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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남 Dec 10. 2016

[소설] 내려놓음 60 돌아온 병원Ⅲ

20대 한의사, 암에 걸리다.



60 돌아온 병원Ⅲ




 점심식사를 하고 공부하다 게임하다를 번갈아하며 빈둥거리고 있을 때 의외의 손님이 찾아왔다. 보건소장님, 보건행정계장님, 진료계장님, 임 여사님. 시간을 내서 병문안 와주어 송구스러웠다. 특히 어머니 같은 임 여사님의 방문은 큰 힘이 되었다. 나를 바라보는 그 눈빛의 깊음에 위로받는다. 지지부진한 의병 제대의 현 상황을 알리고, 병가 처리에 대해서도 의논했다. 규정이 애매하기는 하지만 별 다른 방법이 없지 않느냐는 답이 나왔다. 이야기하다 잠시 뻘줌해지자 보건소장님은 이제 가야할 시간이라며 봉투를 하나 주시고 푹 쉬라는 이야기를 남기고 떠나셨다.


 저녁에는 형석이 형, 덕경이 형, 승현이 형이 함께 왔다. 병원 옥상에서 마련된 전망대 까페에서 함께 식사하며 현 상황에 대한 컨퍼런스를 열었다. 신경외과는 없고 신경과와 재활의학과, 내과 전문의들이 모여서 나누는 이야기. 그래도 유익한 정보를 많이 얻었다. 특히 화학요법이 정맥 주사가 아니라 경구 투여로 진행된다면, target cell이 정해져 있을 확률이 비교적 높다는 의미를 내포하므로 구토 같은 부작용이 덜 할 것이라는 희망찬 이야기를 들은 것이 최고의 수확이었다. 가장 걱정했던 것이 해소되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다음날 아침 옆 침대 할아버지께 따님이 찾아왔다. 생업이 따로 있어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듯했다. 모처럼 옆 침대에서 활기가 돌자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영 자리를 원상 복귀할 기미가 없던 차에 말이 통하는 사람이 와서 안심되었다.

 할아버지 옆에는 늘 할머니만 있었고 그 두 분은 환자인 내 눈에도 아슬아슬했다. 생기가 넘쳐야 할 낮에도 침대에 누운 할아버지와 의자에 앉은 할머니에게서 1mm의 미동도 1dB의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이른 새벽에 모든 에너지를 써버린 것처럼 멈춰있었다. 그래서 나는 칠칠맞은 얼음요정이 실수로 쏜 마법에 걸려 통째로 얼려진 것처럼 그대로 박제된 두 분을 조금이라도 녹여보려 화장실 다녀올 때마다 공연히 인사드리곤 했다.


 그런 할아버지도 아주 가끔은 눈물로써 자신의 생존을 증명했다. 그때도 할머니는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고 그냥 자리에 앉아 있었다. 침대에서 꺽꺽 우는 할아버지와 그 옆에 앉아 오직 땅만 보는 할머니. 되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아버지와 내가 고역이었다. 게다가 할머니는 환자 곁을 지켜달라는 의료진의 부탁도 무시하고 가끔씩 자기 몸도 가누기 힘들다며 중환자 보호자 대기실에서 쉬다 오시기도 했다.


 응답받지 못한 할아버지의 소리 없는 울음. 그 이유를 따님을 통해 들을 수 있었다. 할아버님은 뇌종양으로 수술하였으며 양성 판정을 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수술 후 급격하게 변한 시야 때문에 적응하지 못하고 충격 받아 종종 눈물 흘리신다고 했다. 양성이라는 사실이 내심 부러우면서도 다행이라 생각했다. 노인 분에게 화학요법은 견디기 쉬운 치료가 절대 아니다.

 수술에서 무사히 깨어나고 경과도 좋은 할아버지에게 찾아온 문제는 적응하면 사라질 시야장애 단 하나였다. 그러나 그 시야장애는 수술 부작용은 원래 잘 없는데 치료 잘 따라오도록 괜히 겁 좀 준 것이 아닌지 의심하는 나에게, 찾아온 행복을 당연시 하지 말라는 메시지로 다가왔다.

 ‘아! 난 특별한 케이스구나.’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살짝 기뻤다. 하지만 곧 나 자신에게 실망했다.

 ‘남의 불행을 가지고 하는 위로라니... 그러고도 나에게 환자를 치료하는 자격이 있다 말 할 수 있을까? 모르는 사람 한 명의 아픔도 안타까워야 할 의료인이 다른 이의 아픔으로 나를 치료하려고 들다니 부끄럽다. 정말’


 듣는 사람이 생긴 할아버지의 울음은 좀처럼 그치지 않았고 결국 교수님이 직접 오셨다. 교수님은 “할아버지 30년은 더 사시라고 이렇게 살려놨는데 죽겠다고 하면 되겠습니까?” 하며 한참을 어르고 달래셨다. 그리고 떡 본 김에 제사지낸다고 내 회진도 같이 시행했다. 불편한 것 없느냐는 말에, 나도 이제 성상세포종이라 생각하고 행동하겠다며 말씀드리고 경과는 어떤지 다시 한 번 물어보았다. 교수님은 경과가 좋기는 하지만 내일부터 이루어질 방사선 치료가 몸에 잘 받는 것이 더 관건이라 말씀하셨다. 말을 마치고 떠나는 교수님에게 물었다.


Temodal 먹으면 WBC 수치 떨어질 테니까 그 근방을 제외하고, 침구치료를 병행해도 될까요?
침 치료에 대해서는 저도 잘 몰라서 해줄 말이 없기는 한데, 일단 침 맞고 나빠졌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 없어요. 그러니까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그리고 의사가 자기 치료하겠다는데 누가 그 걸 말릴 수 있겠어요. 감염에는 유의하세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우호적인 반응에 신기해하며 침구과 전공의인 정희에게 연락해서 종양 치료에 도움 될 만한 정보를 모아줄 것을 부탁했다. 그사이 할아버지 침대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취해줄 것처럼 보이던 따님은 급작스런 할아버지의 울음에 놀랐는지 그냥 사라졌고, 그 후 할아버지의 침대는 옮겨진 일 없었다.




61 돌아온 병원Ⅳ 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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