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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남 Dec 14. 2016

[소설] 내려놓음 73 일상으로의 복귀Ⅲ

20대 한의사, 암에 걸리다.



73 일상으로의 복귀Ⅲ




 간만에 꿀잠을 잤다. 야채수를 먹은 이후로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오밤중의 뇨의(尿意) 때문에 잠을 두어 번 깨고, 약 때문에 깊게 잠들지 못한 것은 여전했지만 그래도 훨씬 더 깊은 잠을 잔 기분. 여느 때처럼 머리맡을 더듬어 안경을 썼다. 갈아입을 속옷과 수건을 챙겨들고 화장실에서 샤워했다.


 ‘어? 머가 이렇게 내 앞에서 알짱거리지?’


 시야에서 무언가가 거슬렸다. 검은 점 같은 것이 자꾸 아른거렸다. 조금씩 커지다가 작아지기를 반복하며 일정부위를 계속 맴돌았다. 보지 않으려고 격렬히 고개를 저어 보았다.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애초에 그렇게 움직여버리면 무엇하나 제대로 보이는 게 없는 법이다. 온통 시야가 흔들리는데 검은 점 유무 판단을 어찌 할 수 있을까? 별 소득 없는 짓을 몇 번 반복하다 오히려 밀려오는 어지러움 때문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결국 다시 침대에 누워 몸도 마음도 가다듬어야 했다.


 누워서 몇 가지 가설을 세우고 차례차례 검증해나갔다. 그러다가 독특한 점을 하나 발견했다. 왼 눈으로만 볼 때 사라졌던 검은 점이 오른 눈으로만 보자 다시 나타났다. 왜 하필 오른 눈일까. 좌뇌에 자리한 나의 종양, 그곳을 향해 쏘아졌던 방사선이 연달아 생각난다. 급기야 수술 후 눈이 잘 안 보인다며 우시던 옆 침대 할아버지까지 떠오른다. 개미 눈깔만한 검은 점이 이제 블랙홀처럼 보인다. 점점 나의 시야를 잡아먹으며 커갈 것만 같다.


 ‘오른 눈이 안 보이게 되지는 않겠지? 그렇지 않더라도 이런 게 계속 보이면 집중에 방해되고 운전도 못할 텐데...’


 떨리는 마음으로 승현이 형에게 물었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답이 없었다. 기다리면서 전공서적이랑 의학서적들을 꺼내서 정보를 찾다가 포기했다. 검은 녀석이 자꾸 거슬려서 열이 뻗친 탓이다. 2시간 뒤 답이 왔다.



동완 : 자고 일어나니 이상한 증상이 하나 생겼네요. 왼 눈으로 볼 때는 아무 이상 없는데 오른 눈으로 보면 작은 검은 점이 눈앞에 떠다녀요. 크기는 초파리 정도?

승현 : Nothing except anxiety

동완 : 아 영어는 어려운데. 하여튼 걱정할만한 것은 아니라는 거죠?

승현 : 응.

동완 : 감사합니다. 병원에 있다가 집에 오니까 별거 아닌 것에도 쪼네요.

승현 : 일상생활 하다보면 또 하나하나 불편한 게 생길수도 있어.

동완 : 멘탈 두껍게 가져가야겠어요.


 하루가 채 가기 전에 정신을 어지럽히던 개미눈깔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자취를 감추었다.


 주말에는 방사선 치료가 없다. 밤에 한 번 Temodal 먹는 것을 제외하면 이렇다할만한 치료는 없다. 병원에서는 환자복이라도 입고 있었지 지금은 그냥 집에서 속옷차림으로 돌아다니고 있으니 내가 환자라는 사실을 느낄 계기가 없다. 급격히 움직였을 때 살짝 느껴지는 어지러움이 유일한 증상.


 스님의 머리보다 더 빛나던 내 머리도 훈련소 갈 때 수준까지 올라왔다. 똑같은 머리길이임에도 그걸 바라보는 내 마음이 다름을 느낀다. 낙담의 상징이던 빡빡머리가 이제는 희망이 되었다. 방사선 치료를 받으면 머리카락 빠진다더니 치료를 시작한지 일주일이 넘었는데도 그럴 기미가 없다. 이 부작용마저 비껴나가게 만든 것인가 싶은 마음에 기쁘다가도, 모근조차 파괴시키지 못하는 게 더 심부(深部)에 있는 종양은 건드릴 수나 있을까 하는 걱정도 살짝 들게 한다.


 월요일이 되었다. 외래로 방사선 치료를 받아보는 첫 날이다. 평일 11시 반으로 예약된 치료를 위해 아버지와 함께 병원으로 출발했다. 콜택시를 탔다. 카풀 하시느라 나두고 간 어머니 차와, 3개월 운전 금지로 인해 멈춰있는 내 차가 주차장에서 놀고 있었지만 택시를 탔다.


 아버지는 운전을 못하신다. 정말 빈손으로 시작했던 아버지와 어머니의 결혼 생활이었다. 차 1대 사는 것도 7년을 모아야 했고, 그 1대도 대구의 학원에 출퇴근하는 아버지보다 경북으로 출퇴근하는 어머니가 쓰는 것이 타당했다. 그리고 아버지는 밤늦게 집에 돌아오셔야 했기에 주차 공간의 문제도 있었다.

 그렇게 나중에 차를 하나 더 사게 되면 그때 면허를 따야지 생각했던 아버지에게 차가 생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졸라맨 허리띠가 힘들어서라도 풀어볼까 싶기도 전에 친가와 외가에서는 사고가 터졌고 그것 메꾸기도 벅찬 생활이었다. 더 좋은 학원 다니는 친구가 부러워 학원 옮겨달라고 말하고 싶다가도 입안에 맴돌다 사라지게 만들었던 좋지 못한 집안 형편. 거기에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내가 고등학생이던 시절 아버지는 암에 걸리셨다.


 돈을 벌기 위해 아내는 출근하고 어린 초등학생 딸은 아무것도 모르고 고등학생 아들은 알면서도 모른 척 했던 그때, 아버지는 이 길을 버스타고 혼자 다녔던 것이다. 같이 다녀도 심심하기 그지없고, 택시를 타도 불편하고, 생계에 대한 걱정도 없는 나의 마음이 이럴진대 아버지는 어떠했을까?


 ‘아버지의 무게를 과연 내가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병원에 도착해서 지하 1층에 내려가 대기실에서 30여 분 기다리고, 10분 치료 받고, 다시 20분 간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원인을 알 수 없는 피로감을 겨우 이겨내며 점심 식사를 하고 낮잠을 잤다.




74 일상으로의 복귀Ⅳ 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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