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내려놓음 80 면담Ⅴ

20대 한의사, 암에 걸리다.

by 한남



80 면담Ⅴ




신서혁신도시에 위치한 대구경북 지방병무청과 병무청 중앙신체검사소. 이번 방문은 지방병무청에서, 다음 방문은 중앙신체검사소에서 이루어진다. 말이 혁신 도시이지 들어선 건물도 별로 없는 도로만 잘 닦여 있는 길을 걸어올라 병무청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꽤 많은 사람들이 로비에 모여 있었다.


‘저기서 다들 기다리나 보다.’


아직 30분 정도 남았건만 꽤 많이 와 있었다. 서로 모르는 사이에 대화 따위가 있을 리가 만무하다. 모르는 사람끼리 붙어 있기 민망한지 빈자리도 많고 서 있는 사람도 많았다. 각자 띄엄띄엄 자리 잡고 스마트폰에 의지하여 다가올 2시를 기다렸다. 결국 아버지는 앉는 것을 포기하고 구석에 서서 기다렸다. 나도 그럴까 했지만 어지럼증이 살짝 있어 억지로 자리를 비집고 앉았다. 그러자 한 명이 빈 공간을 찾아 떠났다.


‘꼭 내가 내쫒은 것 같네. 그나저나 부모님과 동행한 사람은 나뿐인가? 다들 혼자 왔네.’


2시가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이 계속 늘어나 2~30명은 되어보였다. 그런데 2시가 넘었는데도 병무청 측에서는 어떠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가 비로소 내려온 시간은 2시 20분. 누구 한 명쯤은 당황하거나 불만을 표시할법하건만 20분 간 내 귀에 들린 것은 오로지 옷 부스럭 거리는 소리뿐이었다. 직원 또한 늦게 온 이유에 대한 설명 일언반구 없이 바로 업무를 시작했다.

휴대전화를 거두어 가고 탈의실 비슷한 곳에 가서 모든 소지품을 다 집어넣고 형광색 조끼 하나를 입게 했다. 지시를 내리는 직원의 말투는 자못 험악해서 마치 교도소에 수감되기 전 사진을 찍으러 가는 범죄자가 된 기분을 들게 했다.


‘아픈 게 죄가 아니라더니 군인이 아프면 죄네. 시발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딴 대접을 받아야 하냐?’


직원은 나라사랑카드를 모두 챙겼는지 물었다. 다들 하나씩 꺼냈지만 난 없었다. 8년 전에 받은 나라사랑카드는 옛날 옛적에 사라졌고 2년 전 훈련소에서 다시 받은 나라사랑카드도 잃어버린 지 오래였다. 다시는 쓸 일이 없다고 생각해서 재발급 받을 생각 따위는 전혀 하지 않았다.


저기, 나라사랑카드 없으면 어떡하나요?
그것도 안 챙겨왔어? 기본인데.
발급 받은 지 워낙 오래돼서요.
민증은?
민증은 없고 운전 면허증은 있는데...
저기 가면 임시로 하나 주니까 받아와.


‘저 인간은 도대체 날 언제 보았다고 반말이야. 나이야 지가 나보다 많겠지. 근데 이러는 건 아니지. 시발 막말로 지나 내나 똑같은 공무원인데. 아파서 못 간다는데 그게 죄냐? 솔직히 나 공보의 계속하고 싶어. 근데 못 하는 거라고. 안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지금 뺑끼치겠다고 수 쓰냐? 근데 내가 왜 이딴 대접을 받아야 해?’

속으로 분통을 삼키며 임시 패스를 지급받고 포로수용소 같은 대기실에서 차례를 기다렸다. 왠지 내 이름이 불리면 나가서 “중립국”을 세 번쯤 외쳐주어야 직성이 풀릴 것 같다.


내 번호가 불렸다. 임시 패스를 찍은 뒤 준비한 진단서를 들고 검사장으로 들어갔다. 검사장이라고 해서 몸무게나 키, 시력 같은 것들을 체크할 것 같았는데 아니었다. 파티션으로 분할된 곳에 각 과별로 의사들이 앉아 있었고 재검 대상자와 면담을 나누고 있었다. 또 기다려야 했다. 그 시간을 스마트폰도 없이 앉아 있다 보니 심심해졌고 그런 내 눈에 들어온 것은 MRI 영상이 담긴 CD와 진단서가 담긴 서류 봉투였다.


무엇에 홀린 듯 서류봉투를 열었다. 교모세포종이라 진단 내려진 이상 별로 희망적이지 못한 내용들이 적혀 있음이 명약관화(明若觀火)임에도 불구하고 열었다. 그걸 알게 됨으로써 내가 더 실의에 빠질 것을 두려워하면서도 그 안에 담긴 내용이 보고 싶었다. 아니 싶어졌다. 치솟는 호기심을 억제하지 못하고 꺼냈다. 첫 번째 페이지를 보았다. 수술 소견서였다. 영어로 쓰여 있어 자세히 보려는 순간 누가 나를 불렀다.



13번.
네. 갑니다.




81 면담Ⅵ 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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