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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남 Dec 08. 2016

[소설] 내려놓음 53 일상으로의 초대Ⅴ

20대 한의사, 암에 걸리다.



53 일상으로의 초대Ⅴ




저녁 때 갑자기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MRI를 찍기 위해 내일 저녁 즈음에 입원해야 한다고 했다. 그 다음 날 점심 때 이사 일정이 있다고 이야기하니 그 전에는 끝날 것이니 걱정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속상했다. 목요일 저녁에 입원해서 금요일 아침에 퇴원. 집에서 머무는 하룻밤이 줄어든 것이다. 월요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 귀찮다며 일요일 오후에 지소로 가버리곤 하던 나를 울상 지으며 만류하던 어머니의 마음이 이것이었을까? 뒤늦게 불효자는 자책했다. 그래서 그날만큼은 일찍 자야한다며 재촉하시는 어머니의 말에 토 하나 달지 않고 바로 침대에 누웠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노트북을 켜고 샤워를 했다. 유일하게 하는 레이싱 게임을 설치한 다음 집 와이파이를 끄고 스마트폰으로 다시 인터넷을 연결하여 게임을 해보았다. 끊김 없이 잘 실행되었고 생각보다 배터리와 데이터 소모도 적었다. 가장 구석진 병실, 그 안쪽에서 열심히 게임하고 있는 뇌수술 환자를 상상해본다. 양심이 살짝 찔린다.

 다시 와이파이로 연결하고 어제 미처 다 내려받지 못한 자료들을 다시 내려받기 시켜놓고 아침 식사를 했다. TV를 보며 한창 빈둥거리고 있는데 진이 누나에게 전화가 왔다.


어 동완아, 너 몇 호라고 했지?
652호요. 근데 저 지금은 퇴원했고 저녁에 MRI 찍으러 잠시 입원해요. 일요일에 제대로 입원하고. 지금은 저 없으니까 저 보려면 밤에 와야 해요.
머? 나 지금 병원 로비야.
말해드릴 걸, 오실 줄 몰랐어요.
 “야 우리가 어떤 사이인데 와야지. 뭘 안 와.
누나 애도 봐야하고 바쁘니까...
어쩔 수 없네. 애들은 친정 엄마가 잠시 봐주기로 했어. 이렇게 왔는데 아쉽다.
이제 애들 4살이던가요? 시간 빨리 가네요. 진짜
너도 금방 지나 갈 거야. 에휴 담에 올게.
고마워요 누나.


 간만에 쌍둥이 육아에서 해방되어 빈 병실에 문안 와버린 진이 누나. 대학교를 한 번 졸업하고 직장생활 하다가 다시 한의대에 입학한 진이 누나는 학번의 막내였던 나를 많이 귀엽게 봐주셨다. 학생 때는 같이 다이어트 선식 만들겠다고 하루 종일 검은 콩 까다가 뻗어보기도 하고, 침구 실습 시험 때문에 누나 집에서 날밤 새운 적도 있었다. 으리으리한 호텔에서의 누나 결혼식에 깜빡하고 축의금 내지 않은 실수가 지금도 가끔 생각나는 그런 사이였다. 아이 돌보느라 많이 힘들었을 텐데 어렵게 시간을 내서 찾아와주었다. 못 봐서 굉장히 아쉽다. 누나도 보고 싶고 아기들도 보고 싶다.


 병원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 금요일 아침으로 잡혔던 MRI가 10시로 조정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굳이 오늘 올 필요가 없으며, 내일 아침 일찍 와서 잠시 입원하면 된다는 소식을 전했다. 신났다. 완전 깨방정을 떨며 기뻐했다.

 ‘오늘 밤도 편안히 잠들 수 있겠구나.’


 안 하던 행동을 하면 역시 사고치는 법.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다가 탁자를 쳐서 물을 쏟아버렸다. 머쓱하게 얼른 걸레를 가져와 닦다가 아직 먹지 않은 오늘 아침 약을 발견했다. 병원에 있을 때는 이쁜 간호사들이 때맞추어 챙겨주고 일일이 확인 해주었는데 집에 있다 보니 깜빡한 것이다. 약 먹는 것을 잊었을 경우 식사에 구애받지 말고 최대한 빨리 먹으라는 PA 간호사의 말을 상기하며 급히 약을 삼켰다. 그리고 오늘처럼 항경련제를 빠뜨리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싶어 승현이 형에게 메시지를 보내보았다.



동완 : 형 실수로 항경련제 먹는 거 빠뜨리면 바로 문제 생기나요?

승현 : 괜찮아, 위험 확률은 좀 올라가겠지만. seizure* 할 거였으면 벌써 했을 거 같아. 수술 위치가 그래도 위험이 아주 높은 곳이니까 절대 운전 또는 위험한 데 있지 말고, 약도 빼먹지 말고.

동완 : 식사 때가 늦어지면 약 먹을 타이밍도 늦어지고, 그럴 때는 좀 긴장 되서 약이라도 먼저 먹을까 싶더라구요. 아까도 밥 먹고 두 시간 있다가 먹었어요.

승현 : 그럼 빼먹은 것도 아니잖아.

동완 : 그렇긴 하죠. 제가 compliance* 하나는 끝내줍니다.

승현 : 이런 소심한 마인드로 수술은 어찌했노.

동완 : 그러게나 말입니다.

승현 : 불편한 거는 머 없나?

동완 : 딱히 머 없네요. 신경 쓸 일도 없고 그냥 편합니다.


seizure : 간질 발작
compliance (복약순응도)
의사가 처방한 약을 환자가 정확하게 복용하고 의사, 약사, 간호사 등 전문의료인의 충고나 지시를 따르는 정도



54 일상으로의 초대Ⅵ 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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