럼.
‘악성이라더라. 성상세포종인데 치료는 1~2주 입원하고 통원치료 6주하면 끝난다고 했다. 이제 빼도 박도 못 하게 의병제대 확정이다. 2달 아파서 1년 확보했다. 머리카락 좀 자라고 나면 열심히 놀러 다녀야겠다.’
그렇게 한참 메시지를 주고받는데 덕경이 형이 grade는 얼마냐고 물었다. 생각해보니 들은 바가 없어 의국실로 문의하러 가던 도중 마침 밖에 나와 있던 2년차 쌤에게 grade와 subtype를 물었다. 하지만 가르쳐주지 않았다. 몇 번을 캐물어도 말을 빙빙 돌리며 거부했다.
이상함을 느끼며 병실로 돌아왔다. 왠지 모르게 들떠있던 영혼과 함께.
40 던져진 주사위(상)Ⅴ 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