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한의사, 암에 걸리다.
평화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집안의 평화를 깨뜨린 건 다름 아닌 ‘야채수’였다. 부모님은 조직검사가 나온 그날 바로 야채수를 주문했고 그것이 도착한 것이었다. 항암치료에 도움이 된다면서 꼭 마셔야 된다는 두 분과 그걸 거부하는 나. ‘한의사’라는 알량한 자존심이 문제였다. 의학과 한의학이라는 주류의학을 놔두고 굳이 그런 걸 먹을 필요가 있을까, 돈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나를 두고 부모님은 답답해하시며 아주 우격다짐으로 먹이려 드셨다.
동완아, 이거 먹어야 돼. 도움 된다니까? 먹고 나은 사람 많아.
그게 무안 단물도 아니고 그걸로 어떻게 나아. 같이 받은 치료 때문에 나았겠지. 알았어. 먹어는 볼게. 먹어서 손해 보는 건 없으니.
아냐, 낫는다고 생각하면서 먹어야 효과가 나지. 그냥 먹으면 되나.
그게 안 되는 걸 어떡해.
아빠도 처음에는 안 먹는다고 그러더니, 이거 먹은 다음부터 항암제 먹고 구토 안 하니까 그 다음부터는 안 챙겨줘도 잘 찾아먹더라. 그러니까 한 번 믿어보고 먹어봐.
거봐, 아빠도 처음에 안 믿고 효과 본 다음에 믿었잖아. 근데 나보고는 아주 그냥 믿으래. 나도 효과 보면 그때 믿든지 할게.
그래 알았다. 그럼. 꼭 챙겨먹어야 한다.
어머니는 울상을 지으며 자리를 떴다. 10년 전이 떠오른다. 아버지가 암투병 하셨을 때 외할아버지는 아픈 사위를 위해 손수 채소를 고르고 집에서 말려 직접 야채수를 끓였다. 우리 집 바로 앞에 있는 외갓집, 그 베란다에서는 항상 표고버섯과 무청, 갖가지 풀들이 일광욕을 하고 있었다. 햇빛에 반짝이던 그 모습이 아직도 기억난다.
‘항암제를 먹은 아버지에게서 쏟아져 나오던 토사물들이 그 야채수를 만나고 힘을 잃었다라...’
생각해본다. 구토를 멈추게 한 것은 아채수가 아닌, 사위를 향한 외할아버지의 정성이 아니었을까 하고. 항암제는 병원에서 처방 받아 약국에서 타오고, 멘탈은 EFT를 비롯한 여러 한의정신요법으로, 신체적 증상은 침으로 스스로 관리했다. 거기에 부모님의 마음이 끼어들 자리는 없었다. 그래서 야채수를 주문한 것이 분명하다. 견고한 그 틈 사이로 당신의 정성도 밀어 넣고 싶었으리라. 그렇다, 이 야채수는 부모님의 마음인 것이다. 야채수 값은 부모님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내가 부모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비용이고. 그렇게 반성하며 야채수를 한 잔 마셨다.
금요일 아침은 무척 바빴다. 8시 반까지는 병원에 도착해서 잠시 입원한 다음 MRI를 찍고, 다시 운수로 가서 이사를 해야 했다. 정신없이 준비하고 병원을 향하는 택시에 올라탔다. 심심해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다가 순간 이상증상을 느끼고 바로 승현이 형에게 SOS를 신청했다.
동완 : 오늘 수술 후유증으로 보이는 증상 하나 발견했네요. 마침 병원 가는 중이니까 주치의에게 이야기 해야겠어요.
승현 : 뭔데?
동완 : 오른손, 특히 엄지손가락이 가만히 있을 때 떨리네요. 행동하면 안 떨리는 데 안정 시에 더 떨림. 파킨슨인가? 딱히 불편한 거는 없다만 이야기 해주는 게 맞겠죠?
승현 : Temporal(측두엽) 건드리면 dyskinesia(운동장애) 올 수 있어. 또 시작했다. 자기진단.
동완 : 당연히 파킨슨은 농담이죠.
승현 : 니가 하는 말 농담으로 안 들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간호사실에 환자복을 받아 병실로 가던 중에 때마침 회진을 마치고 돌아오는 교수님과 전공의들을 마주쳤다. 그 앞에서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증상을 보여드리자 별로 신경 쓸 필요 없다며 씨익 웃으며 지나가셨다.
환자복을 갈아입고 병실에서 MRI를 기다렸다. 내가 없는 동안 2인실을 마음 편히 혼자 쓰시고 있었던 분은 70대쯤으로 보이는 할아버지였다. 새하얀 백발이 아닌 흰 배포장지로 덮인 머리는 그가 나와 마찬가지로 신경외과 환자임을 알리고 있었다.
55 일상으로의 초대Ⅶ 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