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 우리 선조들의 위생은 어떠했을까? 기록이 많지 않고 신분계층에 따라 위생상태가 달랐기에 한마디로 정의하기가 매우 어렵다. 왕들의 경우 주변에서 모든 대소사를 도맡아 관리하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청결했을 것 같지만, 꼭 그러하지도 않았다. 오늘날 말로 체통이 매우 중요했기에 여러 겹으로 입은 옷으로 땀이 나도 벗을 수가 없었다. 오로지 참는 수밖에 없다 보니 왕들의 사망원인으로 피부병이 많다.
양반들의 경우도 왕보다는 덜했지만, 의복을 함부로 벗지 못하였다. 예를 들어 16세기에 살았던 이문건이 시묘 생활을 했던 기록을 보면 ‘1536년 1월 4일 아침에 하반신과 다리를 씻었다. 5월 13일 기거하는 방을 치우고 몸을 씻었다.’라고 되어있다. 씻은 내용을 기록한 것을 보면 매일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평민들의 경우도 일을 마치고 고단한 몸으로 씻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욱이 생활용수를 우물에서 길어와야 하는 상황에서 머리를 감거나 씻는 것은 사치에 가까웠을 것이다. 의복도 넉넉지 않았기에 일로 더러워진 옷을 매일 갈아입는 것도 힘들었을 것이다.
그렇다 보니 머릿니는 일상생활에서 없애고 싶어도 없앨 수 없는 문젯거리였다. 머릿니는 3~4mm의 크기에 불과하지만 30여 일 동안 매일 10개 전후의 알(서캐)을 낳는다.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만큼 머릿속과 겨드랑이 그리고 사타구니에 머무르며 2시간마다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다. 피가 빨리는 동안 미치도록 간지러움을 주었을 뿐 아니라, 발진티푸스와 같은 질병도 유발되었다. 그래서 선조들은 추운 겨울에도 옷을 벗어 이를 잡는 일에 망설이지 않았다.
‘홀아비 삼 년에 이가 서 말’이란 속담에서도 빨래와 청소 등을 담당하던 여자가 없으면 남자가 사람답게 살지 못했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만큼 머릿니는 인간답게 사는지에 대한 평가의 척도였다. 그래서 선조들은 머릿니를 없애기 위해 단오와 유두에 창포 삶은 물에 머리를 감거나 매일 아침 빗질을 했다. 이는 매일 머리를 감기 어려운 상황에서 선택할 수밖에 없는 차선책이었다.
생활여건이 곤궁해질수록 위생은 더욱 신경 쓰기 어렵다. 조선 후기의 여러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고 적체되어 백성들의 생활이 어려웠던 구한말 이후는 위생이 엉망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1904년 방문한 스웨덴 기자 아손은 “조선인 아이들의 얼굴은 어제 그제 세수한 얼굴은 결코 아니었다.”라고 기술했다. 미국 초빙교사로 조선에 머물렀던 조지 길모어는 <서울 풍물지(1892)>에서 “지구상에서 가장 더러운 사람들”로 조선인을 표현했다.
이것만 보면 선조들이 매우 비위생적인 생활을 했을 거라 연상하게 되지만, 꼭 그렇지도 않았다. 서양도 우리와 비교하여 위생상태가 좋은 것은 아니었지만, 전 세계에 식민지를 만들며 자신들이 신으로부터 선택받은 우월한 존재로 여겼다. 그렇기에 그들에게 생기는 전염병들이 생활방식이 달랐던 식민지에서 기인한다고 믿었다. 우리를 바라보는 그들의 눈길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이를 증명해주는 기록들이 여럿 남아있다. 1901년 조선을 방문했던 독일기자 겐테는 “이른 아침 마을 주민들이 물속에서 첨벙거리며 몸을 씻거나 심지어 손가락으로 이를 닦는 사람들도 있었다. 각종 기록에 나온 주민들의 불결함과 조선 숙소에 대한 온갖 공포는 사실무근으로 전혀 문제 되지 않았다.”라고 기록했다. 헝가리 민속학자였던 버라토시 벌로그 베네데크는 <코리아, 조용한 아침의 나라>에서 “조선 아낙네들에게 하루 일과 중 가장 큰 일이 더러워진 옷을 깨끗하게 세탁하는 것이다.”라고 기술했다. 더 나아가 “한국인들은 전혀 목욕을 하지 않으며 손발조차 씻지 않는다는 소문도 자주 들었다. 당연히 이 말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기존의 기록을 부인했다.
물론 지금과 같은 위생 수준에서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 선조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한도에서 청결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서구인의 인종차별적 시선으로 왜곡된 기록,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비위생적인 저속한 민족으로 표현한 일본, 이에 동조한 친일파들과 무지했던 많은 사람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일제강점기와 전쟁을 겪으며 가장 가난한 나라로서 살아야 했던 암울한 역사가 있었다. 이런 사실들이 모여 선조들을 폄하하고, 우리 자신을 깎아내리고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제약된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온 우리 선조들의 노력과 애환도 이제는 알아줘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