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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호 Nov 08. 2017

국어시간에 들었던 월인석보를 보관한 수타사

강원도 홍천군

수타사를 들어가는 봉황문

                   

강원도 홍천은 우리나라에서 동서로 가장 길면서도 넓은 행정구역을 자랑합니다. 서울특별시의 세배에 달하는 면적을 가진 홍천에는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많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생태숲 공원과 수타사는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더운 여름날 수타사 옆으로 흘러내리는 시원한 계곡물에서 물놀이를 하거나, 숲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산소길을 걷다가 수타사를 방문해도 좋을 것입니다.





수타사에 들어가기 전 발견한 뱀 한 마리


수타사를 들어가기 전 물도랑에서 뱀 한 마리를 발견했습니다. 산길에서 마주쳤다면 매우 놀랐겠지만 다행히 물도랑에 있는 뱀이라서 그리 놀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아이들과 함께 가까이서 뱀을 관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어렸을 적 당숙께서 집에 나오는 뱀을 잡아 나무에 묶어두던 일을 기억하지만, 오늘날 야생 뱀을 가까이서 직접 보는 것은 오래만이었습니다. 아이들이 뱀에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도록 하면서도 아이와 함께 한참을 바라보았습니다. 뱀 덕분에 뜨거운 햇빛에 지쳐 투정을 부리던 아이들의 볼멘소리가 줄어들었고, 저는 뱀이 왜 이곳에 있는지 사색에 빠질 수 있었습니다.


춘천 청평사에 내려오는 설화 속의 뱀처럼 불교는 죽음이나 애욕의 대상으로 보거나, 뱀이 허물을 벗는 것처럼 번뇌를 벗어난다는 의미로 신(관자재보살)처럼 받들기도 합니다. 수타사를 향해 끊임없이 지친 몸을 끌고 올라가는 뱀을 보면서 업을 벗어던지고 번뇌로부터 자유로워지려는 모습 같다는 생각이 투영되면서 안타까움과 함께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일었습니다.





수타사를 지키는 사천왕


수타사에는 문화재들이 많이 있는데 수타사 입구를 지키는 사천왕도 그중 하나입니다. 딱 봐도 오래되어 보이는  사천왕상은 1676년에 제작되어 34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천왕은 악귀를 물리침으로써 부처님의 뜻을 널리 펼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하는데 사진에서 왼쪽에 있는 창을 들고 있는 쪽이 서방 광목천, 오른쪽에 비파를 들고 있는 사천왕이 북방 다문천입니다.


사천왕에 채색을 하지 않았기에 더욱 특별하고 가치가 있어 보입니다. 특히 수타사 사천왕상을 제작할 때 나무로 심을 만들고 새끼줄로 감은 뒤 진흙을 발랐습니다. 이후 형태가 잡힌 후 채색했기에 화재로부터 좀 더 안전하게 보존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제작방식이 다른 수타사 동종


수타사에 있는 동종도 보물로 지정된 유물로 1670년에 승려 사인 비구에 의해 제작되었음이 확실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수타사 동종의 제작방법은 일반 범종과는 다르게 제작되었습니다. 몸통과 종을 거는 고리 부분을 한꺼번에 만드는 것이 일반적인데 반해 이 종은 따로 제작하여 붙이는 방법으로 독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다른 범종과는 다르게 범어가 새겨져 있고 제작자 이름이 나옵니다. 또한 종을 치는 부분인 당좌의 모습도 일반 범종과는 다른 독특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타사 전경


수타사의 역사를 살펴보면 708년에 일월사(日月寺)로 창건하였다가 1457년 세조 때 이곳으로 옮겨옵니다. 선조 시절 사찰 옆에 큰 내천이 있다고 하여 이름을 물이 떨어지는 사찰이라는 의미를 가진 수타사(水물수 墮떨어질 타 寺)로 바꾸자 매년 승려 한 명씩 못에 빠져 죽는 사고가 발생하게 됩니다. 그래서 발음은 같지만 뜻이 다른 목숨 수(壽)로 이름을 바꾸어 壽陀寺(수타사)로 부르며 오늘날까지 이어져온다고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1811년 순조 때에 무량수불의 무한한 수명에서 이름을 만들었다고 하니 설화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비로자나불을 모신 대적광전


비로자나불을 모시고 있는 대적광전은 강원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수타사를 대표하는 건축물입니다. 불교에서는  비로자나불은 법신불로 인간이 볼 수 없는 형체를 가진 우주의 진리를 뜻한다고 보면 됩니다. 비로자나불은 우리 앞에 언제 어디서든 다양한 형태로 만날 수 있지만 현세에 모습을 드러낼 때에는 주로 석가모니로 표현됩니다. 비로자나불의 세계는 우주 전체이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뜻하기도 합니다. 즉 우리가 노력을 해서 깨달음을 얻는다면 부처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며 '하나가 전체요. 전체가 하나다.'라고 이야기하는 화엄경의 교주가 되기도 합니다. 불상을 볼 때에 왼손을 오른손으로 감싸고 있다면 비로자나불을 형상화한 것이며 보통 사찰에서 '대적광전(大寂光殿)', '대명광전(大光明殿)' 전각에 모셔놓고 있습니다.  





허물 벗은 매미들


대적광전을 둘러보고 나오면서 눈길을 끈 것이 매미 두 마리의 허물이었습니다. 나무에 매달린 허물은 자주 보았지만 이렇게 두 마리가 마주 보며 허물을 벗은 모습은 처음이었습니다. 수타사를 향해 힘든 몸부림을 치는 뱀, 사찰안에서 서로를 도와주며 허물만 남겨놓은 두 마리의 매미가 나에게 무엇인가를 전해주려고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살아오면서 많은 잘못과 후회의 찌꺼기들을 이곳에 버려놓으라는 의미일까요? 이제는 과거에 대한 미련과 집착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성품을 버리고 새롭게 업을 쌓으며 출발하라고 알려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관세음보살을 모시고 있는 원통보전


수타사에 많은 보물들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으뜸으로 뽑을 수 있는 것이 석가모니의 공덕을 한글로 적은 월인석보 17, 18권이 발견된 사실입니다. 수타사에서 발견된 월인석보는 국어학계에 큰 파장을 일으키며 오늘날 한글을 공부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수타사를 세간에 널리 알리는 역할도 하게 됩니다.




흥회루를 내려다 본모습


조선시대는 불교를 억압하고 성리학을 통해 나라를 운영하는 국가였습니다. 조선시대 숭유억불정책을 통해 불교를 억압했지만 왕실은 불교를 통해 조선 왕조의 번영을 기원했습니다. 월인석보도 그중 하나로 세조가 죽은 아들과 아버지인 세종을 위해 불경을 한글로 간행한 책입니다. 월인석보는 세종이 지은 '월인천강지곡'과 세조가 직접 쓴 '석보상절'을 합쳐서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불경언해서입니다. 월인석보에는 한글이 만들어졌을 당시의 어휘가 많이 수록되어 있어 조선 초의 언어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소중한 기록물입니다. 월인석보 전권이 발견되지 않아 정확한 권수는 모르지만 30여 권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그중 2권이 수타사에서 보관되고 있었으니 수타사의 가장 큰 보물은 월인석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운 여름날 한적하기만 한 수타사


그러나 수타사에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수타사는 성황당이 있는 특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는데 1992년 관음전을 짓는 과정에서 철거했습니다. 성황당은 마을의 수호신을 모셔놓는 장소로 우리나라의 전통신앙입니다. 불교가 정착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문화접변이며, 사찰안의 성황당은 쉽게 볼 수 없는 구조라 가치가 높다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철거한 의도를 모르기에 섣부른 판단을 내리기 어렵지만 과거의 것을 존중하고 보존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따릅니다. 





성보박물관 보장각


최근에 지어졌음을 한 눈에도 알 수 있는 성보박물관은 2005년에 개관되어 월인석보와 영산회상도 등 여러 유물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일반인에게 개방되어 있다고 하는데 제가 방문했을 당시에 문이 잠겨있어서 아쉬움을 컸습니다.






고풍스러움이 묻어나는 흥회루


수타사는 조선 후기에 건축된 전각과 근래에 세워진 전각들이 섞여있습니다. 과거와 현재가 혼재되어 있어서 오랜 세월을 인고해 온 전각들에 스며들어있는 고풍스러움은 더욱 진했습니다. 흥회루는 1658년에 건립되어 360여 년간 비바람을 맞으며 세월을 보냈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 법회를 열다 보니 군데군데 색이 벗겨지고 기둥은 맨들해졌습니다. 색이 벗겨지고 맨들 해진 모습에 시나브로 마음을 빼앗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한낮의 찌는 더위속에 흥회루에 앉아있으니 사방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흔들바람에 땀이 날아가며 스르륵 짧지만 달콤한 잠을 청하게 됩니다.






수타사 주변을 가득 메운 연잎


수타사를 빠져나오면 연잎으로 가득한 정원을 거닐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곳에서 사진을 촬영하며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혹시 수타사를 방문한다면 동행인과 함께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사진도 찌고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도 좋을 것입니다. 





수타사 부도


부도란 뛰어난 스님들의 사리를 모셔놓은 탑을 이야기합니다. 수타사에는 10개의 부도와 3개의 비석이 있으며 그중에서도 홍우당 부도는 강원도 문화재로 지정될 정도로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홍우당은 광해군에서 숙종 시대에 살던 스님으로 돌아가신 후 네모진 사리 하나, 둥근 은색 사리 두 알이 나와 이곳에 봉안해놓았습니다. 사리가 있어서 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아니고 홍우당 부도의 경우 조선 후기를 대표할 수 있는 부도라는 점에서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수타사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부도 앞에는 많은 소나무들이 우거져 있어 한여름에도 시원한 그늘이 만들어집니다. 소나무 아래에는 잔디밭이 펼쳐져있어 돗자리를 펴놓고 아이들과 소중한 시간을 보내는 가족들도 많았습니다. 그 옆으로 수타사 산소길을 걷기 위해 부지런히 발을 옮기는 분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같은 곳을 있어도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을 보내는 사람들을 보면서 뱀과 매미가 허물을 벗어던지듯 저도 그 해 여름의 한 순간을 수타사에 남겨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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