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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호 Jan 26. 2018

구로구의 이미지를 바꾼 항동 철길과 푸른 수목원

                     

푸른 수목원 야외 테라스

서울에 살면서 많이 바뀐 부분을 찾는다면 깨끗해진 도시경관과 늘어난 녹지공간입니다. 과거 서울은 난잡하게 세워진 건물들 사이로 복잡하게 얽힌 도로들로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동네에도 기차가 다니던 철도가 가로질러 있었고, 골목골목마다 어린아이들은 숨바꼭질과 다방구를 하며 신나게 뛰어다녔습니다. 좁은 골목길에는 숨을 장소도 많았지만, 차량이 다닐 수 없는 좁은 골목이어서 지금보다 안전하게 뛰어놀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 동네는 늘 시끌벅적하고 다양한 일들이 벌어지면서 사람 사는 내음이 향기롭게 퍼져나갔습니다.


현재 서울은 꼬불꼬불한 골목길이 사라지고 넓고 반듯한 모습의 도시경관을 갖추면서 사람들이 소통할 수 있는 장소도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제는 사람이 그리우면 거리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모임을 찾아 건물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대문 밖에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하루를 보냈던 시절을 그리워하며 과거의 모습을 찾아 여행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푸른 수목원 너머로 보이는 유한대학교

우리는 과거의 향수를 찾아 옛 모습을 간직한 지방도시로 여행을 갑니다. 그 속에서 사람들이 부대껴 살아가는 생동감을 느끼며, 잠시라도 그들과 하나가 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멀리 여행을 떠나지 않아도 철길을 따라 걸으며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구로구에 위치한 항동 철길과 푸른 수목원입니다. 


우연히 인터넷을 통해 본 항동 철길은 너무나 아름답고, 과거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습니다. 겨울이 오기 전에 항동 철길을 걸어보고 싶은 마음에 쌀쌀한 바람이 부는 11월 해질 무렵 가족들과 방문했습니다.





푸른 수목원 내 갖추어진 생태습지와 나무다리

푸른 수목원에 도착하는 순간 주차장 바닥이 벽돌로 만들어져 있어 인상적이었습니다. 도심 속 아스팔트 위에 노란선으로 그어진 주차장이 아니라 벽돌 틈새로 자라고 있는 풀들 사이에 주차를 하면서 서울이 맞는지 주위를 둘러봐야 했습니다. 분명 제게 익숙한 도로에서 10여분 다른 길로 달려왔는데 말입니다.


푸른 수목원에 들어서자 어린아이들이 뛰어다니며 가족단위로 한가로이 걸어 다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푸른 수목원에는 북카페가 있어 아이들이 푸른 잔디밭에서 뛰어놀다 지치면 책을 읽힐 수가 있어, 아이들과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부모들의 걱정을 크게 덜어줄 수 있습니다. 푸른 수목원은 규모에 비해 간단한 음료와 샌드위치를 파는 매장이 정문 한 곳만 있습니다. 매점 내 음식 가격이 비싸지는 않지만, 간단한 도시락을 준비하여 수목원 내 잔디밭에서  먹는 것도 좋을 듯싶습니다. 하지만 수목원 내에 쓰레기통이 없으니 집으로 쓰레기를 담아갈 수 있는 봉투를 필히 준비해야 합니다.




동식물들이 공존하는 푸른 수목원 습지

가족들과 습지를 걷다가 왜가리인 것 같은 새를 가까이서 보게 되었습니다. 딸이 무슨 새냐고 물어보는데 알지 못하다 보니, 주위 사람이 들을 수 없는 작은 소리로 "왜가리인 것 같은데"라고 대답했습니다. 우리 가족 옆에 있던 아이도 궁금했는지 할머니에게 새 이름을 물어보자, 할머니가 두루미라고 대답을 자신 있게 하셨습니다.


제가 틀린 대답을 한 줄 알고 딸아이에게 "왜가리가 아닌가 봐"라고 말하려는 순간 주변에 있던 아저씨"두루미는 아닌 것 같은데..."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아저씨 아내 되시는 분이 "그럼 뭐냐?" 다시 되묻자 아저씨도 작은 소리로 "잘 몰라.. 근데 두루미는 확실히 아닌 것 같아."


새 한 마리로 여러 가족들이 대화를 나누며 행복하게 웃을 수 있는 시간이 만들어졌습니다. 물론 부모들은 정답을 알지 못해 난처했지만 말입니다. 동물을 좋아하는 작은 딸은 새 옆에서 떨어지지 않고 계속 관찰하고 있어서, 저도 하염없이 새를 바라봤습니다. 그러던 중 새가 목을 길게 내밀고 멈추는 동작을 여러 번 하더니 순식간에 물을 향해 목을 뻗어 물고기를 아챘습니다. 너무나 급작스러운 행동에 주변에 있던 모든 아이들과 어른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습니다.







수목원 곳곳에 걸어놓은 시

물고기 사냥을 끝낸 새가 날아간 후 가족들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사진도 촬영하며 수목원을 걸었습니다. 수목원은 시를 읽으며 천천히 걸을 수 있도록 배려를 해놓고 있었습니다. 시를 보자 아이들에게 시 읽는 아빠의 멋진 모습을 보여주려고 잠시 멈추었습니다. 고상한 척 시를 읽다 보니 시문구가 좋아서, 어느새 진지모드로 시를 읽고 있었습니다. 평소에 시를 읽지 않지만, 수목원에서 본 시는 가을에 잘 어울렸습니다. 시를 다 읽고 주변을 살펴보니 가족들은 이미 저 멀리서 장난치며 이동하고 있었습니다.



수목원에서 빠져나와 마주하게 된 항동 철길

푸른 수목원 온실에서 조금만 위로 올라가면 항동 철길로 이어지는 작은 문이 나옵니다. 작은 문을 통해 푸른 수목원을 빠져나와 마주한 항동 철길은 이색적이면서도 반가웠습니다. 서울 도심에서 걸을 수 있는 철길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크나큰 행운이었습니다.


전국적으로 기차가 달리고 있는 철길을 걸을 수 있는 장소는 많지 않습니다. 서울 근교에서 철길을 걸을 수 있는 대표적인 장소가 양평인데, 이곳도 현재는 기차가 다니지 않습니다. 그런데 항동 철길은 야간이나 군사훈련 시 군수물자를 수송하는 기차가 다니는 살아있는 철길입니다. 항동 철길은 서울에서 부천 자연생태공원까지 연결되어 서울 외곽의 모습부터 시골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자연을 보여줍니다. 거리도 7km에 불과하기 때문에 시간이 된다면 항동 철길의 시작점인 오류동역에서 부천 자연생태공원까지 걸어보고 싶습니다.





철길 옆 재활용으로 만든 작품들

철길 옆에는 재활용품으로 만든 작품들이 여러 개 있습니다. 잘 만들어지지 않고 무심코 버려진 듯 보여 더욱 정감 가는 작품들이었습니다. 많은 연인 또는 가족끼리 철길과 작품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며 담소를 나누는 모습은 항동 철길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각박한 도시 속에서 잠시나마 일탈하여 지인과 진솔한 대화를 나누며 걷기에 항동 철길은 최적의 공간을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항동 철길에서 마주하게 된 노을

항동 철길을 걷다 보면 구로구에 조성한 올레길을 알리는 표지판이 있었습니다. 제주도 올레길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지방자치단체마다 올레길을 만들어 홍보하는 가운데, 구로구의 올레길은 다른 지역보다 특별해 보였습니다. 구로구는 과거 공장들이 밀집되어 있는 대표적인 산업단지였습니다. 영등포구에서 80년에 분리되었지만 여전히 공장들이 가득한 이미지에서 탈피하지 못하다가 최근 디지털단지로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 기억 속에서 변함없는 것은 녹지공간의 부족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옛 도시의 경관을 활용하면서 산림형, 하천형, 도심형 코스로 올레길을 조성하고 광고하는 모습은 신선하고 긍정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철길에 새겨진 인생
삶에 위로가 되는 문구
'피리 부는 사나이' 동화를 보여주는 삽화

항동 철길을 방문하기 전 저만의 목표가 있었습니다. 어떤 블로그에서침목에 새겨진 문구를 모두 담아 놓은 것을 보지 못했던 저는 한 장의 사진에 문구와 그림을 모두 담고 싶었습니다. 아이들을 항동 철길 옆 교회에서 운영하는 유료체험활동에 보내고 고개를 푹 숙인 채 걸어가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한 장의 사진에 문구를 모두 담아두는 순간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릅니다.

침목에 새겨진 글을 가 썼는지 모르지만, 삶의 무게를 함축하여 잘 표현해놓고 있었습니다. 한편으로 저보다 어린 젊은 친구들에게도 이 문구가 와 닿을지 궁금해졌습니다.

'25살 청춘은 용감했다. 31살 엄마 아빠가 되다' 이 부분은 훗날 공감되지 못해 바뀔 것 같습니다. 티브이에서 요즘 젊은이들을 표현하는 단어에 희망이 빠져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3포, 5포를 넘어서 이제는 포기를 당연시하는 사회 속에서 청춘들은 이 문구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해집니다.

이제는 기성세대가 되어가는 저로서는 '힘들 땐 쉬어가세요.'라는 문구를 청춘들에게 들려주고 싶습니다. 옳은 말인지는 모르지만, 인생은 정해진 길이 없습니다. 사람들마다 도착하고자 하는 장소가 다른만큼 남이 빨리 간다고, 쉽게 간다고 부러워하고 자신을 책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세상 어느 누구도 모든 것을 다 경험하고 가질 수 없습니다. 느리면 주변을 더 찬찬히 살피고, 작고 소중한 것을 챙길 수 있습니다. 빠르면 목표 도달이라는 성취감을 맛보겠지요. 이 세상에 정답이 없는 만큼 누구와 비교하고 그와 맞추려 하지 말고, 힘들면 그냥 잠시 쉬었다가 출발해도 됩니다. 잠시 멈추었다고 세상이 크게 변하고 내가 뒤쳐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담벼락에 그려진 오선지

항동 철길을 걸으면서 너무 행복했습니다. 낡고 오래되어 흉물스러워질 수 있는 도시경관이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재탄생하여 멋진 풍경을 선사해주고 있었습니다. 도시계획을 통해 조성되어 인위적인 느낌을 주는 공원과는 달리 정겨움과 그리움이 느껴지는 항동 철길이 오래도록 보존되면 좋겠습니다.


푸른 수목원은 서울시에서 만든 최초의 시립수목원이기에 걱정되지 않지만, 항동 철길은 도시의 성장 속에 얼마나 존속할지 모르겠습니다. 현지의 주민들에게는 개발이 중요하겠지만 외지인의 입장에서는 이 상태로 오랫동안 남아있으면 좋겠습니다. 오래된 담장에 걸쳐진 악보의 밝은 색채처럼 구도시의 경관과 현재의 모습이 조화롭게 공존하기를 기대해봅니다.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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