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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호 Nov 09. 2017

한라산 백록담 나도 가봤다.

제주특별자치도

한라산과 탐방로를 알려주는 안내판


25살에 군대를 제대하고 약간의 경비를 마련한 후 무전여행을 떠났습니다. 강원도와 경상도를 거처 부산에서 배를 타고 제주도에 도착했을 때 감히 한라산 등정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신혼여행으로 제주도로 왔을 때에도 한라산 등정은 여행 목록에 있지도 않았습니다. 그 후 학생들을 이끌고 수학여행을 여러 번 왔지만 한라산 등정은 일정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늘 가슴속 한켠에는 백록담을 눈에 담고 싶은 마음은 사라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초등학생이 되자 제주도에 가고 싶다는 말을 여러 번 했습니다. 이 기회에 한라산 정상에 가보자는 결심을 하고 8월 8일 한라산 백록담을 올랐습니다. 백록담에 오르기 가장 쉽다는 성판악 코스로 일가족 4명이 출발했습니다. 아침 8시 30분에 성판악에 도착하니 주차장은 이미 차량이 가득 찼고, 도로변으로 한라산을 등정하기 위해 온 사람들이 세워둔 차량이 줄을 서있었습니다. 저도 줄맞쳐 차를 세워놓고 한라산을 향해 올라갔습니다. 한라산을 등반하면서 샘터까지는 평탄한 코스라 산림욕 하는 느낌으로 상쾌한 출발을 할 수 있었습니다.





진달래밭 쉼터를 벗어나서 처음 본 하늘


그러나 샘터를 지나면서 뒤쳐지며 힘들다는 아이들을 다독여야 했습니다. 애들을 앞에서 당기고, 뒤에서 밀면서 올라가다 보니 다리는 점점 무거워지고 쉬는 횟수도 많아졌습니다. 연신 물을 찾는 아이들에게 챙겨 온 생수를 먹이면서 가벼워지는 가방의 무게만큼 힘이 생길 줄 알았는데 오히려 정반대였습니다. 그리고 가져간 생수가 줄어들수록 마음은 초조해지고 불안해졌습니다. 샘터에서 여러 병의 생수에 물을 다시 채우니 어깨를 내리누르는 가방은 다시 무거워졌습니다. 그리고 무거워진 만큼 백록담을 볼 수 있을 것라는 자신감도 하락했습니다.





백록담으로 올라가는 길에 본 까마귀


진달래밭에 도착하기까지 한라산은 등정하는 재미가 없었습니다. 지리산처럼 산 능선을 타면서 주변 경관을 둘러보는 코스가 없고, 나무 아래로 수많은 돌을 밟으며 걷는 단조로움에 지쳐가는 코스였습니다. 그러나, 진달래밭 매점을 통과하고 나자 한라산의 모습이 달라졌습니다. 파란 하늘과 구름이 내 눈앞에 펼쳐져 있었습니다. 탁 트인 시야 속에 제주도의 전체적인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며 한라산의 진면목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진달래밭까지 한라산이 보일 듯 말 듯 완만한 곡선을 가진 수줍음을 내포하고 있다면 백록담에 가까워질수록 한라산은 급격한 경사를 보이며 거친 야성미를 마음껏 발산하고 있었습니다.





한라산 특산종인 구상나무숲


한라산 정상에 있는 구상나무숲은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모습이 아니라서 더욱 기이함을 풍겼습니다. 그러나, 최근 구상나무숲이 기상이변 등으로 15%나 감소되고 있어 제주도의 환경이 변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가 된다고 합니다. 


사회시간에 한라산의 식생대 분포를 배우고 시험 봤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한라산은 해발고도에 따라 아열대성 식물에서 한대 식물까지 자라고 있음을 수업시간에 배우고, 고도마다 자라는 식물을 맞추여야 했던 시험문제를 풀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지금은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지만 구상나무숲을 보니 등정하면서 지나쳤던 나무들이 달라져 갔음을 깨닫게 됩니다. 






하늘과 가까워지는 계단


백록담에 가까워질수록 백록담과 제주도에 얽힌 설화가 생각이 납니다. 설화라고 하는 것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다 보니 내용이 각색되고 변형이 이루어지기에 어느 것이 맞다고 주장하기보다는 그냥 즐기는 것이 좋습니다. 


제주도 설화에 빠질 수 없는 인물이 설문대할망입니다. 옥황상제 셋째 딸이었던 설문대할망은 남성다운 호방함과 호기심이 많았다고 합니다. 하늘과 땅을 떼어놓은 죄로 아래 세상으로 쫓겨난 설문대할망은 자신이 살 곳을 마련하기 위해 육지의 흙을 두 손에 담아 옮기면서 제주도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때 손에 있던 흙이 여러 곳에 떨어져 작은 산이 되었는데 이를 오름이라고 합니다. 그 개수가 360 여개에 달한다고 하니 설문대할망이 욕심이 많았거나 덤벙대는 성격이었나 봅니다. 설문대할망이 흙을 다 나르고 나니 한라산이 너무 높은 것 같아 한 줌 퍼내어 서남쪽에다 쌓아두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라산 정상에는 움푹 파인 자국이 남고 서남쪽에는 산방산이 생겼다고 합니다.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구름은 저 아래로


제주도 설화를 생각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한라산 정상이 보였습니다. 백록담에 가까워질수록 힘들지만 올라오기를 정말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구름보다 더 높은 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신선이 된듯한 착각에 빠질 만큼 매력에 빠졌습니다. 특히 백록담에 가까워져 갈수록 까마귀들의 모습이 많이 보였습니다. 한라산 정상에 있는 까마귀들을 보면서 고구려의 삼족오가 연상되었습니다. 


삼족오는 발이 세 개 달린 까마귀로 예로부터 우리 민족의 성스러운 새입니다. 태양을 상징하기도 하는 삼족오는 고구려가 하늘의 자손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존재로 고분이나 깃발 등 일상생활 속에 널리 이용되었습니다. 하늘과 인간을 연결시켜주는 삼족오처럼 백록담 근처에서 까마귀만 보이는 것은 한국인이 하늘로부터 선택받은 민족임을 보여주는 증표는 아닐까요? 한국의 영산이라 불리며 민족의 정기가 어려있는 한라산에 까마귀들이 있다는 것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습니다.





전날 비가 와서 물이 고여있는 백록담


한라산 정상에 올라서자 백록담이 보였습니다. 백록담에 물이 고여져 있는 것은 보기 힘들다고 하는데 이렇게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복을 받은 느낌이었습니다. 한라산에 올라가면서 비도 맞지 않고, 백록담도 봤으니 최고의 날에 한라산 등반을 했습니다. 


백록담에도 재미있는 설화가 여럿 내려오는데 그중 가장 재미있는 설화를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하늘의 선녀들이 백록담에 내려와 목욕을 하는데 한라산을 관리하는 산신이 선녀들을 보고 싶은 호기심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결국 선녀들의 목욕하는 모습을 몰래 훔쳐보다가 들켜버리고 맙니다. 이에 화가 난 옥황상제가 산신을 흰 사슴으로 만들어버렸고, 흰 사슴이 된 산신은 매일 이곳에서 슬피 울었다고 해서 백록담이 되었다고 합니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한 사냥꾼이 한라산 정상에 올라와보니 많은 사슴들이 뛰어다니고 있었다고 합니다. 사냥꾼은 사슴을 잡고 싶은 마음에 급히 활을 사슴 무리를 향해 쐈습니다. 그런데 활이 사슴을 맞춘 것이 아니라 사슴들과 한가롭게 여유를 즐기던 옥황상제의 엉덩이를 맞추게 됩니다. 활을 맞은 옥황상제는 아픔과 함께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한라산 봉우리를 잡아 집어던졌는데, 뽑힌 자리는 백록담이 되고 밑으로 떨어진 한라산 정상은 산방산이 되었다고 합니다.





우측이 무너지고 있는 백록담


해학적인 설화를 갖고 있는 백록담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의 방문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고 합니다. 사진에서 우측을 보면 산의 일부가 무너져 내렸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면서 무너진 현상으로 현재는 진입로를 막아 사람들의 입장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자연은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한라산이 빨리 쾌유하여 우리에게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해봅니다.


아이들과 함께 올라갔기에 다른 사람들보다 등정하는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아침 9시에서 시작하여 저녁 6시 30분에 끝난 한라상 등정은 정말 힘들었습니다. 내려올 때는 막내를 업고 내려오면서 주저앉고 싶었지만, 하산 이후에는 후회보다는 뿌듯함과 자부심 그리고 보람이 가득했던 하루였습니다. 이후 여행하면서 힘이 들면 '우린 한라산 꼭대기까지 갔다 왔는데 이 정도야 뭐~'가 우리 가족 공식 응원문구가 되어 서로를 격려를 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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