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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남 Dec 11. 2016

[소설] 내려놓음 62 돌아온 병원Ⅴ

20대 한의사, 암에 걸리다.



62 돌아온 병원Ⅴ




 점심을 먹었다. 오늘 뇌파검사와 방사선 치료가 예정되어 있건만 아무런 연락도 없었고 전공의도 간호사도 찾아오는 일 한 번 없었다. 간간히 혈압과 체온을 체크하러 학생간호사만 오갔다.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방사선 치료에 대한 부담감/불안/공포/설렘/기대 같은 여러 감정의 홍수 속에서 붙잡을 것이라고는 책 정리 작업이라는 지푸라기 하나. 잠시 진도를 건너뛰어 방사선 치료와 관련된 부분을 먼저 읽었다. 책은 ‘시각화’를 병행할 것을 권유하고 있었다.


두드림과 시각화를 조합하면 방사선요법의 부작용을 줄이는 데에도 유용한 것으로 보인다.
치료의 영향을 받는 부위를 찬물이나 우유로 씻는 장면을 시각화하라. 진심으로 그 장면을 상상하라. 방사선요법이 근접치료에서와 같이 몸 안의 특정한 부위를 겨냥한다면, 방사선물질들이 손쉽게 의도했던 작업을 하도록 하는 동안 당신은 목표가 되는 부위 옆에서 그 부위를 시원한 스펀지로 닦아준다고 상상하라.


 상상해본다. ‘알이 30개쯤 되는 포도처럼 생긴 괴물이 머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끈적끈적한 불쾌한 덩어리들을 녹여버리기 위한 강력한 방사선 총을 가져왔다. 한 번에 하나씩 차근차근 녹여버릴 계획이다. 효과적으로 타격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멀리서도 잘 볼 수 있게 찬물로 씻어버리자.’ 이렇게 한참 시각화 작업을 열중하고 있을 때 구경하기 힘들던 간호사가 찾아왔다.


불편한 거 없으세요?
항암제 아침 약에는 없던데 언제 먹는 거예요?
아 그거 자기 전에 먹는 거예요.
생각보다 적네요.
다른 불편한 점은 없나요?
방사선 치료는 언제 가나요? 그리고 오늘 뇌파검사도 있다고 했는데.
그거는 밑에서 연락이 와야 되요. 저희도 모르는 거라 머라 말씀해드릴 수가 없네요.
아 네.


 별 소득이 없었던 간호사와의 대화에 마음이 싱숭생숭하던 차에 형석이 형에게서 연락이 왔다. 복잡 미묘한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아버지께 흘리지 않을까 걱정하던 차에 대화할 상대가 나타났으니 최고의 타이밍이 아닐 수 없다.



형석 : 동완아. 치료 잘 받고 있나? 오늘 내가 그 병원에서 지부학회가 있어서 갈 일이 있거든. 가는 김에 잠시 들릴까 싶어서. 병실이 몇 호실이지?

동완 : 652호에요. Temodal 먹는데 자기 전 한 번이라고 하네요. 오늘이 첫날이라 아직 어떤 치료도 못 받았어요.

형석 : 원래 그렇게 먹는가보다. 먹는 약이라 딱히 할 일이 없겠네?

동완 : 뇌파검사랑 이것저것 예약되어 있는데 아직 연락이 없네요.

형석 : 차례가 많이 밀려있나 보다.

동완 : 병원은 항상 기다림의 연속인 듯합니다. 전에 보여드렸던 책 요약해서 워드작업하며 시간 보내고 있어요.

형석 : 니가 입원환자 치고 별로 하는 게 없는 거 같다.

동완 : 나이롱환자의 끝판왕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형석 : 미드나 그런 거 보면서 시간 좀 보내고 해

동완 : 잠시 퇴원한 동안 드라마, 영화 다 챙겨두었죠

형석 : 방사선 치료는 생각보다 별거 아니지?

동완 : 아직 못 받아서 모르겠어요. 오늘이 첫날이거든요.

형석 : 별거 없어. 요즘 저선량 치료도 많이 해서 피폭량도 적고. 그냥 누워있다 오면 된다.

동완 : 으~ 떨립니다.

형석 : 잘 다녀와. 정말 별거 아니야. 나는 병원 근처가면 다시 연락할게

동완 : 고마워요~ 형!



 4시 반이 돼서야 방사선 치료 오더가 나왔다는 소식을 들고 간호사가 찾아왔다. 치료실로 내려가는 동안 아버지는 10분 정도만 누워 있다가 나오면 된다며 다독여주었다. 좀 시끄럽기는 할 거라는 이야기도 하셨다. 스텔라관 지하 1층에 마련된 방사선 치료실. 통로 끝에 열린 문 사이로 설비실이 보였다. 《터미네이터》, 《매트릭스》 같은 SF 영화처럼 기계세계와 인간세계 그 사이를 지나는 느낌.


 ‘사이보그가 되러 가는 것 같다.’




63 돌아온 병원Ⅵ 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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