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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호 Apr 11. 2018

예쁜 정원같은 진천 보탑사

충청북도 진천군

                   

보탑사에 주차하고 마주한 거목

우리나라 산천에는 사찰이 참 많다. 으레 사찰하면 많은 사람들이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오랜 세월 동안 불교가 우리 생활에 많은 영향을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찰들이 오랜 세월 같은 자리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조선 시대 숭유억불 정책으로 도심에 있던 많은 사찰들이 깊은 산으로 쫓겨났고, 산불로 전각이 불타면서 다시 세워지기를 반복하다 보니 생각보다 역사가 깊지 않은 사찰도 많다. 


모든 생물에 생로병사가 있듯, 보이지 않는 모든 존재에도 생명이 피어났다가 지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찾던 사찰이 사라졌다가 최근에 생명을 새로 얻은 곳이 충북 진천에 있다. 현재 어떠한 사찰보다도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 사찰이 보탑사다. 


보탑사는 고려시대에 사찰이 있었다고 기록만 남아있던 자리에 지광, 묘순, 능현 스님 외 여러 분들이 1996년부터 2003년까지 많은 정성과 노력을 기울여 완성한 사찰이다. 그러나 보탑사 입구에 있는 300년 넘는 큰 나무를 입구에서 보게 되면 최근에 지어진 사찰이라는 생각을 잊게 한다. 이 자리에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던 사찰이라는 착각을 준다.




보탑사의 명물 3층 목탑

보탑사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52m에 달하는 거대한 3층 목탑이다. 불교에서는 108이라는 숫자에 큰 의미를 둔다. 108 번뇌, 108배, 108 염주 등 우리는 불교 용어에서 숫자 108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보탑사의 3층 목탑도 108척의 높이로 제작하면서 많은 이들의 염원과 의미를 담고자 했다.


보탑사 3층 목탑은 황룡사 9층 목탑을 모델로 삼아 우리나라 전통 방식에 따라 못을 하나도 사용하지 않고 쌓아 올렸다. 목탑의 자재도 강원도에서 벌채된 소나무만 사용할 정도로 꼼꼼하고 세심하게 신경 쓴 모습을 통해 보탑사가 앞으로도 오랫동안 발전하기를 바라는 염원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1300년 만에 사람이 직접 탑을 올라갈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할 수 있겠다.




실제 들어가면 웅장한 3층 목탑

1층은 대웅전으로 사방불(동방 약사우리광불, 서방 아미타여래불, 남방 석가모니불, 북방 비로자나불)을 모시고 있다. 2층은 법보전으로 팔만대장경 번역본을 담아놓은 윤장대와(회전하도록 만든 책장) 한글로 된 법화경을 새겨놓은 화강석이 자리하고 있다. 3층은 미륵전으로 미륵 삼존불이 위치하고 있어 보탑사의 모든 것이 이곳 3층 목탑에 담겨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목탑에서 기도할 것을 예상하고 1,000여 명이 목탑에 들어갈 수 있도록 크고 넓게 제작되었다. 사람들이 탑돌이를 하면서 기도할 수 있도록 2층과 3층 외부에 난간을 설치해놓기도 했다. 또한 상륜부에는 염주와 법화경 등을 봉안해놓았다. 불기 3,000(2,456년)에 봉안된 것을 공개한다고 하니 일종의 타임캡슐이라 하겠다. 3층 목탑은 다른 사찰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장소이기에 나중에 보탑사를 방문한다면 꼭 3층 목탑을 방문하기를 바란다. 





사찰보다는 아름다운 정원 같은 보탑사

나에게 보탑사가 오랫동안 인상에 남아있던 이유는 아름다운 정원 같은 분위기였다. 봄에 방문할 당시 많은 차량들이 보탑사를 향해 가고 있었다. 왜 이리 많은 사람들이 보탑사를 방문하는지에 대한 의문은 보탑사에 들어서며 바로 풀렸다. 


석가탄신일을 앞에 두고 온갖 꽃들이 보탑사를 가득 채우며 활짝 피어있었다. 보탑사라는 사찰이라는 분위기보다는 꽃이 만발한 정원이었다. 만뢰산이 보탑사를 품에 안고 있는, 세상 어느 곳보다도 넓은 면적을 가진 아름다운 정원이었다. 보탑사만이 아니라 만뢰산을 포함하는 큰 정원은 봄의 싱그러움으로 내 눈길이 머무는 곳마다 행복을 아낌없이 받을 수 있게 했다.  



소나무에 피어난 연꽃

내가 보탑사를 방문한 날은 날씨도 화창해서 맑은 하늘과 푸르름이 가득한 산, 그리고 울긋불긋한 꽃들로 인해 행복하지 않은 순간이 없었다. 아름다움에 취해서 보탑사를 여기저기 거닐다가 문득 소나무에도 꽃이 펴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소나무 꽃은 100년에 한 번 핀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 나로서는 너무나 놀라운 일이었다.(실제로 소나무는 매년 꽃을 피운다.) 소나무 꽃이라는 귀한 광경을 봤다는 기쁨에 들떠 소나무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사람들이 만든 연꽃이었다. 잠시 허탈함에 기운이 빠지기도 했지만, 소나무에 매달린 연꽃은 주변 경관과 아무런 어색함이 없이 자연스러웠다. 오히려 연꽃이 소나무와도 참으로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보탑사 곳곳에 가득한 연꽃과 진달래 

보탑사 내에 있는 모든 소나무들에는 연꽃이 가득 피어있는데 사진에서 보듯이 진달래와 같은 색깔을 가지고 있어 전혀 주변 경관과 어색하지 않다. 오히려 더욱 아름다운 정원을 만드는데 일조하고 있었다.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이 자연과 잘 어울리는 모습은 찾아보기 쉽지 않은데 보탑사는 너무나 잘 어울렸다. 보탑사를 보고 있자면 누가 석가탄신일에 맞추어 계획하고 준비했는지 모르지만, 그분의 섬세함이 느껴진다. 




고려시대에 이곳이 사찰이었음을 보여주는 석탑

보탑사라는 아름다운 정원에 심취해있다가 이곳이 예전 고려시대 사찰이었음을 보여주는 3층 석탑을 봤다. 웅장하지는 않지만, 오랜 세월 이 자리에서 부처님이 모셔지고 사라지는 과정을 묵묵히 지켜봤음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여기저기 닳고 떨어져 나간 만큼 3층 석탑이 오랜 시간 이 자리에 있었음을 알게 한다.




진천 연곡리 석비

최근에 지어진 보탑사지만 여기에도 국가로부터 보물로 지정된 유물이 있다. 고려 시대 초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연곡리 석비는 높이만 3.6m에 달하는 큰 석비지만, 비문이 없어 백비(白碑)라고도 불린다. 아무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서일까? 비에 새겨진 글이 지워진 것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백비의 양식으로 만들어졌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백비를 통해 고려시대 보탑사 자리에 큰 사찰이 자리하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는 있다. 




보탑사 3층 검은 석탑

보탑사는 화사함이 느껴지는 사찰이다. 그중에서도 다른 사찰에서는 볼 수 없는 검은 석탑과 상륜부의 황금색은 보탑사 어느 것보다도 쉽게 눈에 띄었다. 그리고 인상적이었다. 작은 동산 위에 있는 검은 3층 석탑을 보고 있자니, 사찰이 아닌 조각 공원에 온 듯한 느낌을 받는다.


보탑사가 3층 검은 석탑을 어떤 의미로 만들었는지 너무 궁금하다. 탑의 기단부터 일반적인 탑의 모습과는 다른  형태를 가지고 있어, 보탑사가 기존의 불교를 이어가면서도 새로운 것을 도입하고 변화시키려는 느낌을 받는다. 




사찰이 아닌 고택을 방문한 듯 느끼게 하는 보탑사

그러한 변화 중의 하나가 편안함이다. 보탑사는 사찰의 정취가 느껴지면서도 다양한 조각품과 고택 그리고 아름다운 정원을 걷는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로 여유로움과 편안함을 안겨준다. 마침 유모차에 아이를 태운채 따사로운 봄볕을 맞으며 한가로이 걷는 어머니를 보며, 나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봄기운을 즐긴다.




어느 것보다 더욱 진한 색을 내뿜는 꽃

5월에 사찰을 방문하면 '부처님 오신 날'을 위해 준비한 연등만 가득한 모습과는 달리 보탑사는 자연의 꽃들로 부처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특히 꽃들에 둘러싸인 반가사유상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바라본 반가사유상 하고는 다른 느낌을 주었다. 둘은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생각하는 주제는 서로 다르지 않을까 생각된다. 


고구려 시대에 제작되어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된 반가사유상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꽃 속에 둘러싸인 반가사유상은 또 다른 의미와 아름다움을 전해준다.




각도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전각 

보탑사가 오랫동안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데에는 아름다운 모습도 있지만, 같은 장소도 어디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같은 전각을 두고, 보는 위치에 따라 푸르름과 화려함을 각기 다르게 느끼게 한다. 




자연과 하나로 보이는 돌부처
황금색의 와불

보탑사에는 다양한 부처님을 만날 수 있다. 오래된 사찰이 아님을 알고 있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이곳에 자리하고 있는 듯 보이는 석불과 거대한 황금색의 와불을 만날 수 있다. 황금색의 와불은 일반 사찰에서 쉽게 만날 수 없지만 나에게는 그리 좋은 느낌으로는 다가오지 않았다. 불교는 호화로움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나의 편견인지는 모르지만, 편안하고 친근한 이미지를 주는 석불이 나는 오히려 더 좋다. 






법고각과 주변 전각

나는 4~5월 진천의 보탑사를 가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봄에 벚꽃만을 보기보다는 다양한 꽃으로 이루어진 보탑사는 아름다운 정원을 구경하는 느낌을 준다. 천천히 거닐며 망중한을 즐길 수 있는 보탑사는 혼자 가도 좋고 가족들과 같이 가도 좋다. 날씨 좋은 봄에 진천 보탑사를 거닐며 망중한을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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