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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호 Sep 08. 2018

물과 깊은 연을 맺고 있는 수종사

작지만 오밀조밀 전각들이 모여있는 수종사

경기도 남양주시는 서울에서 멀지 않으면서 두물머리와 같은 대표적인 관광지가 많다. 남양주의 여러 장소를 다녔지만, 그중에서 으뜸을 뽑는다면 운길산에 위치한 수종사라 말하고 싶다. 수종사는 아는 사람에게는 너무나 유명하지만, 아직까지 많은 분들이 잘 모르는 곳이기도 하다.


등산복 차림으로 걸어서 수종사를 방문하는 분들도 많이 있지만, 평소에 산을 올라가지 않은 분이라면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운길산 정상에 위치한 수종사는 단단히 준비를 하고 올라가도 가뿐 숨을 몰아 쉬며 여러 번 등정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의 경사여서 단단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올라가야 한다. 

차를 타고 올라가도 후회는 계속 밀려온다. 급경사의 도로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다시 산 밑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차를 돌릴만한 공간도 없어 두 눈을 질끈 감고 엑셀레이터를 있는 힘껏 밟을 수밖에 없다. 차를 버리고 싶던 마음은 어느새 반대 방향의 차와 마주치지 않기만을 바라는 마음으로 변하게 된다. 이 고비를 넘기고 나면 수종사 일주문 앞으로 차량 몇 대를 주차할 수 있는 널찍한 공간을 마주하게 된다. 이 순간 살았다는 소리가 입 밖으로 저절로 나온다. 


삼정헌에서 마시는 전통차

주차하고 일주문에서 5분 정도를 걸으면 수종사를 만나게 된다. 일주문에 비해 작은 규모의 수종사는 막강한 권력을 가졌던 세조가 세웠다는 사찰이라 하기에는 규모가 너무 작다그러나 수종사는 많은 전설과 역사가 깊게 깃들여 있다. 그리고 차를 마시며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삼정현은 다른 사찰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수종사만의 매력이다.


전국 대부분의 사찰이 이름 높은 고승들과 연관되어 있는 반면, 수종사는 조선의 7대 왕이었던 세조와 관련되어 있다. 세조는 반정에 성공하고 왕이 된  민심을 알아보고자 전국을 많이 돌아다녔다. 또한 어린 시절부터 전국을 돌아다니며 호연지기를 기르던 세조는 왕이 된 이후에도 좁은 궁궐에만 있는 것이 갑갑하여 자주 순행을 다녔다.


1458년에도 세조는 궁궐을 나와 금강산으로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다녀왔다. 금강산 구경을 마치고 서울로 오는 도중 운길산 아래 마을에서 하룻밤을 머무르게 되었다. 먼 길을 다녀오느라 피곤했던 세조가 일찍 잠자리에 들어 잠을 취하려는 순간 어디선가 깨끗하고 아름다운 종소리가 들려왔다. 한밤중에 울리는 종소리에 의아함을 품은 세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방문 밖으로 나왔다.


 건국 이후 지속된 억불정책은 많은 사찰을 헐고, 양반들의 승려로 출가하는 것도 막았다. 이러한 시절 한밤중에 울리는 사찰의 종소리는 조선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반역과 같은 의미였다. 그러나 세조는 조선 왕들 중에 숭불 정책을 폈던 몇 안 되는 왕이었다. 불교에 호감을 가지고 있던 세조는 종소리를 듣고 분노를 일으키기보다는 기이하고 상서로운 일로 받아들여, 여러 사을 이끌고 종소리를 찾아 운악산으로 길을 나섰다.


한밤중에 왕이 산을 오른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평소에 무예를 닦으면서 체력만큼은 자신이 있었던 세조는 큰 무리 없이 운길산을 오르내렸다. 한참 동안 운길산을 헤매던 세조는 소리의 근원이 정상 부근에 있는 동굴에서 나오는 것을 확인하고 거침없이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세조가 들어간 동굴 안에는 소리를 낼만한 종이 없었다. 소리를 잘못 들었다고 생각한 세조가 동굴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다시 뒤쪽에서 종소리가 울렸다. 뒤에서 울려 퍼지는 종소리에 세조가 동굴을 찬찬히 살펴보니 좀 전까지 보이지 않던 16 나한이 보였다. 그리고 동굴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이 종소리와 비슷한 맑고 청명한 소리를 냈다. 세조는 이 신기한 현상을 이곳에 사찰을 지으라는 부처님의 뜻으로 받아들였다. 


그렇게 세워진 사찰은 물이 떨어진 소리가 종소리와 같다는 의미로 수종사(水鐘寺)라 불렸다. 세조에 의해 창건된 수종사는 이후 오랜 기간 동안 번영할 것처럼 보였지만 세조 이후 꾸준하게 펼쳐진 억불정책으로 쇠퇴해갔다. 이후 조선이 망해가던 고종 때 혜일 스님에 의해 다시 수종사가 중건되지만 6.25 전쟁 때 전각이 소실되면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가 불교중흥의 과정으로 많은 사찰을 중건하는 과정에서 수종사도 다시 세워지게 된다.



삼정헌에서 바라본 두물머리 전경

다시 중건된 수종사의 최고의 공간은 두물머리 전경을 바라보며 차를 마실수 있는 삼정헌이다. 삼정헌에서 두물머리를 내려다보면 다리 밑으로 흐르는 북한강과 산너머로 보이는 남한강이 만나 온전히 하나가 되는 한강을 마주하게 된다. 두 강물이 만난다 해서 붙여진 두물머리의 이름을 운길산 수종사에 오르니 비로소 이해되어 고개가 끄덕여진다. 두물머리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싶다면 겨울에 수종사를 방문해 볼 것을 추천하고 싶다.


삼정헌을 나오면 수종사의 작은 경내에 울타리로 보호해놓은 석조부도와 팔각 오층 석탑이 보인다. 세조에 의해 창건되었다는 수종사답게 석조부도와 석탑도 왕실 사람들과 관련되어 있다. 석조부도는 태종의 딸이었던 정의옹주의 부도로 청자 사리함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어 조선 전기의 문화를 이해하는 귀중한 자료를 제공해주었다. 석조부도 우측에 있는 팔각 오층 석탑은 18개의 금동불이 발견되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 중에 있으며 석탑 자체가 얼마 전 보물로 지정되기도 했다.



세조가 심었다는 500년이 넘은 은행나무

이 외에도 수종사는 병을 고치는데 효험이 큰 약수가 유명해서 많은 백성들이 이곳에 와서 부처님께 치성을 드린 후 물을 마셨다. 그래서 수종사는 가난한 백성들의 근심과 걱정을 덜어주는 사찰이자,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희망이었다. 여기에 세조가 심었다고 전해지는 수령 500년이 넘는 거대한 은행나무가 수종사의 오랜 역사를 보란 듯이 증명해주고 있다.


세조가 동굴에서 물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찾아와 창건했다는 설화, 많은 병자를 고쳤다는 약수,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를 볼 수 있는 삼정헌까지 수종사는 물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물과 관련된 다양한 전설과 멋진 풍경을 보고 싶다면 운길산 수종사를 방문해보자. 특히 추운 겨울 수종사를 방문하여 삼정헌에서 따뜻한 차로 얼어붙은 몸을 녹이며 두물머리를 내려다보고 있자면 분명 누군가와 함께 이 순간을 함께 공유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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