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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남 Dec 20. 2016

[소설] 내려놓음 88 외출Ⅵ

20대 한의사, 암에 걸리다.



88 외출Ⅵ




 ‘아, 걱정한 시나리오 그대로 된 것 같네.’


 수술 이전에 했었던 시야검사 결과는, ‘종양이 시신경을 눌러 1사분면, 즉 우측 상단의의 시야가 좁아졌다.’ 이었다. 그런데 오늘 검사에서도 1사분면에서 깜빡이는 불빛을 많이 발견하지 못한 느낌이 들었다. 심지어 나의 걱정이 검사결과에 영향을 미칠까봐 최대한 배제하려고 했지만 검사하는 내내 마음에 걸려 집중하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 나올 결과마저도 믿지 못할 지경이었다.

 ‘검사받는 사람이 실수를 들입다 해댔는데 결과가 제대로 나오기나 할까...’


 검사가 끝나고 한 시간을 더 기다려 안과 교수님을 만났다.


저번에 수술하시기 전에 검사를 한 번 했던 거 기억나요?
네.
여기 저번 검사 결과랑 비교해보시면, 별로 달라진 게 없죠?
아, 그러네요. 똑같네. 어째 더 심해진 것 같기도?
그건 아니에요. 검사할 때마다 오차도 있고 하니까.
변화가 없다면 mass가 생각보다 많이 안 줄었다는 건가요?
그렇다고 꼭 집어 말할 수는 없어요. 지금까지 종양이 시신경을 누르고 있었잖아요? 그러면서 눌린 자리의 시신경이 죽어버렸고. 지금은 회복기에요. 쉽게 말하면 지금까지 빨대 위에 공이 얹어져있었는데 얼마 전에 치웠어요. 그런데 공이 빠졌다고 해서 바로 빨대가 쌩쌩하게 원상태로 돌아오는 것은 아니거든요.


 교수님은 이런 상황에 익숙한 듯, 책상에서 테니스공과 대롱 하나를 꺼내서 설명했다. 어렴풋이 감 잡았던 내용이 확실하게 이해가 되었다.


아~! 그러면 눌려서 죽어버린 시신경이 다시 회복되는 데 시간이 걸려서 오늘 결과가 이렇게 나왔다고 보면 되는 거예요?
그렇죠.
그러면 ‘mass는 줄어들었지만 아직 회복 중이라 시야가 돌아오지 못 했다.’ 이렇게 받아들이면 되나요?
네. 정확한 진단은, 치료를 더 진행한 다음에 시야검사를 한 번 더 할 거니까 그 결과를 보고 내릴게요. 오늘은 추세를 살핀다는 개념으로 이루어진 검사니까.


 가장 궁금했던 점도 물었다. 치료 초기에 있었던 검은 점 사건에 대해서도 물을까 하다가, 시간도 없고 그 날 이후로 증상이 재현된 적이 한 번도 없어 그냥 넘겼다.


혹시나 싶어서 그런데, 시야 때문에 운전에 제약된다거나 다른 문제가 있다거나 그런 거는 없나요?
지금 문제가 되는 건 주변시야이고, 중심시야는 문제없으니까 괜찮아요. 종양이 발견되기 전에 운전할 때도 별 문제 없었죠?
네, 딱히 무얼 못 봤다거나 그런 적은 없었어요.
지금 환자분이 문제 있는 곳은 오른쪽 윗부분에 살짝 이니까 일상생활에는 큰 지장 없어요. 가령 아래쪽에 시야 장애가 심하신 분들은 바닥 쪽에 있는 장애물을 발견 못해서 넘어지거나 하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 환자분은 위쪽이니까 파리 날아다니는 거 못 보는 정도? 위에서 날아오는 물건이 있으면 발견하기 힘들겠지만 실제로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일은 드무니까요.
정말 다행이네요.
앞으로 주기적으로 시야검사를 할거예요. MRI는 비급여라서 부담될 텐데 시야검사는 종양 크기 변화도 추적할 수 있으면서 보험도 되니까 부담도 적어서 좋거든요.
그렇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안과 교수님도 좋은 분이었다. 지난 날 수술 전에 있었던 시야 검사에 대한 안 좋은 추억 때문에, 나에게 있었던 안과에 대한 부정적인 느낌이 눈 녹듯 사라졌다. 그리고 늘 그렇듯 교수님의 설명을 알아듣지 못한 아버지에게 나의 상태를 설명해주며 집으로 돌아왔다.




89 정체성Ⅰ 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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