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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남 Dec 14. 2016

[소설] 내려놓음 71 일상으로의 복귀Ⅰ

20대 한의사, 암에 걸리다.



71 일상으로의 복귀Ⅰ




 퇴원이 결정되고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더 이상 밤에 깼을 때 어느 누구에게도 미안할 짓을 할 필요가 없다는 ‘자유의 예감’이었다.


 ‘발밑에서 추위에 떨며 주무시는 부모님을 보지도, 깨우지도 않아도 된다.’

 이 전제가 가져다 준 행복감은 여느 밤 벚꽃이 흩날리는 가로수길을 드라이브 할 때 가슴에 일던 솜털을 기억나게 했다. 이미 올해의 벚꽃은 그 젊음을 다하고 바닥의 쓰레기가 되었지만 내년에는 어느 누군가와 그 행복감을 누리리라.


 퇴원이 결정된 나를 향해 많은 의료진이 축하해주었다. 그들을 보며 생각했다.

 나는 이 시간들을 잊을 수 없다. 내가 가장 바닥에 있을 때 지켜주고 일으켜주고 다시 나아갈 수 있게 한 사람들을 잊을 수 없다. 힘들 때나 기쁠 때 혹은 길가다가도 문득, 나의 삶에서 그 존재감을 드러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곧 나를 잊을 것이다. NS(신경외과) 병동의 유일한 20대 환자였을지라도, 강철인간일지라도 늘 마주하는 환자 중 한 명일 뿐이다. 특별히 더 아프지도, 사고 친 적도 없이 무난히 넘어간 환자. 그 환자를 기억하기란 힘든 일이며 기억한다면 그건 편애일지도 모른다. 나에게는 행운이나 그러지 못한 자들에게는 불행이다. 다른 방식으로라도 그들 머릿속에 ‘나’라는 존재를 각인시키고 싶다. 나만 기억하기엔 너무나 소중하기에. 말이 안 되는 질투라는 걸 알지만, 누군가에게 특별한 존재이고 싶은 건 사람이라면 당연한 욕망이 아닐까?


 퇴원 수속을 하러 부모님이 원무과로 내려간 사이, 내가 누워있었던 침대는 흰 피부를 벗어버리고 빨간 속살을 드러냈다. 알 수 없는 마음의 인도로 침대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주위를 둘러보았다. 40일 간 나의 몸과 마음을 잡아두었던 곳. 이별의 슬픔은 없다. 다만 더 잘 지내지 못했던 시간에 대한 아쉬움만 있을 뿐. 그러다 여섯 번째 병실 메이트와 눈이 마주쳤다.

 어릴 적부터 혼자였다는 아저씨. 어느 누구도 찾아오지 않는 병실에서 아저씨는 항상 쾌활했다. 이런 생활이 익숙해서 아무렇지 않다며 으스대던 아저씨. 그의 눈빛에서 나는, 지난 날 먼저 퇴원하는 환자들을 바라보던 나의 그것을 보았다.


 지갑을 챙겨 스텔라관 1층 까페로 가 커피를 주문했다. 전공의 몫, 간호사 몫, 그리고 아저씨 몫. 하나 둘 나눠주며 작별 인사를 하고 부모님과 함께 짐을 나눠들고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12서 7352」


 2005년 식 검정 NF 소나타. 작년에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내 차. 오래 세워만 두는 것도 좋지 않고 재미있는 기억들도 떠올려보라는 의미에서 어머니는 내 차를 몰고 와주셨다. 간만에 보는 내 차가 반가우면서도, 수술 후 3개월간은 운전할 수 없다는 교수님의 말이 떠올라 서글프기도 했다. 잠깐 운전석에 앉았다가 조수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렇게 간만에 달릴 기회를 얻은 차는 봄 햇살을 즐기러 공원에 놀러온 인파 사이를 헤치며 집으로 향했다.



 다시 돌아온 내 방에는 빛이 났다. 근 2주 넘게 비어있었던 탓에 책상에 살짝 내려앉은 흰 먼지조차도 햇볕에 반짝였다. 아직 정리가 덜 되어 운수의 방도 본가의 방도 되지 못한 내 방이 낯설고도 신비롭다. 익숙해야 할 장소에서 느껴지는 이질감. 그 낯섦이 전혀 불쾌하지 않은 건 무슨 까닭일까?

 지난번 그때처럼 씻지도 않은 채 침대에 몸을 던졌다. 어린 시절의 치기가 만든 상처를 가리기 위해 반창고가 덕지덕지 발라져 있는 벽을 바라보며, 최근에 나에게 밀어닥쳤던 일들을 떠올려본다. 느리고 신중하게, 때때로 옆길로 새는 생각도 그냥 내버려둔다. 그 또한 나의 선택, 기억의 배경이니까. 일본 여행 때 떨리는 손으로 결제한 고베 와규(和牛)를 먹을 때처럼, 실수로 삼킨 침조차 아까워하며 지난 시간을 음미한다.


 병원은 기다림의 성(城)이었다. 나에게 허락된 것은 오직 기다림과 기다림을 기다리는 일. 검사를, 치료를, 밥을, 방문객을, 그리고 나갈 날을 기다리는 일. 그러나 나는 이제 ‘집’에 있다.

 ‘더 이상 기다리지 않겠다. 능동적으로 주위를 변화시키리라.’




72 일상으로의 복귀Ⅱ 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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