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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남 Dec 16. 2016

[소설] 내려놓음 78 면담Ⅲ

20대 한의사, 암에 걸리다.



78 면담Ⅲ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벌써 9시네. 생각보다 사람 많네. 다음부터는 좀 서둘러야겠다.”
 “피 생각보다 많이 뽑더라. 이제 외래 가야 하는 거지? 지금 가면 좀 늦어지겠네.”
 “한 시간 정도는 걸릴 테니까 10시는 넘어야겠네.”


 어머니께 물었다.


 “그럼 엄마 출근해야 하는 거 아니야?”
 “아냐. 엄마 괜찮아. 1, 2교시에는 수업 없고 교감선생님도 병원 갔다가 천천히 오라고 했어.”
 “에이, 10시에 진료 본다는 보장도 없고, 진료 끝나고 그러면 적어도 10시 반은 될 텐데 3교시 수업까지 가기 힘들지 않을까?”
 “그래도 고속도로로 가면 얼마 안 걸리니까 괜찮을 거야.”
 “아니다. 엄마. 밤에 잠도 잘못자면서, 과속하면 큰일 난다. 별일 없을 거고 물어볼 거 다 준비해서 이렇게 인쇄해왔다 아이가. 다 빠짐없이 묻고 엄마한테 말해줄 거니까 그냥 가. 내 괜찮다.”
 “엄마는 그래도 교수님 만나 뵙고 말씀도 듣고 가고 싶은데.”
 “오늘 월요일이잖아. 가다가 길 막히면 어떡해. 수업 늦으면 안 돼지. 어서 가세요. 정 여사님!”


 결국 설득에 못 이겨 어머니는 눈물을 머금고 뒤늦은 출근을 했다. 라파엘관 2층에 있는 신경외과 외래에 접수하고 차례를 기다렸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다. 교수님은 신경외과 중에서도 특히 뇌종양 환자를 주로 담당했다. 내가 어제 정리한 궁금증만하더라도 족히 A4용지 2장을 넘겼다. 다들 나만큼 궁금한 내용이 많을 것이다. 불안하고 걱정은 되는데 무엇이 이상한지조차 모르겠고,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제대로 표현할 수 없어 답답해하며 교수님 얼굴을 1초라도 더 보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나는 기다려야만 한다. 나의 지루한 1분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조금이라도 더 확보하고 싶은 시간이 분명하기에.

 다만 기약 없이 대기하는 시간이 아쉽다. 기다리는 동안 무엇이라도 할 수 있게 대기실에 탁자 하나쯤은 마련해둔다면 어떨까? 그리고 문자서비스나 어플을 통하여 ‘074번 환자가 진료실로 들어갔습니다.’ 이렇게 알람을 보내주면 어떨까? 딴 짓하다가도 적당한 시간에 맞춰서 돌아갈 수 있게.


 ‘다들 그런 생각 해봤겠지. 안 되는 현실적인 이유가 있기는 했을 거야. 몸이 불편한 환자들이 움직이다가 탁자에 걸려 넘어져서 사고가 발생하거나, 문자로 알려줘도 못 보고 뒤늦게 오는 환자 때문에 순서가 엉킨다거나 해서 접었을 수도 있겠지. 아니면 돈이 너무 많이 들거나. 어쨌거나 불편한 건 환자고, 의사는 힘이 없고, 판단은 경영진이 하는 거니까. 아, 그만 기다리고 싶다.’


 어머니께서 잘 출근하시고 있을지 걱정된다. 잘 때 분명히 문을 닫아두었는데 오늘도 문이 살짝 열려있었다. 필시 자식 걱정에 깊게 잠들지 못하고 중간에 깨서는 슬그머니 찾아와 이불 덮어주며 나의 병세를 살폈으리라. 내일 외래를 앞두고 컨디션 괜찮은지 묻는 말에 염려할 필요 없다며 무덤덤하게 이야기한 게 화근이라면 화근이다. 정말로 괜찮기에 그리 답한 것이지만, 그 모습이 아프기 전 걱정거리나 혼날 거리가 있어도 잘 숨겨 부모님의 레이더망을 요리조리 피하던 내 모습을 떠올리게 만든 것이 분명하다. 물론 그러지 않았어도 찾아오셨을 것 같지만. 부모님의 실체 없는 두려움을 덜어드리고 싶어도 실체가 없기에 지울 수 없다. 단지 기다릴 수밖에.



 복도에 앉아 지나다니는 사람을 구경했다.

 구겨진 흰 가운을 입고 바쁘게 뛰어가는 사람.

 ‘인턴이거나 전공의 1, 2년 차. 나랑 비슷한 나이겠네.’


 여유 있게 걸어가는 흰 가운.

 ‘치프일까? 펠로우일까? 나이가 짐작이 안 되네. 대충 승현이 형이나 덕경이 형 또래인데. 저렇게 대단해 보이는 사람들이 군대 가서 초코파이에 목숨 거는 거 보면 신기해.’


 뒤에 수많은 흰 가운을 거느리고 당당하게 걷는 대장 흰 가운.

 ‘과장급인가보다. 입원실은 이 층에는 없는데, 무슨 과이기에 여기를 지나가지?’


 그 외에도 초록 가운, 보라 가운도 바쁘게 다닌다.

 ‘저 사람들은 간호사인가? 모르겠다. 아, 일하고 싶다. 저 사람들처럼 바쁘고 싶어.’




79 면담Ⅳ 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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