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한의사, 암에 걸리다.
덩달아 떠오른 옛 연인과의 추억에 잠시 잠겨있을 때 전공의들이 찾아왔다. 불편사항을 묻는 치프에게 나는, 이상상태도 보이지 않는데 굳이 보호자가 밤을 지킬 필요가 있는지에 대해 문의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보호자는 24시간대기 해야 합니다.’ 라는 이야기가 돌아왔다. 싫다. 나 때문에 비좁고 딱딱한 차가운 침대에서 잠들어야 하는 부모님도 부모님이었지만 실은 잃어버린 자유를 되찾는데 실패한 탓이 더 컸다.
자취의 최대 장점은 ‘엄마가 없다’이고, 최대 단점은 ‘엄마가 없다’ 라는 이야기가 있다. 자취를 하게 되면 비교적 자유로운 사생활을 가질 수 있지만 반대급부로 생활의 전반적인 케어를 잃게 된다는 이야기를 위트 있게 표현한 말이다. 이 말인즉슨 생활의 전반적인 케어와 사생활의 보호는 양립하기 힘들다는 이야기. 나는 이번 사건으로 케어가 절실히 필요해졌고 그로 인해 지난 2년간 철저히 보호되던 사생활이 송두리째 사라졌다. 24시간 내내 교대로 내 주위를 지켜야 하는 부모님과 어딜 가나 존재하는 CCTV와 간호사. 숨이 막혔다.
새벽 즈음에 바이탈 체크하러 오는 간호사에게 행여나 텐트 친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을까 걱정되는 이런 병원에서 조금이라도 탈출하고 싶었다. 그러나 치프는 거절했다. 아마 내가 치프였어도 거절했을 것이다. 대수술을 마친 환자상태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변할지 모르니까. 그래도 환자로서는 섭섭하기 그지없다. 이렇게 자식을 위해 사생활을 포기한 부모님 앞에서 보호받지 못한 사생활을 아쉬워하는 내가 악마처럼 느껴지던 그때, 카톡방에서는 잃어버린 자유의 크기를 알려주듯 여자친구와 부모님 몰래 떠난 여행 이야기로 활기를 띠고 있었다.
간호사가 왔다. 어제 민성이 형의 추천대로 병원 치과에 교정기 제거 관련하여 문의했었는데, 가능하다는 답변이 온 것이다. 바로 어머니와 함께 치과로 내려갔다. 수술 후부터 잘 열리지 않게 된 턱을 억지로 벌려 입안의 철사들을 다 조각조각내고 부착물들을 제거하기를 20여 분. 지난 8개월간 나를 옭아매던 족쇄를 풀어버린 해방감은 의외로 별로 크지 않았다. 환각처럼 남아있는 이물감은 여전했고, 오히려 아쉬움만 가득했다. 이번 일이 없었다면 여름에는 한결 정갈해진 이빨을 가졌을 텐데. 오늘 동강나버린 교정기는 이제는 갈 수 없게 되어버린 미래일지도 모른다. 잔해라도 달라고 해서 간직할 걸 그랬다.
다시 병실로 돌아와 책을 마저 읽기 시작했다. 그 옆에서 어머니는 나를 위해 모자를 떴다. 옆 침대에 누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어머니와 나, 둘 뿐인 2인실. 옆 사람 눈치 볼 필요 없이 자유롭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시간이다. 어느 순간 독서와 뜨개질은 뒷전이 되어 있었다. 홀로 사색하고 그 사색을 기록으로 남기고 독서하고 이런 행위들은 분명 의미 있었지만 실재하는 위협 앞에서는 어떤 빛이나 용기는 되기에 부족했다. 그것은 ‘solo’의 한계였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함께 같이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까.
보호자 또한 스트레스에 노출되며 우울증을 경험할 수 있다는 저자의 말을 인용하며 전에 들었던 EFT강의를 토대로 책 내용을 어머니께 곱씹어 전달했다. 그리고 어머니 몰래 전여자친구와 여행 갔었던 사실을 고했다. 평소였으면 엄청 혼났겠지만 아픈 사람을 혼내지는 못할 거라는 앙큼한 생각에서 한 행동이었다. 병슬아치 노릇은 성공적이었다. 4박 5일간 찍었던 사진을 같이 보고 에피소드를 나누었다. 순천만 정원은 얼마 못 있다 나와야 해서 아쉬울 정도로 좋았고, 오동도 가느라 여수 엑스포는 못 가봐서 아쉽다며 다가오는 여름에 10년 만의 가족여행을 떠나자는 제안도 했다.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이어졌다. 그 동안 갔었던 내일로 여행이나 대구 근교 여행 경험을 모두 이야기했다. 부산 불꽃축제의 화려함, 문화재로 넘쳐나던 경주, 화려한 조명의 청도 프로방스, 소수서원과 부석사가 인상 깊었던 영주, 바닷내음 풀풀 나는 강릉 정동진 동해 묵호, 보령머드축제로 유명한 대천해수욕장, 제빵왕 김탁구의 배경이 된 대전의 성심당, 꽁꽁 얼어버려 빙어 한 마리 먹어보지 못했던 제천 의림지, 걸어서 건넌 금강 하굿둑, 맛집 가득한 전주 한옥마을, 단풍이 아름다운 정읍의 내장산, 한반도 최남단에 자리한 해남 땅끝 마을, 바다와 녹차 밭이 어우러졌던 보성, 경치가 아름다웠던 담양 죽녹원과 메타쉐콰이어길 등등 모든 밑천을 털어내었다.
바다 건너는 많이 못 가보았지만 내륙은 많이 가본 것 같았다. 그때는 다 거기서 거기 같아 시큰둥하게 보았던 것들이 병원 침대에 앉아 사진을 통해 바라보니 느낌이 남다르다. 각기 그 나름대로의 매력이 넘친다. 상황이 좀 나아지면 여행가고 싶다. 차를 가지고 기차 시간과 대중교통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여행을 하고 싶다. 순천만 정원에서 하루 종일 거닐고 버스가 잘 다니지 않아 가기 힘든 보성 제2다원도 가고 담양에서는 소쇄원도 가보고 싶다.
『내가 비록 암에 걸렸지만』 에서는 ‘암이 당신의 소중한 일부이며, 다만 당신에게 무언가 긍정적인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부적절한 방법을 사용하는 존재’로 받아들이기를 원한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들이 종양세포가 전하고자 한 메시지의 실천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보의가 되자마자 가족의 사랑과 관심을 간섭으로 여기며 도망만 쳤던 나에게 부모님과 터놓고 많은 대화를 나눌 시간을 주고, 대인관계에 있어 자신 없어했던 나에게 주변사람들의 사랑과 관심을 느낄 기회를 주고, 상황에 휘둘려 소극적인 반응만을 일삼던 과거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상황을 변화시키고 대처하도록 하는, 그런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 주체가 암세포이든, 운명이든, 신이든, 절대자이든 간에.
48 반격의 시작Ⅲ 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