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광개토대왕에 이어 장수왕의 침략으로 서울을 빼앗긴 백제는 급히 웅진(지금의 공주)으로 급히 수도를 옮겼다. 수도를 잃은 백제 왕실의 권위는 끝이 어디인지 모를 정도로 추락했다. 얼마전까지 서해를 ‘백제의 호수’로 삼아 중국 왕조와 경쟁하고, 왜를 속국으로 삼았던 백제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겐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너무도 높은 곳에서 갑자기 추락해서일까? 백제에 충성을 맹세했던 많은 소국들의 이탈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안으로는 왕에게 책임을 물으며 권력을 차지하려는 귀족 세력이 끊없이 등장했다. 귀족부터 일반 백성까지 나라가 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하던 때였다. 그러나 어디서도 해결책은 보이지 않았다.
웅진으로 수도를 옮긴 문주왕을 시작으로 무령왕(재위 501∼523)이 등장하기까지 많은 왕들이 비명횡사했다. 문주왕(즉위 475년), 삼근왕(즉위 477년), 동성왕(즉위 479년)이 제 명에 죽지못하며 웅진 시기의 백제는 점점 위태로워졌다. 백제로부터 이탈하는 귀족들이 계속 증가했다. 백성들은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귀족들의 수탈에 괴로움과 불안감에 온 몸을 떨어야했다. 백제가 멸망한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었다.
이처럼 위태롭던 백제를 기적같이 살려낸 것이 무령왕(재위 501~523)이다. 무령왕의 출신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삼국사기>에서는 동성왕의 둘째 아들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반면, <일본서기>에는 문주왕의 동생인 곤지의 아들로 기록되어 있다. 무령왕의 누구의 아들인지 다르게 기술되어도, 변치않는 사실은 무령왕이 일본에서 태어났다는 점이다. <일본서기>에 의하면 무령왕은 일본의 각라도(섬의 이름)에서 출생했다. 일본에서 섬을 ‘사마’라고 불렀기에 무령왕은 섬왕 또는 사마왕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무령왕이 일본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백제의 권력에서 밀려난 세력이었음을 의미한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왕이 될 수 없었던 무령왕이 백가에 의해 동성왕이 시해되면서 40세에 왕이 될 수 있었다. 동성왕이 시해되었기에 다음 서열인 무령왕이 즉위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신하에게 왕이 시해되는 상황에서는 서열보다 개인이 가진 힘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령왕 집안이 백제 본토에서 밀려난 세력이지만, 일본내에서는 막강한 권력을 가졌음을 짐작케한다. 무령왕이 일본의 군사력을 움직일수 있는 막강한 힘을 갖고 있었기에 백가의 역모 사건을 제압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 당시 일본은 형식적으로 독립국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백제의 속국이었거나 백제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무령왕은 여러모로 장점이 많은 왕이었다. 연륜과 경험이 충분히 갖추어진 40세는 백성들에게 안정감을 주었다. 8척(180cm정도)에 이르는 큰 키는 신하들에게 위엄있게 비쳐졌다. 여기에 일본을 움직일 수 있는 영향력은 왕으로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실질적인 기반이 되었다. 백제와 일본의 정치를 두루 겪은 무령왕은 현명하며 정치감각이 뛰어났다. 무령왕은 우선 지방을 통제하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지방에 22담로를 설치하고 왕족을 파견했다. 그리고 그동안의 소극적인 국가운영에서 벗어나 고구려와 말갈에 강경책으로 대응했다. 이들을 상대로 얻은 승리는 주변 국가에 백제의 힘이 살아있음을 보여주었고, 내부적으로는 백성에게 희망을 심어주었다.
무령왕이 시절 모든 일이 쉽게 풀렸던 것은 아니었다. 무령왕 통치 기간에 유독 많았던 흉년과 기근은 무령왕의 발목을 잡았다. 하지만 무령왕은 포기하지 않았다. 수리시설을 확충하고 구휼활동을 통해 백성들의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말년인 521년에는 중국 양나라 양나라로부터 ‘사지절도독백제군사영동대장군(使持節都督百濟諸軍事寧東大將軍)’이라는 책봉을 형식적으로 받아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 당당히 재진입했다. 그리고 일본에서 가져온 금송으로 만든 관에 들어가는 것으로 생을 마감했다. 이는 백제와 일본과의 관계가 매우 중요하며, 양국이 영원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다.
그런데 최근 일본이 하는 행동을 보면 콤플렉스를 감추기 위해 역사를 왜곡하고 바른 역사를 가르치지 않는다. 한국을 무시하고 하대해야 일본의 자존감이 지켜지는 줄 안다. 진정 우리가 바라는 것은 서로를 인정하고 더 나은 미래를 함께 만들어가는 것인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