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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남 Dec 16. 2016

[소설] 내려놓음 76 면담Ⅰ

20대 한의사, 암에 걸리다.



76 면담Ⅰ




 두통도 그러더니 병원이 문을 여는 주중에는 가끔 놀다만 가던 이상증상이 주말이 되자 약속이나 한 듯 몰려나와 온 정신을 사납게 만들었다. 내가 짊어져야 할 의무 따위 없어진지 오래건만 몸은 아직 알지 못한 모양이다. 가끔가다 한 번씩 나타나는 이상증상들이 1달에 한 번 있는 신경외과 외래를 하루 앞둔 주말에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났다.


 주변 의사 형들에게 물어보고 심지어 주치의에게도 상황을 메시지로 보고하며 조언을 구해보았지만 각자 가정에 충실 하느라 또는 학회 세미나에 참가하느라 바빠 어느 누구에도 답을 받지 못했다. 불안해졌다. 혹시 병이 진행된 것은 아닌지도 염려되었지만 나를 더 걱정시킨 것은 내 몸이었다. 여느 때처럼 월요일 아침이 되면 증상이 사라져버리고, 방사선으로 손상된 기억력 때문에 궁금한 점을 까먹고 다 묻지 못하고, 그러다 잠들기 직전 문득 잊어버렸던 질문이 생각나 이불을 뻥뻥 차는 모습이 절로 그려졌다.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 교수님을 만나서 이야기 할 내용들을 적었다. 쓰면 쓸수록 물어볼 것들이 많아져 A4용지 2장을 빼곡히 채우고도 넘겼다. 즉흥적으로 썼기에 내용들이 알아보기 힘들게 너무 중구난방이라 다시 찬찬히 읽어보면서 순서도 수정하고 말도 다듬었다.

 작성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어떤 증상이 나타날 때 조심하고 병원에 찾아가야 하는가


사실 지금까지 이렇다 특이할 만하다고 느낄 증상이 길게 지속되거나 반복되는 일은 없었습니다. 다만 이런 평화로움이


① 모든 것이 순조롭게 이루어지기 때문

② 회광반조처럼 심각한 악화를 앞두고 잠시 멈추어 있는 것

③ 변화가 있음에도 스스로의 변화에 둔감하여 모르는 것


세 가지 중 무엇으로 보아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아불안한 감정이 이따금씩 마음을 휘젓고는 합니다.


병소가 다른 곳이 아닌 ‘뇌’라고 생각하다보니 조금의 변화가 큰 후폭풍을 일으킬 수 있다는 생각에 건강했었더라면 별 느낌도 없었을 사소한 것들도 혹시 문제 생긴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 점을 염두에 두고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순간적인 힘 빠짐

근육에 힘을 주어 움직이다가 순간적으로 휘청 or 덜커덩 하는 느낌을 두어 번 받았습니다.

길항근(antagonistic muscle)이 순간적으로 힘이 빠진 것처럼 도달하고자 하는 곳을 넘어서는 운동을 보였습니다.

휴대폰을 주우려고 오른 팔을 뻗었을 때 한 번, 집에서 실내자전거를 돌릴 때 오른 다리에서 한 번 일시적으로 나타났으며 지속되지는 않았습니다.


2. 일시적인 어지러움

중력에 거스르는 급격한 자세 변화에서 일시적인 어지러움을 느끼고는 합니다. 눈이 아찔해지면서 몸이 가라앉는 듯한 느낌을 1초 정도 받습니다. (그 순간이 길게 느껴지긴 하지만...)

일어서 있다가 앉기, 앉아 있다가 눕기 등의 반대방향으로의 급격한 자세 변화에는 어지러움은 없었습니다.


3. 잠이 많이 늘었음

병원에 있을 때보다 마음이 편해져서 일까요? 낮잠도 많이 자고 밤에도 자는 시간이 늘었습니다.

잠을 많이 자는 것이 회복을 위한 몸의 노력인지 아니면 악화된 몸 상태로 인해 나타난 증상인지 궁금합니다.


4. 입에서 느껴지는 화학약품 냄새

수술 이전 3개월 전부터, 입에서 느껴지는 화학약품 냄새와 어지러움, 오른 다리의 경련이 동시에 찾아오는 증상이 삽화적으로 존재했다고 이야기 한 적이 있습니다.

수술 이후에 비슷한 증상이 2번 정도 겪었지만 오른 다리의 경련은 없었다고 그 당시 말씀드렸고 교수님은 케프라 정을 500mg에서 750mg 으로 증량했습니다.

처치를 보았을 때, 교수님께서 이 증상을 Partial Seizure으로 판단하셨다고 짐작합니다.


집에서 생활한 이후로 2번 비슷한 증상이 나타났습니다. 다만 이때는 입에서 독특한 냄새가 나면서 침이 많이 분비되었고 반면에 어지럼증이나 오른 다리의 경련은 없었습니다. 독특한 냄새도 수술 전후의 그것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참고로 저는 퇴원 후 매일매일 30분 씩 4번 정도 실내 자전거를 돌리고 있습니다. 증상은 아침식사 후 30분 정도 운동했을 때, 저녁식사를 6시에 한 후 다음 날 8시에 동생이 등교 준비하면서 짜증내는 소리에 잠에서 깨서 스트레스 받던 도중 발생했습니다.


격렬한 운동 중이거나 장시간 공복상태에서의 스트레스 상황이었고, 아세톤으로 추정되는 냄새 등등 케톤증이 아닐까 의심하며, (정확히는 케톤증이기를 바라면서) 그 후로 원활한 당 공급에 신경 쓰고, 물을 많이 섭취하여 케톤 배설이 잘 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 후 다행히도 비슷한 증상 한 번 없었습니다.





#2 어느 정도까지의 행동이 허용되는가의 문제


성상세포종은 굉장히 성장이 빠르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중도에 여러 문제로 인해 치료 중단되는 상황이 발생하면 굉장히 곤란하지 않을까 싶어 조심하고 또 조심하고 있습니다.

병에 걸린 노인 분 정도의 면역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여 방사선 치료를 위해 병원에 택시를 타고 오며가며 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바깥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5. 바깥 외출의 허용 정도

하지만 집에서만 오래 지내고 있다 보니 아무래도 마음 상태가 많이 가라앉게 됩니다. 그래서 산책을 나간다거나 사람을 만난다거나 하는 식으로 밖을 나가볼까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혹시나 감기에 걸려 방사선 치료 및 화학 요법이 모두 중단되는 상태가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되어 날씨가 좀 더 따뜻해지면 나가든지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그 마음을 접고는 합니다.


저의 면역 상태가 어느 정도이고, 어느 정도 수준까지는 외출이 가능한지 알고 싶습니다.

ex)
공원에 산책 나가기
집 앞 까페나 식당에서 지인과의 식사나 이야기
야구장에서 야구 응원하기
영화관에서 영화보기 (어두운 곳에서의 photic stimuli 문제도 신경 써야 할까요?)


photic stimuli : 광 자극, 지나친 광 자극은 seizure를 일으킬 수 있다고 보고 됨.


6. 흥분을 비롯한 혈압 상승을 일으킬 수 있는 행동 문제

종양 때문에 원래 있던 뇌혈관도 굵어졌고 신생혈관도 많이 생겼다고 수술 전 부모님께 설명해드렸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혈관조영술 당시, 시술하시던 교수님도 언뜻 그런 뉘앙스를 비쳤던 것도 살짝 기억이 날 듯 말 듯 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수술 후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뇌혈관 상태가 그리 안정적이지 못하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대변을 눌 때도 복압을 높이는 행동은 자제하고 있으며 무거운 물건을 용쓰면서 들거나, 분노가 끓어오르는 상황은 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까지 조심해야 되는지, 어느 정도는 허용되는지 알고 싶습니다.

ex)
근력 운동을 위한 무게 부하
키스나 및 스킨십 같은 성적인 자극
분노 및 스트레스 받는 상황에서의 표출 가능한 범위


7. 그 외

사실 아무것도 드러난 증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무언가가 나타날 것 같은 예감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아직 역치 값에 도달하지 않아 확 드러나지 않아 느끼지 못할 뿐 물밑에서 어떤 것들이 작용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저를 괴롭히고는 합니다.





77 면담Ⅱ 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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