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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남 Dec 20. 2016

[소설] 내려놓음 87 외출Ⅴ

20대 한의사, 암에 걸리다.



87 외출Ⅴ




 별거 아닌 증상 몇 가지와 제한된 지식을 가지고 이리저리 조합해보며 걱정하는 나를 두고 몇몇은 ‘모르는 게 약이라고, 너는 반만 알아서 사서 고생이야.’ 라 말하며 타박했다.


 과연 그럴까?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은 시대라면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처럼 미디어가 발달하고 정보 교류가 활발한 세상에서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어느 누구라도 치료 중 적어도 한 번은 포털 사이트에서 자신의 병명을 검색해볼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게 검색했을 때 쏟아져 나온 수많은 정보를 외면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필시 광고와 논문, 국립 암센터 등지에서 긁어모은 알아듣기 힘든 전문정보 속에서 한참을 헤매리라. 그 결과 머리에 남은 것이라고는 수치 몇 개와 자극적인 말들 뿐. 수치를 읽을 수는 있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와 뉘앙스를 파악할 길이 없어, 청신호인지 적신호인지도 모른 채 더 불안하고 더 걱정하고 더 힘들어할 것이다. 따라서 1/10만 아는 것보다는 1/2이라도 아는 것이 낫다. 불확실성이 주는 상상의 여유는 대개 부정적인 결말로 흘러나가니까.

 그래서 타박하는 사람에게 나는 이렇게 말했다. 아는 게 힘이고 반이라도 알아서 다행이라고.


 오후에는 시야 검사가 예약되어 있어 잡에 갔다가 다시 병원으로 돌아왔다. 얼마 전에 완공한 암센터 2층에 자리한 안과. 또 한참을 기다려야 해서 지루하던 그 때, 명아 누나에게서 연락이 왔다.



명아 : 찐똥, 치료 잘 받고 있어?

동완 : 멀쩡하게 잘 지내지. 어제는 좀 심란했지만.

명아 : 무슨 일 있었어?

동완 : 중이염 느낌과 함께 38도라는 애매모호한 열이 있었지. PA 간호사는 염증 있으면 치료 중단해야 한다고 지나가면서 이야기하고, RO선생님은 방사선 치료 부작용으로 중이염 올 수 있다고 했고, 신경과 형은 성상세포종 성장 겁나 빠르니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하고. 그 모든 게 뒤범벅되어서 공포와 불안에 시달렸어.

명아 : 으...

동완 : 그래서 신경과 형에게 전화하고 주치의는 오프인데도 막 카톡 보내고, 신경외과 병동 간호사실 전화번호 알아내서 막 전화하고 난리도 아니었어. 살려고 지푸라기 겁나 모았더니 뗏목 만들어져서그때서야 대충 편안하게 잤다.

명아 : 머라고 전화했어? 열나는데 어뜩하냐고?

동완 : 몇 도가 마지노선이냐?지금 응급실 통해 입원할까 말까?2인실 비었나? 그런 것들

명아 : 네 두려움이 느껴져서 마음이 짠하다.


동완 : 그래서 자고 난 다음에 일찍 병원에 와서 면담 했어. 환자 심정 절절히 느껴지나 ?요즘 TV보면 짜증나게 뇌종양 환자 겁나 많이 나와.《결혼계약》에서 유이는 뇌종양 시한부 환자《가화만사성》에서는 서브남주가 신경외과 의사로 나오는데 소아 뇌종양 환자 막 나오고. 케이블이나 종편 cf에서는 맨날 이순재가 ‘뭐요? 내가 암이라고요?’ 이라고 나오지.

명아 : 진짜 환자 입장에서는 콧방귀 나오겠다.

동완 : 나 정도면 상위 1~2%에 드는 암환자일 텐데 그래도 감정 기복도 있고 외롭고 심심하다우.

명아 : 치료과정이 익숙해지길 빈다. 모든 게 겁나고 두려운 마음이 조금 편안해지길 바라.

동완 : 사소한 변화에 겁날 때가 좀 있긴 해. 그래도 항상 겁에 질려 가시를 세우고 있지는 않아. 도리어 너무 외면하고 하루를 살고 있나 싶은 마음이 들 때가 많은데 어제는 특별했어. 불안할 때 이렇게 이야기할 사람이 엄청 필요하더라.


명아 : 특별한 하루였다니 다행이야. 듣는 내내 마음이 짠했다. 늘 이런 상태였으려나 걱정도 되고. 방사선 치료 받으시는 분들 통원하기 싫어서 우리과로 종종 오시는데 더 잘해드려야겠어. 사실 그전까지는 나의 매너리즘을 가속시키는 존재로 생각되었는데 갑자기 남일 같지가 않네.

동완 : 나는 곧 시야 검사 한다. 산동제 집어넣으면 또 초점 못 맞추고 바보가 되겠지.

명아 : 나는 그거 넣고 그 뻑뻑한 느낌을 즐기는데.

동완 : 몇 시간 초점 못 맞추면 서럽지 않아? 오늘 나의 하루는 끝났어.

명아 : 두 시간 정도면 풀리던데? 문자 못하면 괴롭긴 하지.

동완 : 나는 눈물을 많이 흘려서 더 많이 넣나봐. 오래가더라. 아 이제 갈게.

명아 : 다녀와.


 시야검사를 시작했다. 다행히 산동제를 넣지 않았다. 검사방법은 간단하다. 어슴푸레한 조명 아래에서 검사기기에 머리를 고정하고 한쪽 눈을 가리고 앞을 바라본다. 그러면 눈앞에 흰 반구가 놓이게 되고, 그 안에서 더 밝은 빛이 깜빡거리는 것이 보일 때마다 손에 쥐어준 스위치를 누르면 된다. 빛의 크기와 위치, 시간간격도 모두 랜덤이다.

 방법은 간단했지만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았다. 실수를 많이 했다. 뚫어지게 쳐다보느라 눈을 한 번도 감지 않았더니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방해되었고 눈이 너무 피로하여 제대로 검사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래서 두 번이나 다시 시도한 끝에 검사를 완료할 수 있었다. 스위치 누를 때마다 눈을 감으면 낫다는 조언을 들었지만 그 사이에 또 빛이 깜빡 거릴 것만 같은 두려움에 제대로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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