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정호 Jul 21. 2020

당파싸움으로 망했다? 일본이나 줘버려.



지금이야 많이 없어졌지만, 2~30년 전만 해도 뉴스에서 국회 모습을 비추면 어른들은 하여간 우리나라는 저렇게 당파싸움이나 하니까 안돼.’라며 혀끝을 찼다어린이들은 아무 영문도 알지 못한 채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고 되뇌곤 했다그리고 알게 모르게 단합하지 못하고 늘 편 가르고 싸우는 전근대적인 민족이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시간이 흘러 어른이 된 이들은 또다시 아이들 앞에서 우리는 이래서 안 돼.’라는 말을 되풀이하고 있다.

사실 우리의 악질적인 병폐로 인식되는 당파싸움은 굉장히 선진적이고 민주적인 정치형태인 붕당이다붕당은 학문을 바탕으로 사회경제적인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서로의 의견을 나누고 조율하는 민주주의의 한 형태라고 볼 수 있다공존이라는 큰 틀 안에서 상호 비판과 견제로 건강한 정치를 수백 년 동안 이어온 훌륭한 제도이다.
 
그러나 아무리 훌륭한 제도도 시대와 사람이 바뀌면 변질하여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사라지게 된다붕당도 예외일 순 없었다공존이라는 틀이 무너지고 일당 전제화되다가최종에는 하나의 가문이 권력을 독점하는 세도정치로 조선과 함께 사라진다만약 우리가 붕당이란 제도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존재하였음에 초점을 맞춘다면지금까지의 생각이 바뀌지 않을까?



붕당의 시작은 중소 지주로 성리학을 공부하던 사림에게서 나온다조선건국과 정변을 이끌던 훈구파들이 부정과 비리를 저지르며 대농장을 형성하자생존에 위기를 느낀 사림들이 중앙 정치로 뛰어들었다여기에는 훈구파를 견제하고자 했던 성종의 의지도 한몫했다이후 사림은 서원과 향약을 바탕으로 얻은 민심으로 네 번의 사화(무오갑자기묘을사)를 이겨내고 권력을 잡았다.
 
하지만 훈구파 척결과 기층사회의 문제 해결을 두고 동인과 서인으로 나누어졌다이때 이황과 조식 그리고 서경덕의 학문의 영향을 받은 이들은 동인으로이이와 성혼의 영향을 받은 이는 서인으로 자연스레 나누어졌다선조에서 현종에 이르기까지 정쟁이 격해지면서 많은 사건이 벌어지기는 했어도 상호 비판과 견제가 이루어지는 공존이 가능했다.
 
이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선조 때 동인과 서인이 나누어졌고(1575), 동인은 남인과 북인으로 분화되었다.(1591) 광해군 때 북인이 정권을 장악했지만인조반정(1623)으로 서인을 중심으로 남인이 공존하는 형태로 정국이 운영되었다이후 현종 때에는 두 차례의 예송논쟁으로 서인과 남인이 번갈아 가면 주도권을 잡았다.



그러나 숙종 이후 붕당정치가 변질하기 시작했다숙종은 어린 나이에 즉위했지만 강력한 왕권을 행사하며 46년이나 조선을 통치했다숙종은 인현왕후와 장희빈으로 대변되는 세 번의 환국을 통해 붕당의 중심에 섰다숙종의 결정에 따라 정계에서 완전하게 밀려날 수 있는 상황에서 점차 공존이라는 틀이 깨지기 시작했다이제는 권력을 지키기 위해 상대 붕당을 철저히 배제하는 과정에서 남인에 강경한 노론과 온건한 입장의 소론으로 나누어졌다.
 
이복형제였던 경종과 영조를 두고 왕위 다툼을 벌이던 노론과 소론에 의해왕도 위협을 느꼈다이에 영조는 붕당의 폐단을 막는 탕평책을 실시하며 왕권을 강화하고자 했다그러나 노론에 의해 왕위에 오른 영조도 붕당의 변질을 막지는 못했다결국 노론에 협조적이지 않던 사도세자가 죽었고이를 두고 붕당은 다시 사도세자의 죽음에 동정한 시파와 죽음을 합리화한 벽파로 나누어졌다.
 



그러나 일당 전제화도 정조가 죽고 어린 순조가 즉위하면서 안동 김씨 한 가문이 권력을 독점하면서 끝이 난다나라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정치가 안정적으로 발전해야 한다정치가 안정되기 위해서는 투명하게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조율되는 합의 과정이 필수다.
 

조선이 멸망한 것은 붕당에 원인이 있다기보다는 공존이라는 원칙을 어기고 권력을 독점하려는 데 있지 않을까무엇보다 조선이 500년을 넘게 지속하던 나라였음을 잊지 말자붕당이 무너지는 기간이 1년에서 수십 년에 걸친 짧은 기간이 아니라 수백 년이었음을 말이다공존과 다양한 의견을 조율하던 붕당이라는 선진 제도와 오래도록 공존을 지켜온 모습에 우리는 오히려 자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예송논쟁은 무엇이고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