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내려놓음 48 반격의 시작Ⅲ

20대 한의사, 암에 걸리다.

by 한남



48 반격의 시작Ⅲ




점심쯤 PA 간호사가 희소식을 가지고 찾아왔다. 본격적인 치료는 다다음주 수요일부터 있을 예정이니 다음 주 화요일에 잠시 퇴원했다가 일요일에 복귀해도 된다는 것이었다.


일상으로의 초대


치료를 앞둔 나에게 이보다 더 큰 위안은 없다. 남에게는 별 다를 바 없는 일상도 상실의 위기를 겪은 나에게는 특별한 무언가다. 병원에 온 이후로 입에 달고 산 말이 “일상생활이 하고 싶다.” 였다. 그때부터 22일부터 27일, 5박 6일의 외출을 손꼽아 기다렸다.


퇴원까지 앞으로 3일.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아직 많았다. 악성 판정 난 이상 보건지소 관사를 비워줘야 하는 것은 기정사실. 문제는 2년간 쌓아올린 짐의 양과 그 짐을 옮기는 것이었다. 작년 이맘때 보건소 관사에서 지소관사로 이사할 때 나의 10년도 더 된 중고 소나타로 열 번은 넘게 왔다 갔다 해도 한계가 있었다. 결국 보건행정계장님이 직접 1톤 트럭을 수배하여 도와주어서 겨우 마무리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소에서 1년을 살면서 이것저것 많이 채워 넣었다. 그때는 2년 지낸다고 생각한 터라 다이어트를 위한 헬스 사이클, 헬스용 벤치 및 아령세트, 봉 등등 별 부담 없이 사들였다. 이제는 그 짐을 본가로 옮겨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수납되지 못한 채 상자에 담겨 동선을 방해하는 짐이 천지삐까리인 본가였다. 모든 짐을 수용하는 것은 불가능했고 가족들과 상의한 끝에 세간 중 책과 옷, 이불과 컴퓨터 그리고 실내자전거만 들고 오기로 결정했다. 냄비를 비롯한 그릇, 책장, 전자레인지, 밥솥 같은 가재도구들은 아깝지만 후임의 판단에 맡기기로 했다. 관사마다 전임 공보의가 놔두고 간 쓸 만한 가재도구들이 많았던 것들이 이해가 되었다. 모두 들고 가기에는 그들도 공간이 부족했으리라.


주말에는 집에서 밀린 집안일을 처리하는 아버지에게 내 방을 최대한 비우라는 미션이 주어졌다. 책장을 4개나 채우고도 모자라서 넘쳐나는, 사놓고 읽지도 않은 책이 최대 관건이었다. 지소에서 가져올 책도 책장 2개 분량은 족히 되는 것을 감안하면 눈앞이 깜깜했다. 옷도 문제였다. 주중에는 관사, 주말에는 본가에서 지냈던 나는 매번 옷을 들고 다니기 귀찮아 하나둘 옷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일주일의 반 이상을 지소에서 생활하는 만큼 오히려 옷은 본가에 적은 편이었는데, 내 방에 옷장이라고는 한 평 남짓한 조그마한 것 밖에 없었다.

아까 이야기했듯이 집에 여유 공간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대책이 필요했다. 32평 이 집에 살기 시작한지도 만 15년. 널찍했던 집은 나잇살을 먹어 매우 비좁아져 있었다. 당장 이번 일이 없었더라도 다이어트가 많이 필요했던 집. 물러설 곳은 없었다.


아버지와 동생은 합심하여 내 방에서 연신 짐들을 버렸다. 집에 돌아왔을 때 먼지가 하나라도 남아 아들의 건강을 해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지엄한 어명을 받들기 위해 열심히 쓸고 닦았다. 그러나 한계는 있었다. 내 물건이니 만큼 버릴지 말지의 최종선택은 내가 해야 했고 병원에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잠시라도 퇴원할 수 있어 정말 다행이었다.

운수의 김 여사님께도 연락드려 퇴원은 화요일에 할 예정이지만, 집 정리할 시간도 필요하고 해서 환자들이 가장 적은 금요일 점심 즈음에 이사를 해도 되는지 여쭈었다. 여사님은 여기는 괜찮으니 걱정 말라하시며 손수 이사 업체까지 알아봐주시는 등 많은 배려를 해주셨다.


그 다음은 의병 제대 관련하여 병무청과의 일도 해결해야 했다. 어떤 서류들이 필요한지를 알기 위해 공중보건한의사 커뮤니티에 검색하니 관련 공무원들의 일 떠넘기기 때문에 9개월이나 걸렸다는 이야기만 나왔다. 병무청 홈페이지에서도 별다른 정보를 찾을 수 없었다. 결국 군대 장교로 복무중인 친구에게 부탁하고, 세상 돌아가는 이치에 밝은 사촌 매형에게도 같은 부탁을 드렸다. 나머지 머리 복잡한 병무청 관련 일들은 아버지께서 다 도맡아 처리하시기로 했다.


급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만 하루를 다 썼다. 피곤했지만 마음은 편안했다. 옆 침대에 누가 있었다면 이렇게 긴 통화는 힘들었다. 아무도 입원하지 않은 현실이 반갑다. 2인실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 이 특권은 이제 다시 누리지 못할지도 모른다. 퇴원했다가 복귀했을 때 2인실에 자리가 있다는 보장은 없으니까.

고민했다. 그리고 외출 갔다 돌아오더라도 2인실에 있고 싶다고 용기 내어 말씀드렸다. 그 말은 집에서 지내는 수, 목, 금, 토요일에도 쓰지도 않는 병실 사용료를 내겠다는 이야기. 보험이 적용되는 6인실도 아니고 비보험인 2인실을 그렇게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돈지랄이다. 이번 일로 얼마나 많은 돈이 들었을지 짐작도 안 가는 상황에서 던진 무책임한 욕심을, 사람 많은 곳에서 신경 쓰고 코고는 소리에 잠 못 들어 받는 스트레스 때문에 회복이 더디게 되느니 차라리 이게 나은 거라 합리화했다. 이왕 중환자실에서 나올 때 어리광부린 거 한 번 더 부리자며 욕심을 흘렸고 곧 현실이 되었다. 나중에 부모님에게 아픈 일이 생기면 그때는 으리으리한 1인실에 입원시켜드리겠다는 말을 속으로 삼키며 기뻐했다.


어머니는 돈 쓰는 김에 무감각해졌을 때 하나 더 질러야 한다며 갖고 싶은 것을 이야기하라고 하셨다. 노트북을 이야기했다. 병원을 나의 새로운 집무실로 만들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컴퓨터였다. 그래서 이미 주변 사람에게 물어물어 적당한 가격에 성능 좋은 컴퓨터를 눈여겨 봐두고 통신 요금도 무제한 요금으로 바꿔놓은 뒤였다. 어머니는 내가 고른 중소기업 제품에 대해 반신반의하며 웃돈을 더 얹어 홈쇼핑에서 파는 대기업 노트북과 태블릿 PC도 함께 주문해주셨다. 대학교 입학 후 무엇 하나 먼저 사 달라한 적 없던 아들의 무리한 요구에 대해 정말 아낌없이 돈을 지불했다.

드라마 『추적자』에서 교통사고 나서 죽어버린 딸에게 못해준 것들 떠올리며 오열하던 부부의 모습이 생각나 잠시 불안했지만 무시했다.


‘난 수정이처럼 죽지 않아!’


이제 다시 병원에 왔을 때 심심한 일은 없을 것이다. 노트북과 태블릿에 동영상 강의도 담을 것이고, 영화도 드라마도 예능도 담을 것이다. 그리고 그를 통해 얻은 마음의 안정으로 몸도 마음도 건강도 지식도 모두 발전된 나로 탈바꿈할 것이다.




49 일상으로의 초대Ⅰ 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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