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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남 Dec 10. 2016

[소설] 내려놓음 59 돌아온 병원Ⅱ

20대 한의사, 암에 걸리다.



59 돌아온 병원Ⅱ




…… 위해서 방사선을 쏘면 왼쪽 귀를 지나칠 수밖에 없거든요. 방사선이 지난 부위에는 상처가 생기고 그러다보면 염증도 발생하고 그래서 만성 중이염이 자주 옵니다. 그러면 귀에 물이 차거나 멍멍한 느낌을 받을 수 있어요.
아, 네.
문제가 하나 있어요. 여기서 이 부위가 해마인데 여기에 종양들이 좀 있어요. 그런데 가이드라인을 지키면 이도저도 안 될 확률이 높아요. 그래서 동의만 해주시면 가이드라인을 넘어서는 치료를 해볼까 합니다. 그게 낫다고 보기도 하고. 기억력이 좀 떨어질 수는 있는데 오른쪽 해마도 있고 하니까 일상생활에는 큰 지장이 없을 거예요. 공부나 그런 것들은 전보다는 좀 힘들 수 있습니다.
네, 그렇게 해주세요.


 죽음 앞에 귀가 좀 멍멍하고 기억력 나빠지는 것이 머 대수인가? 다 덧없는 것들이었다.

 

내가 교모라니……


 한 마디를 나직이 내뱉고 CT를 찍으러 갔다.     


 CT라고 하기에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소요되었다. 이미 마음을 비웠던 탓인지, 아니면 제대로 큰 충격이 오려면 아직 시간이 남았던 탓인지 꽤 평온한 마음가짐을 유지했다. 깊은 굴 안에서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할지 고민했다.


 ‘1년 간 무엇이라도 써서 내가 세상에 존재할 흔적을 남겨야겠다. 부정하고 분노하고 우울해 하기에는 하루하루가 소중하다. 뇌종양이 쉬운 것도 아니고 이미 감내 해야 했을 범주였을지도 몰라. 최대한 평화롭게 주변 사람들에게 못난 모습을 보이지 말아야지. 가족끼리 멀리 여행 가보고 싶다. 죽기 전에.’     


 20분 동안 남은 1년을 한 번 살아보고 CT에서 내려오자 방사선종양학과 선생님이 숨을 헐떡이며 들어오셨다.


교모세포라고 누구에게 들었어요? 신경외과에서 성상세포라고 하지 않았어요?
차트에 그렇게 적혀 있던데요? glioblastoma라고.
아 맞다. 한의사랬지. 가렸어야 했네. 자초지종을 설명해줄게요. 잠시 기다려 봐요.


 신경외과 교수님이 급히 내려오셨다. 두 분이 설명은 이러했다. 나의 상태는 교모세포종이라고 봐도 되고 성상세포종이라고 봐도 되는 의사의 판단 영역에서 속하는 상태였다. 그래서 고민 끝에 만의 하나 가능성도 커버할 수 있는 최선의 치료가 가능하도록 교모세포종으로 진단 내렸다고 했다. 그렇게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병실에 올라왔을 때, 성상세포종이라 생각하고 있던 나를 보고 마음이 바뀌었다고 했다.


 ‘성상세포종이라 보아도 될 범주니까 환자에게는 성상세포종이라 하자.’


 그렇게 다시 부모님과 면담한 뒤 나에게 비밀로 하기로 결정된 것이라 했다. subtype을 알려주지 않던 전공의, 성상세포종이냐 물었을 때 잠시 주춤하시던 교수님, 다시 면담하러 갔다 온 부모님. 그때서야 미심쩍었던 모든 것들이 이해되었다. 맞춰지지 않던 퍼즐들이 아귀에 들어맞기 시작했다. 나를 둘러싼 거대한 트루먼 쇼의 세트장이 무너져 내렸지만 차라리 기뻤다. 한번 시작한 의심은 이미 번질 불처럼 다시 되돌릴 수 없다. 언젠가는 그 세트장도 의심의 불길 앞에 불태워졌으리라.


 성상세포종이라고 판단할 수도 있었다고 교수님은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최선의 치료를 위해 진단을 ‘교모’라 내리고 치료도 그에 준하여 진행하지만 자신도 ‘성상’이라 본다고 이야기 했다. CT 찍자마자 다급히 찾아오신 선생님과 그 분의 연락받고 찾아와주신 교수님. 나는 진정성을 느꼈다. 그리고 다짐했다.     


 ‘이렇게 날 신경써주는 사람이 진료하는데 내가 죽을 리가 없다. 나도 이처럼 한 명 한 명 진정성 있게 다가서는 한의사가 되고 싶다. 난 살아야겠어.’     


 전에 도움 주었던 훈련소 동기인 신경외과 전문의 만규 형에게 전화 걸었다.


어, 동완아 무슨 일이야?
형 저 교모세포종이라고 하네요.
성상세포종이라 하지 않았어?
차트 보니까 교모라고 되어 있더라구요. 교수님 설명은 그 사이쯤 된다고 하네요.
그렇구나. 그 사이쯤은 괜찮다. 젊은 사람이 잘 못 되는 경우는 잘 없어. 인터넷에 나오는 평균 생존율, 평균 생존기간 믿지 마라. 모든 연령대 기준으로 추산되는 거라서 너랑은 상황이 달라. 일찍 돌아가시고, 못 낫는 분들 대부분 나이 많아서 그런 거야. 그니까 그런 거 찾아보지 말고 마음 단단히 먹어.


 병실로 올라오면서 공보의 단체카톡방에도 있었던 일을 말하고 위로를 받았다. 그리고 아까 읽던 책을 계속 읽기 시작했다.


Cancer is word, not a sentence. - 존 다이아몬드


 sentence에 문장이라는 뜻과 형벌이라는 뜻이 둘 다 있음을 이용한 언어유희이다. 우리나라 말로는 ‘암은 문장(형벌)이 아니라 한낱 단어이다.’ 쯤으로 번역할 수 있다. 책에서는 암 진단을 받게 되면 ‘암’이라는 단어가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내 생각이나 다른 사람의 생각, 특히 의사소통에서 빈번하게 등장할 것이라 예고한다. 따라서 이 단어를 생각하거나 말할 때 나타나는 에너지의 혼란, 마음의 동요를 이해하고 해결하는 행동을 취할 것을 강력히 추천한다. 소리 내어 ‘암’이라 혼잣말 하고 반응을 살핀 뒤 더 이상 이 단어에 대해 과도한 감정적, 신체적 반응을 느끼지 않을 때까지 계속 떠올리라고 했다.


 “암” 별 반응 없었다.

 “종양” 마찬가지였다.

 “뇌종양” 전에는 마음의 동요가 있었는데 많이 익숙해져서 그런지 별 반응 없었다.

 “성상세포종” 뇌종양과 마찬가지였다.

 “교모세포종” 폭발적이었다. 한 번도 의식세계에서 제대로 다뤄본 적 없었던 날 것의 단어에 대한 반응은 격렬했다. 시키는 대로 계속 시행하였다. 일시적으로는 좀 가라앉았지만 한 시간 있다 다시 떠올리면 원상복귀. 뇌종양과 성상세포종처럼 시일이 좀 걸릴 것을 직감했다.



60 돌아온 병원Ⅲ 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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