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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남 Dec 11. 2016

[소설] 내려놓음 64 돌아온 병원Ⅶ

20대 한의사, 암에 걸리다.



64 돌아온 병원Ⅶ




내과 전문의인 형을 통해 궁금했던 점들을 다시 한 번 해소하였다.


방사선 치료 받고 왔나? 별거 없지?
그냥 누워있다 왔네요. 마스크가 꽉 조여서 얼굴에 자국 심하게 남았다는 거 말고는 딱히 불편한 거는 없네요.
지부학회가 곧 시작해서 얼마 못 있다 가겠네. 힘들거나 궁금한 거는 없나?
아까 치료 대기하면서 다른 환자보고 생각났는데, ‘혹시 내 뇌종양이 전이된 상태라거나, 아니면 다른 곳으로 전이되었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들었어요.
아 그거 걱정 안 해도 된다. 니는 당장 눈앞에 있는 것도 큰데 별 거를 다 걱정하네. 만약에 니 종양이 다른 곳에 전이 되어왔다면 이미 그 원발 병소에서 증상이 나타났다. 증상이 빨리 안 나타나는 간(肝)에서 전이되었다고 해도 이미 발견되고도 남았을 걸?
제가 좀 사서 걱정하는 스타일이죠. 좀 안심이 되네요.
동완아, 그리고 니도 알다시피 암이 그냥 전이되는 게 아니라, 세포가 혈액 타고 돌아다니다가 비슷한 세포조직에 정착해서 증식하는 방식으로 전이되거든? 그런데 니는 성상세포이고, 그니까 암세포도 변형된 성상세포인데 우리 몸에서 성상세포는 뇌 밖에 없다. 아주 특별한 케이스가 아니고서야 그럴 일은 없어.
하긴, 가능성 있었으면 이미 의료진이 다 체크했겠죠?


 구토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다. 구토는 약물의 양이 많이 누적될수록 심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힘들어지게 될 것이라며 마음 단단히 먹을 것을 권유했다.


쿨럭 쿨럭
아, 여기 물 있어요. 형
아 맞다. 감기 걸린 사람은 만나지 마라. 항암제 먹으면 호중구 수치 많이 떨어지거든. 면역력 떨어진 상태에서 감염되면 큰일 난다. 내가 지금 기침한 거는 꽃가루 알러지 때문이니까 난 괜찮고. 밖에 꽃 많이 폈더라. 한 번 나가서 구경하면 좋을 텐데.
감염 조심해야 하니 그럴 수 있겠어요... 아쉽네요. 내가 봄 되면 운수랑 덕곡 사이, 운수랑 용암 사이에 벚꽃길 드라이브도 하고, 딸기 따기 체험도 하려고 장소도 다 알아봐두었는데 망했네요.
같이 갈 사람도 없으면서 많이 알아봐두었네. 조만간 병원에서 나올 수 있을 거야.
그때는 같이 갈 사람이 있었드랬죠.
이제 시간 다 되었네. 가봐야겠다. 그런데 아버지는 안 계셔?
아, 보통 손님 오시면 자리 피해주세요. 아마 복도 의자나 중환자 보호자 대기실에서 쉬고 계실 듯?
그래, 알겠다. 궁금한 거 있으면 주저하지 말고 물어보고 그래. 대답해줄테니.
고맙습니다~


 약물로 인해 나타나는 위장장애는 침으로 해결하면 되고, 이제 날이 따뜻해지면 감기는 별로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이래저래 청신호만 가득하다. 기분 좋은 마음으로 한참 책 정리 작업을 하고 있을 때, 아버지께서 봉투를 하나 내미셨다.


아까 온 사람이 나한테 주고 갔다. 니한테는 이야기하지 말라고 하던데 그게 말이 되나. 고령 공보의가 주는 거란다.


 약간 두툼한 편지봉투. 시니컬한 형들답지 않게 편지를 썼나 싶어 열어본 봉투 속에는 누런 종이들이 가득했다. 200만원이 넘었다. 금액도 금액이지만 그 안에 담긴 마음이 너무 기뻤다. 못난 동생을 이렇게 생각해주다니... 벅차오르는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그만 눈물이 흘렀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더라도 이 돈만, 아니 이 마음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으리라. 쓰지 않을 것이다. 이건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증거이고 앞으로 살아갈 이유 중에 하나이니까.


 뇌파검사는 결국 없었다. 아마 내일 오전 중에 할 것이라는 허울뿐인 약속만 남았다. 늘 그렇듯 어머니는 퇴근길에 들리셨고, 어머니께 형들이 주고 간 선물, 방사선 치료 때 있었던 일들, 화학 요법에 대한 여러 감정들을 감추지 않고 모두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냈다. 어머니는 아들이 처음 항암제를 먹는 모습을 함께 하고 싶어 하셨지만 내일 출근을 위해서 일찍 가보셔야 한다며 한사코 거부했다. 결국 10시쯤 어머니는 자리에서 일어나셨고 아버지는 배웅하러 따라나섰다.


 옆 침대의 노부부는 이미 취침 중. 간만에 가지는 혼자만의 시간이다. 나의 감정을 온전히 느껴본다. 그리고 떠오르는 공포, 불안, 초조 등의 감정에 대해 EFT 작업을 했다. 이제 나에게 남은 건 ‘2~3시간 안에 토하면 약을 다시 먹어야 한다’는 교수님의 말 한마디 뿐. 지우려고 열심히 두드려보지만 소용없다. 오늘은 안고 가야하는 기억인 듯하다. 생각은 생각을 낳고 계속 이어진다.


 ‘2~3시간 안에 토하면 약을 다시 먹어야 한다는 경고는 결국 Temodal을 먹으면 토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구나. 토하면 어떡하지? 많이 힘드려나?’


 아버지께서 돌아오시기 전에,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책 정리 작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11시. 구역감에 대한 공포를 억누른 채 강력한 생명력을 담은 결정을 입안에 털어 넣고 삼켰다. 나의 뇌를 휘감는 넘치는 생명력을 느끼며 자리에 누웠다.




65 카운트 다운Ⅰ 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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