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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남 Dec 17. 2016

[소설] 내려놓음 79 면담Ⅳ

20대 한의사, 암에 걸리다.



79 면담Ⅳ



 10시 반쯤 간호사는 내 이름을 불렀다.


김동완님. 진료실로 들어가실게요.
네, 감사합니다.

 

교수님은 반갑게 나를 맞으셨다.


잘 지냈어요? 퇴원하니까 얼굴이 더 낫네. 살찐 것 같기도?
맞아요. 살 쪘어요. 제가 식욕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스스로 먹는 것 좀 줄이고 하루에 2~3시간씩 자전거 돌리는데도 살이 안 빠져요. 신기하죠?
그럴 수가 있나?
아침에 약 먹는다고 억지로 일어나서 밥 조금 먹고 다시 자기는 하는데 좀만 자다가 일어나서 운동하는데도 그래요.
살찌면 삶의 질은 좋다는 거니까 괜찮네요.
혹시 저처럼 치료 중에 살찌는 사람 본 적 있나요?

 

묻는 말에 으레 늘 하던 미소로 답하는 교수님. 준비한 질문지를 꺼냈다.


여쭤볼 게 많아서 정리 좀 해왔어요.


 번호대로 차례차례 물어나갔다. 걱정했던 것들이 별 일이 아니었던 것인지 워낙 주관적인 증상이라 판단을 유보한 것인지 교수님은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그러다 5번 질문 ‘바깥 외출 허용 정도’에 대한 물음에서 무거운 입을 떼셨다.


공원에서 산책하고 까페나 식당에서 노는 것도 괜찮아요. 야구장에서 야구 보는 것은 지금은 좀 그런데 따뜻해지면 괜찮아요.
그렇게 까지 예민하게 감염 조심할 필요는 없나 봐요?
여기 혈액검사 결과 보시면 호중구 수치가 정상이죠?
네. 그러네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스테로이드 안 먹은 지도 좀 됐고.
아, 그리고 영화관에서 영화 보는 것도 되나요?
네. 괜찮아요.
seizure 위험 있을 때 어두운 곳에서의 광 자극은 피해야 하지 않나 해서요. 그거 걱정돼서 요즘 불 끄면 휴대폰도 안 보거든요.
신경과나 신경외과 교수님들 중에서 위험할 수 있다고 피하라고 추천하는 분들도 많이 계신데, 저는 그렇게까지 조심할 필요는 없다고 보아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계속된 남은 질문에 대해 들으신 뒤 한 마디로 정리하셨다.


그냥 일상생활 하시면 돼요.


 면담을 마치고 약을 타오니 어느새 11시가 넘어 있었다. 당초 계획은 10시 쯤 병원 업무가 끝나면 집에 가서 점심을 먹고 2시에 예약된 재검을 받으러가는 것이었다. 의병 제대 때문에 신서혁신도시에 있는 병무청에 방문해야 했다. 시간이 애매하게 남아 집에 들르지 않고 바로 출발하기로 하고, 30분마다 운행하는 병원 셔틀버스를 탄 뒤 근처 지하철역에 내려 지하철을 타고 안심역에 내렸다. 아직 시간이 넉넉하게 남아 근처 식당에서 아버지와 점심을 먹었다.


 ‘아빠랑 밖에 둘이서 식사해본 적이 있었던가? 그러고 보니 엄마랑도 없네. 가족끼리 외식도 잘 안 나가고, 하더라도 집에서 시켜먹고. 내가 가족끼리 보낸 시간이 정말 얼마 없었구나. 집안 분위기 때문에 별로 놀지도 못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다고 해서 집에서 무얼 한 것도 아니었네. 아픈 덕분에 이런 것들도 다 해보는군.’




80 면담Ⅴ 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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