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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남 Dec 16. 2016

[소설] 내려놓음 77 면담Ⅱ

20대 한의사, 암에 걸리다.



77 면담Ⅱ




 4월 18일 월요일. 오전 9시 반으로 예약된 신경외과 외래를 위하여 아침부터 바삐 준비했다. 오늘은 교수님을 만나 혈액검사 결과를 토대로 Temodal 독성을 확인하고 향후 치료에 대한 결정을 내리기로 되어있었다. 채혈 후 판독까지 30분에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것을 감안하면 적어도 8시 반까지는 병원에 도착해야 했다.


 예상보다 이른 8시 즈음에 병원에 도착했다. 어머니가 주차하는 동안 아버지와 나는 데레사관 1층에 마련된 외래채혈실로 뛰어갔다. 지난 세월의 흐름이 느껴지는 라파엘관, 스텔라관과는 달리 기둥이고 벽이고 바닥이고 대리석을 깔아놓은 것처럼 번쩍거리는 것이 마치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의 한정판 굿즈를 타기 위해 달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좋았던 기분도 이내 사라졌다. 아침 8시의 병원, 그 중에서도 일부분에 불과한 외래채혈실. 그 앞에는 있는 수많은 환자와 보호자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채혈실에 접수하는 것조차 번호표를 받아 대기한 뒤에 할 수 있었고, 접수 후에도 실제 채혈까지 꽤 기다려야 했다. 아버지가 뽑은 번호표에 적힌 대기 인원은 54명.


 ‘세상에 이렇게 아픈 사람이 많구나.’


3개 병동을 꽉 채우고도 모자라 새로 암 센터까지 짓고 있는 병원. 게다가 그 옆에는 나의 모교와 함께 만든 양한방 협진 병원까지 있다. 그 안에 입원해 있는 환자만 해도 수백은 될 터인데 외래로, 그 중에서도 피 뽑으러 온 사람이, 그것도 오전 8시에 100명이 넘는 상황.

 심지어 대구에 대학병원만 해도 4개이고 우리학교 병원까지 포함하면 5개다. 그 외에도 꽤 커다란 종합병원이 수두룩하고. 그리고 서울에는? 전국에는?


 이렇게 아픈 사람이 많은데도 잘만 돌아가는 세상이 신기하고, 세상을 돌리기 위해 이렇게 많은 사람이 아프게 일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난 뭐지? 내가 세상을 돌리기 위해 애라는 것을 쓴 적이 있었나? 주욱 공부하다가 일은 고작 2년, 그것도 한적한 시골에서 쉬엄쉬엄 일한 게 끝인데?’


 채혈실 주변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아버지께서 근처에 남아 접수하기로 하고 어머니와 나는 조금 멀리 떨어진 의자에 자리했다. 감염을 조심해야 했기에 환자들이 많은 곳은 되도록 피하는 게 수였다. 안에서 같이 악머구리 끓듯 바글대다가 옆으로 슬쩍 빠져나오니 상황이 한 눈에 들어왔다. 많디 많은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으니 한 가지 사실이 띄었다.


엄마, 여기에 나 같은 놈 하나도 없다.
무슨 소리야?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데 20대는 한 명도 없어.
저기 한 명 있네.
어디?
저기 번호표 뽑는 데 옆에.
어디 저 사람이 20대야. 30대 후반은 되어 보이구만.
여기도 한 명 지나가네.
깁스한 거 보니까 정형외과 환자네. 그리고 저렇게 많은데 엄마 말대로 다 끼워 넣어봐야 고작 2명이야.
그만큼 젊으니까 더 회복력도 빠르고 좋은 거지. 저 사람들보다 니가 더 상황이 나은 게 아닐까?


 환자들은 전부 노인이었다. 꽤 보이는 장년층도 대부분 보호자였다. 나 같은 20대는 환자도 보호자도 거의 없는 현실. 쌀에 뉘처럼 껴버린 지금이 속상해 얼른 이 자리를 뜨고 싶었다. 그러나 좀처럼 줄은 줄어들지 않았고 30분을 넘게 기다려서야 겨우 접수를 하고 채혈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아직 떠나지 않은 겨울이 많은 이의 가슴에 깃들어 기침과 함께 쏟아져 나왔다. 새로운 안식처를 가지려는 겨울 요정을 피해 앉는 것을 포기하고 벽에 기대 차례를 기다렸다. 그리고 아직 멍이 한가득한 남아있는 팔을 내밀고 피를 뽑았다. 채혈실 바깥으로 나왔다.




78 면담Ⅲ 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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