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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호 Mar 17. 2020

칠지도는 백제가 왜에게 하사한 의례용 칼






 
일본은 4세기 말부터 6세기까지 백제, 신라 그리고 가야를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을 주장하고 있다. 임나일본부설 주장에 대한 증거로 백제 근초고왕(近肖古王)의 세자가 일본에 바친 의례용 칼인 칠지도가 이소노카미 신궁에 보관되어있다고 제시한다.
 
일본의 주장이 허구임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백제의 근초고왕에 대하여 알아야 한다. 제13대 근초고왕(?~375)은 346년에 왕으로 즉위하여 백제를 동아시아의 맹주이자 해상왕국으로 발전시킨 정복 군주다. 근초고왕은 마한을 완전히 점령하고 가야의 여러 소국에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그리고 왜를 속국으로 만들어 백제 장수가 왜군을 통솔할 수 있게 할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근초고왕은 남쪽으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고구려 고국원왕과 평양성에서 삼국의 패권을 두고 전쟁을 벌이기도 하였다. 이 전쟁에서 백제가 고국원왕을 죽이면서, 주변 모든 나라를 압도할 수 있는 국력을 과시하였다. 이후 한반도를 넘어 중국의 요서와 산둥반도, 일본의 규슈 지역까지 진출하여 백제의 영역을 크게 확대하였다. 이 당시 백제가 차지했던 지역들을 연결해보면 서해가 백제의 호수에 불과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대외적 팽창을 통해 강력한 힘과 자부심을 갖게 된 근초고왕은 백제의 역사를 기록한『서기』를 편찬하고, 왕위를 아들에게 물려주는 부자 상속제를 시행하였다.



하지만 백제가 삼국의 주도권을 잡고 계속 발전하기 위해서는 신라와 가야를 계속 견제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왜는 백제에 없어서는 안 되는 매우 중요한 우방국이자 속국이었다. 왜에게 백제는 넘볼 수 없는 상국이라는 인식과 함께 우방국이라는 확신을 심어 줄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왜왕에게 친교의 상징으로 하사한 것이 칠지도다.

칠지도(七支刀)는 일곱 개의 칼날이 나뭇가지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칠지도에는 60 여자의 명문(銘文)이 새겨져 있는데 현재 모든 글자를 판독할 수 없어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칠지도 앞면에는 泰□四年十□月十六日丙午正陽造百鍊□七支刀□辟百兵宜供供侯王□□□□作이라고 새겨져있다. 이를 해석하면 “태○사년5월 16일 병오, 백번이나 단련한 강철로 칠지도를 만들었다. 이 칼은 모든 적을 물리칠 수 있으니 제후왕에게 준다. ○○○○가 만들었다.” 뒷면의 先世以來未有此刀百濟□世□奇生聖音故爲倭王旨造□□□世는 “지금까지 이런 칼이 없었다. 백제 왕세자 기생성음이 왜 왕자를 위해 만들었으니 후세에 전하라.” 뜻으로 해석된다.
 

일본에서 칠지도가 갖는 의미
칠지도는 이소노카미 신궁에 보관 중이며 1953년 일본 국보로 지정되었다. 1874년 신궁 대궁사로 있던 스가 마사도모가 발견했고, 1892년 도쿄 제국 대학의 호시노 히사시 교수가 『일본서기』에 등장하는 칠지도라고 주장하였다. 이후 일본은 칠지도에 근거하여 한반도를 되찾아야 한다는 정한론으로 발전시켜 1910년 우리나라를 강탈하는 명분으로 삼았다.



판독이 안 되는 부분을 제외하더라도 상식적인 수준에서 칠지도의 명문을 읽어보면 백제가 왜왕에게 갖다 바친 것인지, 아니면 하사한 것인지 쉽게 알 수 있다. 만약 백제가 일본의 제후국이었다며 세자 기생성음이 아닌 근초고왕이 바쳐야 하지 않았을까? 한갓 제후국에 불과한 나라가 왕도 아닌 세자의 이름으로 진상품을 바치는 경우는 없다. 세자가 국가를 대표하여 상국에 진상과 조공을 바치는 경우 외교적 결례로 비추어져 양국의 우호 관계가 깨질 수 있다.
 
반대로 왜왕이 백제 왕세자보다도 낮은 위치라면, 왕세자가 칠지도를 하사했다고 하더라도 외교적 결례가 되지 않는다. 이처럼 임나일본부설이 낭설임을 간단하게 증명할 수 있는데도 일본은 줄기차게 임나일본부설이 사실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칠지도가 왜에게 항복의 징표로 백제가 바친 거라는 일본의 억지 주장은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무지한 행태라고밖에 볼 수 없다. 중국과 일본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던 백제 근초고왕이 일본에 고개를 숙이며 신하로서의 예를 갖추었다는 주장은 무엇으로도 우리를 이해시킬 수 없다.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를 건설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일본이 빨리 배웠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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