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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호 Oct 28. 2017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경기도 광주시

           

나눔의 집에 있는 할머니 동상


여름날 더위를 피하고자 차를 타고 무작정 길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도로는 막히고 갑자기 쏟아지는 비에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짜증이 나면서 빨리 쉬고 싶은 마음에 차가 없는 길로 들어서다 보니 어느새 경기도 광주에 와있었습니다. 오랜 운전으로 지친 저는 시원한 풍경이 있는 전원을 포기하고 현재 있는 광주를 스마트폰으로 검색했습니다.


검색 도중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동안 역사교사로서 나눔의 집과 역사관을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던 것도 부끄러웠고, 아이들에게도 좋은 교육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위안부 역사관으로 차를 돌렸습니다.





할머니들의 묘비


큰 도로에서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이  위치하고 있는 마을로 진입하고도 5분 정도 차로 올라가야 했습니다. 큰 도로에 위안부 기념관을 알려주는 이정표를 보면서 교통성이 편리하고 쾌적한 환경을 내심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위안부 역사관은 접근성이 좋지 않고 규모도 작았습니다.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만큼 모든 것이 잘 갖추어졌겠지 하는 기대감은 실망감과 안타까움으로 되돌아왔습니다.






할머니들이 거처하는 나눔의 집


위안부 역사관을 들어가려면 입장료를 내야 합니다. 저의 경우 입장료가 적당한지 아니면 아까운지 평가하기를 즐겨합니다. 솔직히 입장료 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곳은 둘러보기도 전에 입장료를 먼저 지불해야겠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입장료를 내지 않고 역사관을 둘러봐도 모라고 하실 분들이 없는데도 입장료를 내지 않으면 죄를 짓는 것 같았습니다.


입장료를 내고 역사관에 들어서는 순간 벌거벗은 모습을 하고 있는 할머니 동상과 묘비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동상과 묘비를 보면서 이곳에 계시는 할머니들이 어렵고 힘든 세월을 홀로 이겨내야 했던 수십 년 동안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지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래도 이곳엔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줄 수 있는 언니와 친구 그리고 동생들이 있기에 세상 어느 곳보다 따뜻한 고향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할머니들의 굴곡진 삶과 현재의 모습


역사관으로 가는 담벼락에는 할머니들의 사진과 함께 그분들의 인생을 몇 줄로 요약해놓은 판넬이 걸려있습니다.  이 분들의 삶을 책으로 낸다면 한두 권에 모두 담는다는 것은 어림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굴곡 많은 삶을 몇 줄로 요약해놓은 짧은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읽는 이의 눈망울을 시큰하게 만듭니다. 할머니의 삶 속에서 보이는 일본군의 만행에서 인간이 얼마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지 무섭기만 합니다. 사람이 같은 사람에게 어떻게 저런 만행을 저지를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사진 속의 강일출 할머니는 중국에서 일본군 위안부로 성폭행을 당하다가 장티푸스에 걸리자 일본군들이 불에 태워 죽이려고 했답니다. 다행히 독립군에게 구출되어 귀한 목숨을 건질 수 있었고 6.25 전쟁 중에는 간호사로 전쟁터의 한 복판에서 살아야 했던 세월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모진 세월을 견뎌내며 뭉글어질데로 뭉글어진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그래도 사진 속의 강일출 할머니의 웃는 표정을 보니 저도 행복해졌습니다. 머리 속 한편에선 힘든 세월을 이겨내신 분들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동정심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반성도 해봅니다.


또 한편으로 할머니들이 젊은 세대보다 훨씬 강한 분이라는 것을 새삼 다시 느껴봅니다. 할머니들은 매주 수요일마다 이곳에서 위안부 소녀상이 있는 일본대사관 앞으로 나가 수요집회에 참석하십니다. 젊은 저도 서울에서 광주까지 오고 가는 길이 힘들 정도로 먼 거리임을 고려할 때 우리 할머니들이 얼마나 강인한 분들인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노란 리본이 달려있는 판넬


판넬에 리본이 달려있다는 것은 하늘나라로 올라간 할머니라는 의미입니다. 많은 할머니들이 일본의 사죄도 받지 못하고 먼 곳으로 떠나야 할 때 쉽게 눈을 감지 못하셨을 겁니다. 어쩌면 반대로 할머니들이 모든 것을 다 용서하고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을 두 팔로 따스하게 품어주며 스스로 잘못을 뉘우치도록 기회를 남겨두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할머니들이 하늘나라에서는 아픈 기억을 모두 잊고 행복하기만을 바라봅니다.






김학순 할머니 흉상


일본군 위안부가 세상에 알려지는 데 있어 김학순 할머니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일본이 위안부를 거짓이라며 부정했을 때 김학순 할머니께서 누구보다도 먼저 당신이 위안부 여성이었음을 공개 증언하며 일본의 가증스러운 거짓을 세상에 알렸습니다. 공개 증언을 한 후 국내외에서 수치심도 모른다고 손가락질하는 일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정말 잘못된 일이 무엇인지 알려주었던 김학순 할머니 덕분에 위안부가 세상에 널리 알려지고, 잘못은 바로잡아야 한다는 인식이 만들어져 세상이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 이후 아픈 과거를 꽁꽁 감추어두었던 위안부 할머니들이 용기를 갖고 잇따라 공개 증언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당당하게 일본의 사죄를 요구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셨습니다. 김학순 할머니를 비롯하여 많은 할머니들이 성노예 생활을 해야 했던 과거의 모습을 공개하는 순간까지 끊임없는 고민을 해야 했을 것입니다. '우리 가족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우리 자식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까?' 이러한 걱정 속에서도 미래에는 이런 일들이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신념을 가지고 세상에 진실을 밝히셨습니다. 할머니들의 용기 있는 모습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진정한 용기와 희망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있습니다.







할머니들의 흉상


위안부 기념관 중앙에는 이렇게 할머니들의 흉상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자자손손 할머니들을 생각하며 끊임없는 자기반성과 함께 도덕적으로 성숙한 모습을 갖추기 위한 노력을 기울어야 할 것입니다. 과거로부터 교훈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한다면 할머니들이 삼십 년 가까이 알리고자 노력한 숭고한 뜻을 저버리는 어리석은 사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우리들이 앞으로 겪어야 할 아픔과 고통이 무엇인지 역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할머니들이 아픔을 표현한 조형물


역사관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걸려있는 작품은 할머니들을 잘 표현해 놓고 있었습니다. 일제의 무자비한 총칼이 온몸에 상처를 입히는 것도 모자라 지금까지 할머니들을 옴짝 달짝하지 못하게 고통을 주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상처가 아물어야 하는데 일본의 반성하지 못한 채 적반하장식으로 할머니들을 비하하는 말과 행동은 다시 날카로운 총칼이 되어 할머니들에게 지금도 상처를 내며 괴롭히고 있습니다.


할머니들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픔을 당했지만 큰 소리로 소리 내어 울 수도 없습니다. 오로지 혼자서 고통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남들 모르게 조용히 눈물을 흘려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마냥 울고만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일제만행에 굴하지 않고 잘못을 바로 잡아서 다시는 이와 같은 아픈 일들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세상을 바꾸겠다는 굳은 의지를 작품에서 엿볼 수 있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을 방문하면서 두 그룹을 만났습니다. 한 그룹은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이들로 지도교사와 역사관을 둘러본 후 토론을 하고 있었습니다.  또 다른 그룹은 일본인들로 가이드에게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습니다. 이들을 보면서 우리나라의 밝은 미래와 한일 간의 올바른 관계 정립에 희망을 품을 수 있었습니다.





김학순 할머니 어록


역사관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김학순 할머니의 어록이 적혀있습니다. 김학순 할머니의 말씀처럼 일본군 위안부라는 이름으로 성노예의 삶을 살아야 했던 일은 역사에 기록해두어야 할 것입니다. 역사에 남겨두라는 것은 일제의 만행을 기록하고 영원히 일본을 미워하고 저주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인류가 지구에 존재하는 한 세상 어디에도 일제가 저질렀던 반인륜적인 만행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역사에 기록으로 남기자는 말입니다. 그리고 잘못을 했으면 진심 어린 사과를 할 수 있는 성숙함을 가지라는 이야기입니다.






위안부란 용어의 문제점


우리는 보통 위안부라는 말을 사용해왔습니다. 역사관을 통해 '위안부'가 할머니들의 삶을 왜곡시키는 용어로, 할머니들에게 또 다른 상처를 주는 어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라는 용어를 있는 그대로 해석하면 '일본군에게 위안을 주는 여인'이 됩니다. 강제로 끌려가 성폭행을 당하던 분들에게 위안부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얼마나 잔인한 일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위안부를 대체할 수 있는 말이 없다는 것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유엔에서 '성노예', '성폭력 피해자'로 표현하지만 일제강점기 시대에 일어났던 상황을 표현하기에는 범위가 너무 넓어 적당하지 않습니다. 수업시간에 위안부를 대체할 수 있는 용어를 찾아보는 토의 수업을 했는데 대체할 수 있는 적당한 용어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기나긴 토의 결과 '위안부'라는 말이 과거에만 존재하는 역사적 용어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의견만이 남았습니다.





할머니들이 그린 작품


역사관에는 할머니들이 그리신 작품이 전시되어있습니다. 할머니들의 그림을 보면 위안부에 대한 어떠한 설명보다도 가장 쉽게 이해되고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작품 속에는 할머니들의 마음이 투영되어있었기 때문입니다.


위 그림은 저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이었습니다. 일본군들이 우리 할머니들의 청춘을 짓밟으면서 수치감과 함께 씻지 못할 고통을 새겨놓았습니다. 일본군의 만행은 할머니들의 가슴 깊은 곳까지 나무뿌리처럼 파고들어 오늘날까지도 할머니들이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로 괴롭힘을 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청춘의 꽃이 제대로 피지도 못한 채 땅으로 어진 자리에는 할머니들이 살아오는 동안 수십, 수백 번이나 죽어야 했던 당신들과 친구들의 유골이 나뒹굴고 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가 있던 장소를 나타낸 지도


지도에서 위안부가 설치되었던 장소를 보면서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고향에서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행복하게 지내던 어린 소녀들을 저 멀리 이름도 들어보지도 못한 타지로 끌고 가 괴롭혔구나. 저 많은 지역에 위안소를 설치했으니 얼마나 많은 소녀들이 잡혀갔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도 위안부로 끌려간 여성들의 숫자는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정황상 추정되는 숫자만 8~20만 명에 달하고 있습니다.


아시아 전역에 수많은 위안부를 설치하고 여러 민족의 여성을 강제로 잡아와 성폭행을 하고 괴롭혔던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니다.  위안부 문제는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가 같이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그리고 또다시 이와 같은 일들이 벌어지지 않도록 우리와 전 세계가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이기도 합니다.





위안소를 재현해놓은 공간


역사관에는 당시 위안부 여성들이 생활해야 했던 좁은 공간이 재현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좁은 공간에서 하루 종일 폭행을 당하며 수년간을 버텨내는 것이 과연 가능한 것인지 눈으로 보면서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하루에 수십 명의 군인들에게 성폭행을 당해야 했던 이곳에는 할머니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엽서들이 놓여있습니다.

역사관을 둘러볼수록 할머니들이 우리 옆에 계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기만 합니다. 그리고 할머니들의 아픔을 모르고, 알고 나서도 외면하던 나의 모습이 죄송스럽기만 합니다.





위안부가 실제 있었던 사실임을 생생하게 증명하는 사진들


역사관 벽으로 위안부 생활을 알려주는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할머니들이 잊고 싶은 과거의 흔적들로 역사교과서에도 실려있는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사진들입니다. 그러나, 자주 보던 사진이라고 흘려보내서는 안 되는 귀중한 사진입니다. 사진 속에 많은 이야기들을 담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 사진을 통해 할머니들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 공유하며 잊지 않는다면 잘못된 역사를 우리는 바로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할머니들


우리 할머니들의 바람이 꼭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할머니가 원하는 것은 단순 명료합니다. 물질적인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단지 일본이 위안부로 어린 소녀들을 강제로 끌고 가 잊지 못할 상처를 준 사실을 인정하고 진심 어린 사과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는 이러한 일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역사교과서에 기록하고 아이들에게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인정하고 사과하고 기록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요?


박근혜 전 대통령 때 위안부 합의가 이루어졌습니다. 알량한 돈 몇 푼을 가지고 자신들의 만행을 입막음하려는 일본은 여전히 할머니들이 돈을 벌기 위해 자발적으로 위안부가 된 매춘부로 여기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일본의 요구를 흔쾌히 받아들인 박근혜 정부로 지금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위안부 합의는 정부와 일본이 할머니들을 또다시 죽인 만행임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할머니들이 울부짖으며 외교부 장관을 꾸짖는 영상은 내보내지 않고, 소리치다 지쳐 소파에 앉은 할머니의 모습을 마치 위안부 합의에 동의하는 듯한 모습으로 악마의 편집을 해서 방영한 언론도 할머니들을 모욕하는데 일조했습니다. 할머니와 국민이 잘못된 것이며 위안부 합의는 있을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데 도대체 누가 무슨 권리로 용서를 이야기하는 것인지 답답하기만 합니다.






강덕경 할머니 추모비


이런 일련의 사태를 하늘에서 지켜보고 있을 강덕경 할머니의 눈이 너무 슬퍼 보입니다.

저는 믿습니다. 일본이 진심으로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여 사죄했을 때 강덕경 할머니의 눈은 지금처럼 슬프게 보이지 않고 인자하게 웃는 모습으로 변화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우리의 밝은 미래


일본의 사과를 받아내려면 우리의 국력이 일본을 넘어설 수 있을 정도로 강해져야 합니다. 일본에게 있어서 대한민국이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국가로 성장하는 순간 일본은 오만함을 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을 정복해야 하는 대상으로 여기는 정한론이 무너졌을 때 자신들의 과오를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일본을 비난하고 헐뜯어 분풀이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보다 성숙한 자세로 삐뚤어진 일본을 품에 안고 올바른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저는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촛불집회와 같이 잘못된 것을 평화로운 방법으로 바로잡을 수 있는 역량을 우리는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닌 4.19 의거, 6월 민주항쟁 등 여러 번의 성공을 해본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엽서에 적혀있는 초등학생의 글에서 우리의 밝은 미래를 읽을 수 있습니다. 수업시간에 해결해야 할 진행형인 위안부가 아니라 마무리가 잘된 과거형의 위안부를 가르치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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