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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남 Dec 10. 2016

[소설] 내려놓음 61 돌아온 병원Ⅳ

20대 한의사, 암에 걸리다.



61 돌아온 병원Ⅳ




 병문안 오기로 했던 지은이와 용덕이 형에게서 저녁 즈음 도착할 예정이라고 기별이 왔다. 방사선 치료가 시작되면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하니 비니를 준비하라는 전공의들의 말이 생각나, 필요한 거를 이야기하라는 지은이에게 비니를 하나 사다 달라고 부탁했다.

 이따금 찾아오는 항암제 복용에 대한 두려움을 견디며 열심히 EFT 공부도 하고 낮잠도 자며 시간을 보내니 금방 저녁 식사 때가 되었다. 족발을 먹었다. 방사선 치료 시작 후 침샘이 많이 파괴되어 입맛을 오랜 시간 잃었던 아버지를 떠올리며, 한동안 느끼기 힘들 자니(滋膩)한 음식들의 풍미를 마음껏 즐겼다.


 한 시간쯤 뒤 지은이와 용덕이 형이 왔다. 비니는 무난한 검정색. 마음에 들었다. 늘 그렇듯 병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요약하여 브리핑했다. 용덕이 형은 걱정을 많이 했다며 위로해주었다. 꽤나 그 걱정이 과도하여 도리어 내 마음이 무거워질 뻔 했지만, 그에 지지 않고 들뜬 마음으로 이야기를 주도해나갔다.


 ‘환자 마음 무겁게 하는 위로라니~!’


 속으로 투덜거렸지만 간만에 보는 얼굴이 반가운 것은 변함없었다. 내가 소개해준 커플이 꽁냥꽁냥하게 잘 지내는 것 같아 기쁘면서도 살짝 질투도 났다. 한 시간 정도 이야기하고 돌아가는 커플을 배웅하고 친구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라고 잠시 자리를 비켜준 부모님과 함께 병실로 돌아왔다. 아직 9시도 되지 않았는데 이미 할아버지는 주무시고 계셨다. 내일은 또 몇 시부터 일어나서 부산스레 움직일지 아득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오전에 딸이 지나가는 말로 했던 내일이나 모레 쯤 퇴원하신다는 소식. 할아버지를 위해 9시에 불 꺼지는 652호도 얼마 남지 않았다.


 원래라면 9시 반쯤에 집으로 가시는 어머니였지만, 할아버지가 일찍 주무시는 탓에 9시에는 자리를 떠야했다. 아쉬워하는 어머니를 배웅하며 병원에 다시 입원할 때 슬쩍 챙겨온 공진단을 손에 쥐어드렸다. 힘들고 지친 하루를 좀 더 쉬이 견디라고 드리는 아들의 사랑. 모든 일이 시작된 날의 3일 전, 금요일에 공보의 형들과 함께 직접 만든 공진단이었다. 100개 밖에 만들지 않았던 것이 아쉬웠다. 모든 일이 끝나려면 아직 200일은 남았고, 두 분이 드시려면 400개가 필요하다. 퇴원하면 다시 만들거나 선배에게 부탁해서라도 구해보리라. 이렇게라도 아들이 한의사라서 누릴 수 있는 특권을 느끼게 해드리고 싶다.



 3월 30일, 방사선 요법과 화학 요법을 시작하는 첫 날의 아침이 밝았다. 떨리는 마음으로 일어나 샤워를 하고 간호사들에게 양해를 구한 후 간호사실의 체중계로 몸무게를 체크했다. 앞으로 변화할 나의 상태들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함이었다.


 ‘89kg’


 입원한 후로 4kg이나 불었다. 감염에 대한 우려 때문에 바깥 활동을 거의 하지 않은데다가 너무 심심한 나머지 자꾸 주전부리를 집어 먹는 통에 생긴 참극. 하지만 별 상관없다. 어차피 오늘부터 치료가 시작되므로 이제 살이 빠질 일만 남았으니까. 입맛이 떨어지는 것도, 잘 먹지 못하는 것도 하등 걱정할 필요 없다. 치료 부작용을 겪는 것이 아니라 다이어트를 같이하는 것이다. 스스로의 의지로도 꺾기 힘든 식욕을 억제하는데 큰 도움까지 받을 수 있으니 그 얼마나 좋은 일인가?


 ‘이 입맛은 언제까지 유지될까?’

 달콤한 고구마케익으로 아침 식사를 하고 30분을 기다리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긴장된 마음으로 간호사가 주고 간 약봉지를 뜯었다. 이상하게도 어제와 약이 똑같았다.


 ‘항암제는 왜 없지? 따로 먹는 시간이 있는 건가? 설마 간호사가 깜빡했나?’

 많은 의문을 속으로 삼키며 약도 함께 삼켰다. 그리고 『내가 비록 암에 걸렸지만』을 읽으며 부모님을 위해 정리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나는 신께서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을 주지 않으신다는 것을 안다.
나는 다만 그분께서 나를 지나치게 신뢰하지 않으시기를 바랄 뿐이다.

- 테레사 수녀 -

 이내 발견한 재미있으면서도 와 닿는 구절 하나. 이미 지나친 신뢰를 받은 것 같다. 이제 그 신뢰에 부응하는 일만 남았다.



62 돌아온 병원Ⅴ 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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