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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남 Dec 19. 2016

[소설] 내려놓음 85 외출Ⅲ

20대 한의사, 암에 걸리다.



85 외출Ⅲ




 어머니와 아버지는 나란히 안마의자에 누워계셨다. 지소에는 수 치료기, 유산소 운동기를 비롯하여 손 안마기, 발 안마기에 전신 안마의자도 2개나 있어 치료를 기다리는 환자들이 대기 시간을 불평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치료가 다 끝나도 안마의자의 마력(魔力)에 푹 빠져 한참을 쉬다 가기도 했다. 오전에는 그렇게 환자분들의 차지였으나 오후에는 여사님과 승현이 형, 그리고 나의 것이었다. 여사님은 점심 식사가 끝나면 곧바로 지소로 돌아와 점심시간이 끝날 때까지 안마의자에 누워 이불을 덮고 곧잘 주무시곤 했고, 승현이 형과 나는 거기에 앉아 폰 게임이나 책을 보며 여유를 즐겼다.


 두 분이 앉은 안마의자 바로 옆에 있는 수 치료기에 누웠다. 수 치료기는 물침대처럼 생겨, 기기에 누워있으면 아래에서 높은 수압의 물줄기가 나와 목이나 허리 주위를 자극해주는 기계이다. 벨트 버클 같이 날카로운 것에 찢길 수 있으므로 의심되는 것들은 모두 제거한 뒤 누워서 스위치를 켜면 물줄기가 목덜미에서 엉치까지 내려오면서 안마해주는데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 딱히 피로랄 게 쌓일 것이 없는 생활을 했지만 거기에 누워있으면 없는 피로마저 없어져버렸다.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이제 일어나자.
조금만 더 있다가자. 이 의자 엄청 시원해.


 주중 내도록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다 온 어머니. 들어가도 되는지 걱정하던 어머니가 안마의자의 힘에 매료되어 내려오지를 못하셨다.

 ‘월급만 받았어도 하나 해드릴 텐데. 나 때문에 이번에 참 많이 힘들었는데 해드린 게 하나도 없네. 곧 어버이날도 다가오니까 퇴직금 받아서 이거 사드릴까?’


 나오면서 뒷정리를 깔끔하게 하고 고희 책상에다가 지소 열쇠를 놔두고 나왔다. 며칠 전 지소 열쇠를 돌려달라고 김 여사님께서 부탁하셨기 때문이다. 문제는 나에게 지소 열쇠가 2개 있었다는 것. 처음에 받은 열쇠가 잘 열리지 않아 복사해두었던 것이 하나 더 있었다.



동완 : 고희야. 니 책상에 지소 열쇠 하나 두고 갈게. 여사님이 돌려달라고 하셨거든. 나중에 여사님께 대구에서 만났다거나 그렇게 둘러대서 전달해주라.

고희 : 그거야 문제없지. 그런데 어떻게 문 잠그고 나가려고?

동완 : 사실 나 하나 더 있거든. 근데 부적처럼이라도 간직하고 싶어서. 좀 그러려나? 가끔씩 주말에 지소 비어있을 때 몰래 놀러 오고 싶어서. 민폐지?

고희 : 아니야. 괜찮아.

동완 : 귀찮게 해서 미안하다. 


 지소에서 나와 갈비탕집으로 갔다. 운수지소 근처에는 맛집이 많았다. 능이갈비찜이 맛있는 백우식육식당, 청국장 정식이 일품인 오복식당, 오리전문점이지만 수제비가 더 맛있는 개미식당, 특이하게 옛날 통닭도 같이 팔았던 중국음식점 봉황반점, 면사무소 회식 때 자주 갔던 오리마을 등등. 물에 사는 놈을 좋아하지 않아 거의 가지 않은 횟집 말고는 가는 곳마다 맛있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일품은 갈비탕집. 승현이 형과 나는 술 진탕 마신 다음날에는 갈비탕집에서 항상 해장했다.


 시골의 토요일인데도 넓은 갈비탕집에는 사람들로 바글거렸다. 갈비탕 3개를 시켜놓고 가장 구석진 곳에 자리 잡았다. 짧은 머리카락이 괜스레 찔리는 탓이다. 서빙 하는 아주머니는 예의 그때처럼 신경질적이었다. 정(情)이 뚝뚝 묻어나와 찾게 된다는 욕쟁이 할머니와는 궤를 달리하는 순도 100%의 불친절함이다. 그 때문에 다시는 안 와야지 늘 다짐하지만 그 맛 때문에 굴욕적으로 다시 찾았다. 지금처럼.

 어머니가 물으셨다.


저 아주머니 항상 저러시니?
응. 항상 아저씨랑 싸운 것처럼 저러신다?
별로 다시 오고 싶지 않다. 맛도 없는 거 아냐?
나는 맛있었어. 근데 엄마 입맛에 맞을지는 모르겠다. 나는 조미료 막 들어간 거 좋아하는데 엄마는 아니자나.


 아버지도 한 마디 거드셨다.


시골이라서 그런가보다. 시골에 이렇게 사람 많은 식당은 처음 본다. 장사 잘 되네.
이 사람들 대구에서 식당하면 어떨까?
임대료 비싸서 될까?


 갈비탕이 나왔다. 그리웠던 맛. 다행히 어머니와 아버지도 맛있어 하셨다. 속이 금방 더부룩해지기도 하고, 다이어트 한다는 명목 하에 평소 밥을 조금만 먹었지만, 이날 갈비탕만큼은 다 먹었다. 운수에서 먹는 갈비탕. 부모님에게 손 벌리기 자존심 상해 대신 전당포에 커플링 맡기던 그날처럼 차마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나에게 식당 아주머니는 말했다.


사람들 많으니까 다 먹었으면 얼른 비켜요.
아직 우리 아들이 덜 먹었어요.
일단 계산부터 해요. 바쁘니까
아니다. 엄마. 다 먹었다.
저기, 4인분 따로 포장해주실 수 있나요?


 똥 씹은 표정을 한 아주머니는 아무 말 없이 카드를 가져가서 계산을 하고는 냉장고에서 갈비탕 몇 개를 꺼내 비닐에 담아주었다. 순간 욱해서 더 사지마라고 어머니께 이야기하려다 집에서 조금이라도 더 고향을 추억하고 싶은 마음에 말을 삼켰다.




86 외출Ⅳ 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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