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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남 Dec 11. 2016

[소설] 내려놓음 63 돌아온 병원Ⅵ

20대 한의사, 암에 걸리다.



63 돌아온 병원Ⅵ




 간호사의 안내를 받아 대기실에서 기다리다가 마침내 들어간 치료실. CT나 MRI와 비슷하게 생긴 거대한 장비가 하나 있었다. 좁은 철판 위에 누우면 기계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구조. 떨리는 마음으로 누웠다. 입 안이 바싹 마르고 깍지 낀 두 손에는 땀이 흘러내렸다. 조금이라도 움직였다가 방사선이 종양이 아닌 다른 곳을 지나갈까봐 몹시 두려워 숨조차 크게 쉬지 못하고 잔뜩 얼어있는 내 머리 위로 마스크가 씌워졌다. 얼굴 전체를 감싸는 마스크는 너무 꽉 조여서 당황한 나머지 호흡곤란이 왔다. 그러자 방사선사는 숨 쉴 수 있으니 진정하고 천천히 호흡할 것을 권했다. 천천히 숨을 들이쉬자 마스크에 뚫린 구멍 사이로 치료실의 찬 공기가 들어와 놀란 나의 머리와 마음을 차게 식혔다.


 금방 굴 안으로 들어갈 것 같았지만 방사선사는 계속해서 혀를 차며 이리저리 나의 자세를 수정했다. 내 몸이 비뚤어서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닌지 불안하기 시작했다. 좌우 귀 높이가 달라 한참을 고민하던 안경사의 모습이 머리를 스친다. 내 몸을 믿을 수 없는 현실. 살면서 내가 내 몸을 신뢰한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나 싶다. 방사선 치료를 앞두고 이런 고민을 하는 환자가 나 말고 또 누가 있을지, 억울하기도 하고 한심하기도 하다. 한참을 헤맨 끝에 치료가 시작되었다. ‘삐-’ 하는 소리가 주기적으로 들린다.


 ‘이 소리가 아까 아빠가 말한 시끄러울 거라던 그거네. 방사선을 쏜다는 신호인가?’


 주기적으로 나는 소리에 맞추어 포도알을 열심히 찬물로 닦았다. EFT 상상 두드리기 기법도 같이 병행했다. 치료는 통증 하나 없이 20분 만에 끝이 났다. 자세와 위치를 잡느라 오래 걸린 것이며 다음부터는 10분 정도 걸린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치료실을 빠져나오자 기다리고 계시던 아버지는 수고했다며 생수를 건네주셨다.


 치료가 끝나고 병동으로 올라와 652호 문을 열자 안에는 교수님이 계셨다. 옆 침대 할아버지와 잠시 이야기를 나눈 교수님은, 나에게 항암제는 자기 전에 한 번 먹고 구토는 심하지는 않을 것이라 말씀하셨다. 하지만 2 ~ 3시간 이내에 구토해버리면 약을 토한 것이 되므로 다시 약을 먹어야 한다는 말도 전했다. 그게 화근이라면 화근이었다. 나의 수많은 걱정거리 중 하나에 지나지 않던 Temodal 부작용이 교수님 입에서 흘러나오는 순간 나에게로 와서 현실이 된 것이다.


 ‘항암제를 먹는다.’


 이모와 아버지 투병생활을 직시하지 않았던 나에게는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처음 경험해보는 일. 여태껏 한 번도 할 필요가 없었던 상상이 현실이 되어 문을 두드린다. 어두운 밤, 혼자 사는 원룸에 울리는 노크소리처럼 불쾌하고 무섭고 또 불안하다. 책을 폈다. 이번에는 화학 요법 부분을 찾았다.


‘화학 요법’이라는 단어 자체에 집중해 보자. 그렇다. ‘화학’이라는 단어가 있다. 하지만 당신은 지금 ‘요법’이라는 말을 단어에서 지우고 있지는 않은가? 궁극적으로 화학요법은 회복과 치유라는 의미에서 치료를 목적으로 한다. 단지 굉장히 치료 같지 않아 보이는 방법으로 그 일을 해 나갈 뿐이다. 이 주제에 대해 우리가 읽는 모든 책, 우리가 내려받는 모든 기사, 우리가 읽는 모든 잡지와 신문은 흔히 화학요법 치료의 극단적인 부정적 부작용들만을 강조한다. 탈모, 욕지기, 발열, 탈진과 같은 것이다. 그러니 화학요법을 둘러싸고 그토록 공포 분위기가 조성된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
화학요법을 받는 것에 대한 자신의 느낌을 바꾸기 위해 두드리는 사람들은 부작용을 덜 경험하게 되며 약물을 자기 몸에 진심으로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지금 내 앞에 놓여 있는 것은 부작용의 경험이 아닌, ‘회복과 치유’라는 의미의 치료이다. 이걸 잊고 있었다. 책의 지시에 따라 두드림을 실시해본다.


 ‘나는 비록 Temodal을 복용하는 것이 겁이 나지만, 나는 이제 내 몸이 그 치료를 받아들이고 쉽게 치유되는 것을 선택한다.’ 선택어구를 사용하기도 하고,

 ‘나는 비록 구토할까봐 두렵지만, 나는 나 자신을 깊이 그리고 완전히 사랑하고 받아들인다.’ 수용어구를 써보기도 하며 추천하는 방법들을 하나하나 실험하다보니 어느새 마음이 진정되었다.


 Temodal의 실체를 직접 마주했을 때 감정이 어떨지 모르지만 상관없다. EFT에서 중점을 두는 것은 ‘지금’ 일어나고 있는 ‘감정 과잉상태’의 ‘제거’이다. 문제가 생기면 그때 다시 EFT를 다시 시행하면 된다. 책은 그 외에도 방사선 치료 때와 마찬가지로 시각화 기법을 추천하고 있었다. 화학요법을 은빛 생명의 묘약, 치유의 액체, 샘솟는 건강의 흐름, 회춘의 기운 같은 느낌으로 받아들이라는 것. 항암제를 정맥 주사로 투여 받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지 예시의 질감은 액체였다. 상상력을 발휘해서 알약의 질감에 적당한 이미지를 생각해보았다.

Temodal은 ‘강력한 생명력을 담은 결정’

야채수는 ‘정화의 손길’


 지시에 따라 긍정적인 느낌과 심상(心象)을 상상해보았다.

Temodal을 입에 털어 넣고 물과 함께 삼키는 순간 넘치는 생명력은 캡슐을 뚫고 나와 뇌를 향해 솟구친다. 그리고 하나하나 종양 colony들을 정복하고 제압해버린다.

야채수를 마시면 정화의 손길이 부드럽게 내 온 몸을 감싼다. 구석구석 모든 삿된 기운들이 부드러운 손길에 다 녹아내린다.



 지시에 따라 야채수와 함께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Temodal을 수없이 복용했다. 벌써 건강해진 기분을 느끼며 저녁식사를 시작했다. 최후의 만찬으로 선택된 것은 햄버거 세트. 몇 입 베어 물지도 않았는데 금방 사라진 식사를 아쉬워하며 치우고 있을 때 형석이 형이 왔다.




64 돌아온 병원Ⅶ 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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