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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남 Dec 17. 2016

[소설] 내려놓음 80 면담Ⅴ

20대 한의사, 암에 걸리다.



80 면담Ⅴ




 신서혁신도시에 위치한 대구경북 지방병무청과 병무청 중앙신체검사소. 이번 방문은 지방병무청에서, 다음 방문은 중앙신체검사소에서 이루어진다. 말이 혁신 도시이지 들어선 건물도 별로 없는 도로만 잘 닦여 있는 길을 걸어올라 병무청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꽤 많은 사람들이 로비에 모여 있었다.


 ‘저기서 다들 기다리나 보다.’


 아직 30분 정도 남았건만 꽤 많이 와 있었다. 서로 모르는 사이에 대화 따위가 있을 리가 만무하다. 모르는 사람끼리 붙어 있기 민망한지 빈자리도 많고 서 있는 사람도 많았다. 각자 띄엄띄엄 자리 잡고 스마트폰에 의지하여 다가올 2시를 기다렸다. 결국 아버지는 앉는 것을 포기하고 구석에 서서 기다렸다. 나도 그럴까 했지만 어지럼증이 살짝 있어 억지로 자리를 비집고 앉았다. 그러자 한 명이 빈 공간을 찾아 떠났다.


 ‘꼭 내가 내쫒은 것 같네. 그나저나 부모님과 동행한 사람은 나뿐인가? 다들 혼자 왔네.’


 2시가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이 계속 늘어나 2~30명은 되어보였다. 그런데 2시가 넘었는데도 병무청 측에서는 어떠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가 비로소 내려온 시간은 2시 20분. 누구 한 명쯤은 당황하거나 불만을 표시할법하건만 20분 간 내 귀에 들린 것은 오로지 옷 부스럭 거리는 소리뿐이었다. 직원 또한 늦게 온 이유에 대한 설명 일언반구 없이 바로 업무를 시작했다.

 휴대전화를 거두어 가고 탈의실 비슷한 곳에 가서 모든 소지품을 다 집어넣고 형광색 조끼 하나를 입게 했다. 지시를 내리는 직원의 말투는 자못 험악해서 마치 교도소에 수감되기 전 사진을 찍으러 가는 범죄자가 된 기분을 들게 했다.


 ‘아픈 게 죄가 아니라더니 군인이 아프면 죄네. 시발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딴 대접을 받아야 하냐?’


 직원은 나라사랑카드를 모두 챙겼는지 물었다. 다들 하나씩 꺼냈지만 난 없었다. 8년 전에 받은 나라사랑카드는 옛날 옛적에 사라졌고 2년 전 훈련소에서 다시 받은 나라사랑카드도 잃어버린 지 오래였다. 다시는 쓸 일이 없다고 생각해서 재발급 받을 생각 따위는 전혀 하지 않았다.


저기, 나라사랑카드 없으면 어떡하나요?
그것도 안 챙겨왔어? 기본인데.
발급 받은 지 워낙 오래돼서요.
민증은?
민증은 없고 운전 면허증은 있는데...
저기 가면 임시로 하나 주니까 받아와.


 ‘저 인간은 도대체 날 언제 보았다고 반말이야. 나이야 지가 나보다 많겠지. 근데 이러는 건 아니지. 시발 막말로 지나 내나 똑같은 공무원인데. 아파서 못 간다는데 그게 죄냐? 솔직히 나 공보의 계속하고 싶어. 근데 못 하는 거라고. 안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지금 뺑끼치겠다고 수 쓰냐? 근데 내가 왜 이딴 대접을 받아야 해?’

 속으로 분통을 삼키며 임시 패스를 지급받고 포로수용소 같은 대기실에서 차례를 기다렸다. 왠지 내 이름이 불리면 나가서 “중립국”을 세 번쯤 외쳐주어야 직성이 풀릴 것 같다.


 내 번호가 불렸다. 임시 패스를 찍은 뒤 준비한 진단서를 들고 검사장으로 들어갔다. 검사장이라고 해서 몸무게나 키, 시력 같은 것들을 체크할 것 같았는데 아니었다. 파티션으로 분할된 곳에 각 과별로 의사들이 앉아 있었고 재검 대상자와 면담을 나누고 있었다. 또 기다려야 했다. 그 시간을 스마트폰도 없이 앉아 있다 보니 심심해졌고 그런 내 눈에 들어온 것은 MRI 영상이 담긴 CD와 진단서가 담긴 서류 봉투였다.


 무엇에 홀린 듯 서류봉투를 열었다. 교모세포종이라 진단 내려진 이상 별로 희망적이지 못한 내용들이 적혀 있음이 명약관화(明若觀火)임에도 불구하고 열었다. 그걸 알게 됨으로써 내가 더 실의에 빠질 것을 두려워하면서도 그 안에 담긴 내용이 보고 싶었다. 아니 싶어졌다. 치솟는 호기심을 억제하지 못하고 꺼냈다. 첫 번째 페이지를 보았다. 수술 소견서였다. 영어로 쓰여 있어 자세히 보려는 순간 누가 나를 불렀다.



13번.
네. 갑니다.




81 면담Ⅵ 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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