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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남 Dec 19. 2016

[소설] 내려놓음 86 외출Ⅳ

20대 한의사, 암에 걸리다.



86 외출Ⅳ




 금요일, 토요일 연달아 한 외출이 몸에 부담이 되었을까? 일요일에 되자 몸살기운이 슬슬 돌았다. 방사선 치료 기간에 감염이 발생하면 위험하므로 열이 높으면 응급실을 통해 입원하라는 티칭이 있었던 만큼 일정 시간 간격을 두고 항상 체온을 체크하고 있었다. 그때마다 매번 37℃를 살짝 웃돌아 부모님이 걱정했었는데 이번에는 ‘38.2℃’였다. 덜컥 겁이 났다.

 ‘에이 아니겠지. 조금 있다가 다시 측정해보자.’


 아침식사를 하고 샤워도 했다. 샤워하면 혹시 체온이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헛된 기대를 품고. 그러나 다시 측정했을 때는 ‘37.9℃’였고 심지어 귀가 먹먹한 느낌까지 생겼다. 빨대 안에 찐득한 잼 같은 것이 들어있어 붙었다 떨어졌다하는 불쾌한 소음이 들려왔다. 방사선 종양학과 선생님이 말씀하셨던 방사선 치료의 부작용이 생각났다.


 “…… 위해서 방사선을 쏘면 왼쪽 귀를 지나칠 수밖에 없거든요. 방사선이 지난 부위에는 상처가 생기고 그러다보면 염증도 발생하고 그래서 만성 중이염이 자주 옵니다. 그러면 귀에 물이 차거나 멍멍한 느낌을 받을 수 있어요.”


 ‘그럼 이거는 중이염 증상인가? 중이강(中耳腔)에 고름이 찼나보네. 그래서 유스타키오관에 고름이 붙어서 찐득찐득한 소리가 나는 가보다. 그러면 염증이 생겼다고 봐야겠지? 그러면 방사선 치료 할 수 있나? 중단되면 어떡하지? 성상세포종은 특히 진행이 빠르다던데. 퇴원할 때 열이 심하면 응급실로 입원하고 했는데 그렇게 해야 하나. 아, 입원하기 싫은데...’


 그냥 집에 박혀있을 걸 괜히 용기내서 외출 나갔다가, 도로 병원에 입원하게 될 상황에 놓이자 시쳇말로 멘탈붕괴 상태가 되었다. 체온계의 오차임이 분명하다며 몇 번을 측정해보았으나 체온은 38℃ 근방을 유지했다. 승현이 형에게 전화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고민하다 결국 주치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동완 : 37.9℃ 면 응급실 통해서 입원해야 할까요? 방사선종양학과 선생님이 방사선 치료 부작용으로 중이염 올 수 있다고 했는데 왠지 중이염 느낌 같아요. 막힌 좁은 관이 막혔다가 뚫리는 느낌이랄까? 이관(耳管)에 고름이 살짝 낀 것 같은 자각 증상이 있어요. 혹시 염증이 있어서 방사선 치료를 중단해야 하나 싶어서 걱정돼서 메시지를 보내보아요.

동완 : 한 시간이 지난 지금은 37.8℃. 해열제는 안 먹었어요. 혹시 지금 먹는 약이랑 상충될까봐 걱정도 되고. 참 2인실에는 자리 비었나요? 입원하더라도 2인실에 하고 싶은데.

진현 : 오늘 오프라서 밖에 나와 있어서 2인실이 지금 비어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동완 : 오프인데 괴롭혔네요.

진현 : 아니에요. 괴롭히시다니요.

동완 : 내 친구들 인턴, 레지던트 수두룩한데 솔직해도 좋아요. 의사 대 환자이기보다 그냥 친구이고 싶음. 혹시 신경외과 병동 간호사실 전화번호 알려줄 수 있나요?

진현 : 053-605-0564입니다.

동완 : 고마워요. 미안해서 커피 하나 보냅니다. 맛있게 드세요.

진현 : 이런 선물 안주셔도 됩니다! 그냥 편하게 생각하세요!

동완 : 네~ 그럼 쉬세요.



 바로 간호사실에 전화를 걸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물었다. 그러자 잠시 알아보겠다며 간호사는 전화를 끊었고, 계속 체온을 측정하면서 38.5℃가 한 번이라도 넘으면 병원으로 찾아오고 3시간 뒤에도 38℃ 근방이 위협되면 다시 연락하라고 전화 주었다. 2인실이 혹시 비어있는지, 예약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물어보았지만 규정상 알아봐줄 수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왜 맨날 교수님이 출근 안 하는 주말에만 아픈 거야.’


 다행히 체온은 조금씩 내려가 37.5℃ 부근을 맴돌았고 월요일을 맞이했다. 평소보다 조금 일찍 집을 나섰다. 그리고 방사선 종양학과(RO)에 가자마자 간호사에게 어제 있었던 일을 자초지종 설명하고 목요일에 있을 면담을 오늘로 당길 수 없는지 문의했다. 면담은 곧 성사되었다. 선생님을 만났다.


무슨 일이에요? 무척 다급해 했다고 하던데?
어제 열이 좀 났어요. 38℃를 살짝 넘겼는데, 저번에 퇴원할 때 말고 잠시 외출 나갔을 때 PA 간호사 쌤이 체온 38℃ 넘으면 응급실로 내원하라고 이야기 했었거든요. 그리고 친한 신경과 형은 감염되면 방사선 치료 중단된다고 이야기도 해준 적 있고. 그래서 혹시 염증 생겼는데 방사선 치료 진행했다가 큰일 나는 것은 아닌가 싶어서 면담 부탁드렸어요.
지금도 체온 높나요?
아뇨. 어제 저녁에는 37.5까지 내려왔고 지금도 그 근처에요.
그럼 그 정도는 괜찮아요.


게다가 지금도 귀에 가끔씩 ‘쩍쩍’ 하는 소리가 들리는데 이관(耳管)에 고름이 살짝 찬 듯한 기분이 들어요. 안 그래도 교수님이 저번에 중이염 걸릴 수도 있다고 이야기 한 것도 마음에 걸리네요. 중이염 때문에 혹시 방사선 치료 못하나 싶어서요.
아, 그거는 일반적인 염증이기보다는 방사선이 세포를 지나가면서 세포를 터뜨리면서 생긴 물이 고막 안에 살짝 고인 것이라고 생각하면 되어요. 염증이라고 해봤자 세포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고, 만약에 감염 때문이라면 열이 38℃보다는 훨씬 높죠. 방사선 치료는 크게 걱정하지 않고 진행해도 되겠습니다.


 RO 선생님은 평소와는 달리 의자를 앞으로 빼서 눈을 마주하고 허벅지를 토닥토닥 해주시며 말씀하셨다. 예의 부드러운 말투와 Touch는 불안에 떠는 나의 마음을 그야말로 Touch했다. 기쁜 마음으로 진료실 밖을 나온 나에게 아버지는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물었다. 선생님과 나의 대화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어제의 걱정이 별 일이 아니었음을 다시 설명해드렸다.


 ‘내가 만약 일반인이었다면 어땠을까? 이런 사소한 문제를 발견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갔을까? 아니면 발견하고 불안해하며 알아듣기 힘든 설명에 답답해하고 있었을까?’




87 외출Ⅴ 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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