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한의사, 암에 걸리다.
아침 6시. 일어나자마자 밤새 흘린 땀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샤워했다. 나이트와 데이 근무를 교대하느라 정신없는 간호사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눈치껏 초록 테두리 XL 사이즈 환자복을 받아 세면도구를 챙기고 화장실로 향했다. 연필 깎을 때 흩뿌려지는 흑연가루 몇 점 묻어있는 머리. 계속 누워있었던 탓에 욕창처럼 몸에 우후죽순 돋아난 빨간 뾰루지. 줄어든 운동량 때문에 한층 늘어난 뱃살. 모든 일이 끝난 다음에는 모두 원래대로 돌아가 있기를 바라며 흰 거품으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덮어본다. 그리고 씻겨 내려가는 거품 속에 이 모든 것들이 녹아사라지기를 소망하며 물을 틀었다.
뿌옇게 흐려진 거울을 통해 머리카락보다 수만 배는 빠르게 자라는 수염을 면도하고, 챙겨온 속옷과 새하얀 환자복을 입고, 얼굴에는 새하얀 마스크 팩을 붙였다. 커튼을 걷어 아침 햇살을 받으며 이불을 정리하고 허리를 펴고 자리에 앉아 책을 읽으며 다가올 의료진을 기다렸다.
어제 나기 형에 가져다 준 『내가 비록 암에 걸렸지만』에서 옮긴이는 저자의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렇게 요약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암이 사형선고나 다름없다고 생각하지만 저자는 암이 어쩌면 축복일 수 있다는 관점을 제시합니다. 암 진단을 받은 시점을 기준으로 해서 삶을 완전히 받아들이고,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질병을 일으켰던 것들에 변화를 주고, 새로운 자기 가치와 믿음, 진실함, 사랑으로 보람 있고 힘을 가진 삶을 살 기회가 되어 줄 수도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악성 판정을 받은 그날 밤 어둠 속에서 반전의 계기를 찾았던 그때 나는 ‘암 극복 한의사라는 identity의 확보’를 떠올렸었다. 이는 ‘새로운 자기 가치’와 어느 정도 연관성이 있을 것이다. 배우기도 전에 일부를 스스로 깨쳤으니 나머지들도 무난히 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치료가 끝난 시점에는 모든 과업을 완수하여 보람 있고 힘을 가진 삶을 살리라.
다만 마음에 걸리는 것이 하나 있다. 책은 암환자 본인뿐만 아니라 보호자나 주위사람도 죄책감이나 슬픔과 같은 극도의 스트레스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심지어 보호자의 80%에서 우울증을 경험한다는 통계를 제시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자신의 탓이라며 자책하던 어머니가 떠오른다. 밖에서 모든 수분을 짜내고 들어와 담담하게 검사결과를 이야기했지만 결국 솟아나오는 눈물을 참지 못했던 어머니다. 걱정된다. 어쩌면 이 심리 기법은 나보다도 어머니에게 더 필요할지도 모른다.
‘빨리 읽고 정리해서 어머니께 알려드려야지.’
너무나도 커서 넘어설 수 없는 거대한 벽과 같았던 어머니는 어느새 아파 누워있는 내가 걱정하는 대상이 되어있었다.
옮긴이의 말, 추천사, 작가의 말, 목차. 모두 지나서 맞이하는 책의 첫 글귀.
희망은 어둠에서 시작된다. 당신이 단지 확고한 희망으로 보고 묵묵히 옳은 일을 하면 새벽이 올 것이다. 기다리고 지켜보고 행하라. 포기하지 말라. - 앤 라모트-
모든 것을 믿고 주어진 길을 걸음 하나하나마다 최선을 다해서 걷는 것이 니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이라던 혜정 누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이미 새벽은 왔다. 다가올 찬란한 햇빛의 시간을 기다리고 맞이하겠다.
일반 진료의 대부분을 이루는 사소한 질환들인 감기, 두통, 불면, 허리통증의 치료를 돕는 열쇠는 약이 아니라 의사의 지혜와 태도에서 나오는 편안함일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신뢰와 공감 어린 처방을 받은 환자들은 어떤 유효 성분 없이도 자체적으로 치유를 일으키곤 했다.
‘연구의(醫)의 적이자 임상의(醫)의 친구’ 라는 별명을 가진 플라시보(placebo)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다 잘 될 거에요.” 수술 직전 마취를 앞두고 불안해하는 나를 진정시켜준 의사의 따뜻한 말 한 마디. 회진할 때 보여준 교수님의 편안한 말투와 미소. 플라시보의 효과를 누구보다도 더 느꼈던 나였다. 간호사였던 옛 연인의 말도 같이 생각난다.
있잖아. 내가 암 병동에서 근무하는데, 터미널 환자들은 통증 많이 호소하거든. 알제?
알지. 한의사라도 그런 거는 다 배운다. 그래서?
그때 모르핀 같은 거 넣어준단 말이야? 너무 아프니까 하루에도 4번 5번 달라는 사람 많다. 그런데 그거 다 해줄 수가 없어. 다른 환자들 것도 확보해둬야 하고 수가도 그렇고 부작용도 있으니까.
그렇겠네. 그럼 힘드시겠다.
그때 어떻게 하는지 아나?
어떻게 하는데?
생리 식염수 달아준다. ‘할아버지, 이제 좀 있으면 덜 아플 거예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라고 말하면서.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럼 편안해 한다? 니도 알잖아. 암성 통증은 그거 장난 아닌 거. 그런데도 편안해 한다? 진짜 그럴 때마다 신기해.
플라시보가 대단하네. 그것까지 커버되는 줄을 몰랐다. 진짜
단순히 농도 0.9%의 소금물에게 마약의 힘을 불어넣은 건 마음이 아니었을까? 플라시보를 단순히 ‘속임수’라고 치부하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플라시보의 강도를 더 높이는 기법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의술(醫術)일까? 사술(邪術)일까? 마음의 힘을 높이 사는 입장에서 참으로 고민되는 문제다.
47 반격의 시작Ⅱ 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