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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남 Dec 12. 2016

[소설] 내려놓음 65 카운트 다운Ⅰ

20대 한의사, 암에 걸리다.



65 카운트 다운Ⅰ




 깊게 잠들지 못했다. 중환자실에서의 그것과는 다른 의미로 잠들기 힘들었다. 가뜩이나 좋지 않은 속은 흔들리는 침대로 인해 더 심해졌다. 결국 눈을 뜨고 휴대폰을 열어 시간을 확인했다.


‘AM 03 : 12


 2 ~ 3시간은 충분히 지난 시간. 다행이다. 토해도 문제없다. 그래도 그러고 싶지는 않다. 문제는 옆 침대. 평소에도 9시에 잠들고 5시면 일어나 부산스레 움직이는 탓에 겨우 든 잠을 깨우시던 두 분은, 그 날의 시작을 새벽 3시로 정했다. 익숙한 곳으로 돌아간다는 설렘이 가져온 에너지는 할아버지의 침대뿐만 아니라 나의 침대도 흔들었고, 파도에 출렁이는 배에 탄 나는 멀미하기 시작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얼굴에 철판을 깔고서라도 침대를 원 위치로 옮겨달라고 요구할 걸. 그놈의 체면이 머라고 이리 고생이냐. 그래도 오늘이 마지막인 게 천만 다행이다.’


 억지로 두 눈을 질끈 감고 잠을 청해보지만 짐 챙기고 냉장고에서 남은 음식을 꺼내고 옷장에서 옷을 정리하는 소리 하나하나가 나의 신경을 살살 건드린다. 자신들만 생각하는 배려 없음에 분노한다. 옆에서 깊은 잠을 주무시는 아버지를 보며 내가 예민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지만 아무래도 새벽 3시부터는 너무 한 것 같다. 야밤에 화장실 가는 것조차 미안해했던 나와 신사 아저씨였다. 이제는 노부부가 떠난 자리에 어떤 사람들이 찾아올지 두려워진다.


 한 시간가량 계속된 준비가 마무리된 듯 두 분은 밖으로 나갔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침대의 흔들림은 멎었지만 나의 의식은 여전히 파도에 일렁이는 배 위에 있다. 그런 내 눈에 냉장고 들어왔다.


 ‘정화의 손길이 나의 좋지 않은 속을 달래주지 않을까?’


 아버지 몰래 침대에서 내려와 냉장고 문을 열고 야채수를 꺼냈다. 뚜껑을 열고 배고픈 아기처럼 힘껏 빨아 당겼다. 그건 실수였다. 음식을 잘못 먹거나 하여 속이 더부룩하고 구역감이 발생하는 ‘식상(食傷)’의 제1치료법이 ‘금식(禁食)’이라는 것은 한의사라면 상식 중에 상식. 그러나 고통은 기초 상식마저 잊게 만들었다.


 입에서 침이 미친 듯이 분비되기 시작했다. 그냥 입 벌리고 숙이고 있었다면 끊임없이 떨어지는 물방울을 볼 수 있었으리라. 침이면 응당 가지고 있어야 할 점성 따위는 없었다. 그리고 왈칵 올라오는 욕지기. 혹시 몰라 옆에 준비해두었던 조그마한 대야에 물을 토했다. 아니 쏘아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한참 참은 소변을 배출하는 경비 아저씨의 물줄기처럼 계속 이어졌다. 그렇게 한참 뱉어내고 나니 속이 한결 편안해졌다. 한 번 해본 이상 두 번은 어렵지 않은 법이다. 까짓 것 속 안 좋으면 다시 토하면 된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편안해졌고 달아났던 잠도 슬그머니 되돌아왔다.


 7시까지 선잠을 잤다. 살짝 울렁거리는 속을 참으며 계속 누워있을까 했지만 변의에 못 이겨 일어났다. 설사였다. 큰일을 본 김에 샤워도 하고 간호사실에 가서 갈아입을 환자복을 받아오며 몸무게도 체크하였다.

 89.2kg. 위아래로 그렇게 쏟아내었는데도 오히려 0.2kg이 불었다.


 병원에서는 8시가 되면 밥차가 돌아다닌다. 밥차가 가져다주는 병원식을 나는 무척 싫어했다. 그래서 웬만하면 아침은 고구마케이크나 베이크 같은 병문안 올 때 손님들이 가져온 맛난 음식으로 해결하곤 했다. 그날 아침도 아버지께서 깨끗이 설거지한 접시에 고구마케이크 한 조각을 잘라주셨다. 그러나 오늘은 내키지 않았다. 먹는 것이 두려웠다.

 ‘이렇게 하루 종일 속이 메스껍지는 않을까? 먹었다가 울렁거려 구토하면 어떡하지?’


 약을 먹기 위해서는 안 먹을 수 없는 노릇. 억지로라도 먹어야했다. 꾸역꾸역 케이크를 목구멍에 밀어 넣고 있을 때, 전공의들이 찾아왔다. 간밤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결국 토했어요. 5시쯤에 토했으니까 약 다시 먹을 필요는 없죠?
많이 토했어요? 속이 막 불편하고 그랬나 봐요?
많이는 안했어요. 사실 계속 토하고 싶다기보다는 그냥 잠이 잘 안 오는 느낌 정도? 꿈꾸는 것 같기도 하고 그냥 막 잡생각 하는 것 같기도 하고?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던 전공의들은 교수님께 이야기해서 항구토제를 처방해준다고 했다. 그때 갑자기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좀 참아봐. 이거 먹는다고 항구토제 먹으면, 나중에 용량 늘어나면 어떡하려고 그래?
아니에요, 아버님. 여기 의사 많고 해결책도 있는데 굳이 참을 필요 없어요. 이런 거 해결하라고 입원하고, 간호사 있고 의사도 있고 그러는 거죠. 참지 마세요.


 궁금한 점도 물었다.

Temodal 반감기는 어떻게 되어요?
그거는 왜...?
아, 미식거리는 게 언제까지 지속될지 한 번 가늠해보고 싶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해서요.
아시면서... 그 거 저희도 찾아봐야 알아요. 좀 있다 의국실가면 한 번 찾아볼게요.
제가 너무 쓸데없는 거 물어봤죠? 괜찮아요. 식사 억지로라도 좀 해보니까 그럭저럭 먹히기도 하고 굳이 그럴 필요 없을 거 같아요.




66 카운트 다운Ⅱ 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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