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많은 혼돈을 겪던 시기 나에게 울림을 주었던 책이 있었다. 법정 스님(1932~2010) 의 <무소유>였다.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았던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법정 스님의 글을 읽을 때는 와닿지 않던 내용이 현실이라는 큰 벽에 부딪히자 어느 것보다도 크게 다가왔다. 짧은 생각과 부족한 경험으로 여러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 깜깜하기만 했던 현실에서 <무소유>의 글귀는 나에게 큰 위안을 주었다. 그리고 앞으로 살아가야 할 방향이 정리되었다.
2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법정 스님이 <무소유>에서 전하고자 하는 내용을 하나도 실천하고 있지 못하지만, 마음이 어지럽고 힘들 때마다 떠오르는 것이 <무소유>의 여러 글귀다. 어렵지 않게 누구나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생활 속 모습으로 어렵지 않게 읽혔던 글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속에 담긴 깊은 뜻을 이해하기 어려워한 줄을 읽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실천하는 것은 늘 이루고자 하는 꿈이 되어간다. 젊은 시절에는 <무소유>를 실천하는 삶을 살아갈 줄 알았는데 말이다.
나의 인생에 있어 많은 영향을 주었던 법정 스님을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지만, 늘 곁에 계신 듯 지금도 생각한다. 가장 아쉬운 점은 법정 스님이 살아계실 때 한 번도 만나 뵌 적이 없다는 것이다. 왜 그 당시 멀리서나마 만나 뵐 생각을 하지 못했는지 늘 아쉽기만 하다. 그나마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법정 스님이 잠들어 계신 전라도 순천 송광사의 불임암을 찾아가는 것이다.
불임암(佛日庵)은 지금으로부터 700년 전에 자정 국사가 창건한 송광사의 산내 암자이다. 자정 국사(?~1301)에 대해서 알려진 것이 많지 않지만, 고려 시대 제7세 국사로 큰 스님이다. 송광사가 16분의 국사를 배출한 승보사찰인 만큼 매우 훌륭한 스님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자정 국사가 자정암(慈靜庵)으로 창건한 뒤, 여러 번의 중수를 거치며 오랜 시간 이어왔으나 6·25전쟁 때 큰 피해를 보며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 법정 스님이 1975년에 중건하며 불임암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법정 스님은 17년간 머물며 수행했던 불임암을 찾아가는 길은 어렵지 않다. 송광사 입구를 지나며 무소유길을 알려주는 이정표를 따라 걷다 보면 만나게 된다. 입구에서 30분 거리라 표시해놓은 이정표를 보면 멀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걸어보면 절대로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오솔길을 따라 걷다 보면 대나무 숲 등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어 지루하지 않다. 여기에 법정 스님의 글을 담아놓은 이정표의 글귀를 읽으며 음미하다 보면 어느덧 불임암 입구에 도착하게 된다.
불임암 입구에는 참배시간이 오전 8시에서 오후 4시까지로 제한되었음을 알려주는 표지판에 묵언이라고 적혀있다. 법정 스님이 잠들어계신다는 생각에 저절로 경건해지는데, 이곳에서 또 다른 스님이 참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저절로 옷깃을 다시 한번 여미게 된다.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으려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반쪽만 열려있는 작은 문으로 들어서서, 대나무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걸어가면 생각보다 넓은 텃밭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스님이 머물며 수행하는 작은 요사 2동이 보인다.
보통 산내 암자에 텃밭의 경우 규모가 작다. 그런데 불임암에 있는 텃밭은 내가 지금까지 보았던 암자의 텃밭보다 규모가 컸다. 스님이 텃밭에 농작물을 경작하면 굳이 이곳을 나가지 않더라도 자급자족이 충분히 되고도 남을 크기였다. 그리고 산속의 별도의 공간이었다. 이는 법정 스님이 외부와 차단된 상황에서 오롯이 수행만 하기 위해 만들었음을 충분히 짐작하게 한다. 텃밭 오른쪽으로는 얼기설기 만들어놓은 작은 목간통과 해우소가 보인다. 자신을 위해 몸을 씻고 배설하는 공간을 최소화하여 꼭 필요한 만큼만 제작해놓은 모습에서 법정 스님이 무소유를 실천하고자 했던 의지가 느껴진다.
텃밭을 올라가면 법정 스님의 사진이 보인다. 그리고 그 앞에는 법정 스님이 앉아서 사색과 수행을 했을 나무 의자가 보인다. 의자를 만들기 위한 일반적인 목재가 아니라, 주변에서 얻을 수 있는 재료를 사용하여 앉을 수 있게만 만들어져있다. 아마도 법정 스님은 텃밭을 일구고 의자에 앉아 고단함을 쉬었을 것이다. 그리고 많은 번뇌를 해소하기 위해 수행을 정진했을 것이다. 스님이 앉아있던 의자 위에는 법정 스님을 만나기 위해 찾아온 이들을 위한 보답으로 책갈피가 놓여 있다.
책갈피를 하나 들고 텃밭을 내려다보면 의자 앞으로 커다란 후박나무가 보인다. 후박나무 옆 아래 좌측으로 대나무로 둘러싸인 작은 공간이 보인다. 그리고 거기에는 ‘법정 스님 계신 곳’이라 적힌 작은 표지판이 놓여 있다. 유심히 보지 않는다면 찾지 못할 정도로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장례식을 하지 마라. 관도 짜지 마라. 평소 입던 무명옷을 입혀라. 내가 살던 강원도 오두막에 대나무로 만든 평상이 있다. 그 위에 내 몸을 올리고 다비해라. 그리고 재는 평소 가꾸던 오두막 뜰의 꽃밭에다 뿌려라.'라고 유언했던 것처럼 법정 스님은 아무것도 이 세상에 남겨놓지 않으려 했다. 어쩌면 표지석도 세우지 않기를 바라겠지만, 나로서는 그나마 이렇게나마 흔적을 만날 수 있어 좋았다.
법정 스님의 발자취를 만나면서 무소유를 행동으로 보여준 모습에 감탄하게 된다. 나는 2~30대의 나는 주변에 좋아하는 사람에게 <무소유>를 선물로 주었다. 그러다 어느덧 책을 선물로 주는 걸 잊고 살아갔다. 작년에 제자들에게 책을 선물할 일이 있어 제일 먼저 <무소유>를 떠올리고 구매하려 했으나 어디서도 구하지 못했다. 책이 판매되지 않는 이유를 알아보니 법정 스님 책도 출간하지 말라 유언 때문이었다. 집에 있는 <무소유>가 이제는 구할 수 없다는 사실에 소중해진다.
법정 스님이 머물던 요사 옆으로는 자정 국사 부도가 보인다. 과거에 많은 스님과 신도들이 이곳을 찾아왔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자정 국사보다는 법정 스님을 만나기 위해 불일암을 찾는다. 꼭 불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법정 스님이 머문 불일암을 둘러보고 송광사를 방문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